[스포츠 타타라타] 보이지 않는 올림픽을 봐야 하는 이유

2015. 5. 17. 07: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단체사진은 좀 색다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시선이 제각각이다. 그리스 여자 골볼대표팀의 단체사진.

#이제는 한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진 듯싶다. 예전에는 위대한 세종이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하면 혹시라도 누가 될까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래서일까? 한글도 시력을 상실한 후 완성했는데, 드라마나 영화 속 세종의 눈은 멋지게만 나왔다. 그나마 최근에는 다양한 채널로 그가 재위 중 실명한 후천성(중도)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세종은 안질에 걸려 시력이 점점 약해졌고, 이 때문에 정사를 돌볼 수 없다며 수차례 보위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었던 까닭에 세종은 이 분야에서 요즘말로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했다. 세종 18년(1435년)에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청인 명통사에 쌀과 황두(콩)를 주어 시각장애인을 지원한 기록도 있다. 시각장애인 임금이 있었고, 또 그가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이었다는 사실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이 시대에 더 없이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교과서 등 역사교육에서 이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비장애인들은 좀처럼 생각을 하지 않아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꿈을 꿀까’ 하는 것이다. 후천성 시각장애인은 당연히 시각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꿈에 비디오가 있다. 하지만 선천성의 경우, 꿈은 소리로 꾼다. 소리로 꾸는 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상이 없고 대신 소리와 맛, 촉각으로만 만들어지는 꿈이다. 지난해 스웨덴 연구의 따르면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악몽을 비장애인(6%)이나 중도시각장애인(7%)보다 4배나 더 많이 꾼다(25%). 일상생활에서 불쾌하고 위협적인 상황을 자주 겪기 때문이란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시각의 경험이 있어 악몽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덜 충격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수치가 낮다. 천 냥 몸 중에 구백 냥을 잃은 고통이 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경우 등록된 시각장애인은 26~27만 명이다. 이중 약 30%는 선천성이고, 70%는 후천성이다. 후천성은 사고로 인한 경우도 있지만 유전적 요인에 의한 질병 즉, 아직 현대의학으로 원인규명이 어려운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척수장애 등 다른 장애로 확장하면 장애인 중 후천성 비율은 더 높아진다. 쉽게 말해 살다 보면 언제라도,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각장애의 경우 예방이 어려운 유전적 요인이 많아 멀쩡하게 잘 살다가 실명을 하는 많다. 개그맨 이동우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천형을 원하는 사람을 없을 터. 그러니 종교에 헌신하거나, 최소한 ‘착하게 살자’라고 다짐해야 하는 도리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수록 좋은 사회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은 아무래도 체육활동에 대한 접근성이 비장애인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이나 성인병 등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국민체육진흥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생활체육에 1달러를 투자하면 의료비가 3.43달러나 줄어든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은 ‘1달러’를 쓰는 데도 인색한 편이다. 그러니 장애인체육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시각장애인스포츠협회의 김홍진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앞을 볼 수 없기에 신체활동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또한 국가대표라 해도 대부분이 안마사 등 생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2015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의 포스터. 슬로건이 ‘보자 열정으로, 뛰자 희망으로(See with Passion, Run with Hope)'였다.

#2015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가 오늘(17일) 막을 내린다. 8일간 이 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하계올림픽 현장을 3회나 다녀오는 등 종합스포츠이벤트 취재경험이 다수 있는데도 이번 대회는 특별했다. 일단 모든 경기가 신선했다. 쇼다운 골볼 등은 아예 처음이었고, 육상 수영 축구 유도 역도 볼링 체스 등의 종목도 비장애인과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남은 것은 참가선수 1,600명에 1,600개의 사연이 있다는 점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만난 문광식 씨는 방송사 직원으로 안정된 중년의 삶을 살다가 48세에 실명했다. 이후 가족에 누를 끼치기 싫어 인연을 끊고 홀로 살아오다 역도국가대표가 됐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한의대생이었던 한동호도 갑자기 눈이 멀었다. 워낙에 잘생기고, 똑똑한 청년이었기에 좌절이 컸다. 다행히 수영 덕에 장애의 절망을 넘어섰다. 한 시각장애 부부선수의 사연에서는 눈물이 나고 말았다. 프러포즈를 받은 아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가 없다. 실명의 원인이 유전적인 경우가 많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기는 하겠지만 2세는 죽어도 낳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국민세금을 들여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 2015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에도 180억 원 정도의 재정이 투입됐다. 처음에는 미심쩍었다. 언론도 히딩크(대회 명예조직위원장)는 다뤄도, 정작 비장애인선수들의 경기과 그 스토리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그들만의 대회’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8일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문광식 씨는 16년째 인연을 끊었던 가족들에게 태극마크를 단 자신의 사진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마음의 문이 아주 조금 열린 것이다. 아들이 시각장애축구선수인 일본의 한 어머니는 “축구 때문에 아들이 열심히 산다. 이런 대회가 많았으면 한다. 그래야 아들이 운동에 동기를 느끼고, 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1,600명이, 그리고 그 가족으로 확대하면 수천 명이 이번 대회를 통해 삶의 활력을 느꼈을 것이다. 나아가 이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는 수백만 명의 선수와, 수천만 명의 가족이 있을 것이다. [헤럴드스포츠(잠실)=유병철 편집장 @ilnamhan]

64세 역도 국가대표 문광식의 경기장면. '아버지' 문광식의 스토리는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sports@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POP & heraldpop.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