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평창올림픽 '도요타 해프닝', 왜?

권종오 기자 2015. 3. 21. 09: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제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회가 지난주 강원도 강릉에서 3일 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른바 '분산 개최' 논란 이후 처음 열린 조정위원회이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IOC 조정위원회는 경기장 건설, 교통, 숙박, 통신, 마케팅 등 12개 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문제점을 상호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번 조정위의 최고 이슈는 뜻밖에도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IOC의 톱 파트너, 즉 글로벌 스폰서가 된다는 소식은 지난 4일 외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IOC 글로벌 스폰서가 되는 것은 도요타가 처음이었습니다. 평창조직위원회는 깜짝 놀랐습니다. 현대자동차와 로컬 스폰서 협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IOC 규정과 관례에 따르면 글로벌 스폰서와 로컬 스폰서의 사업 영역은 겹치면 안 됩니다. 동종 회사는 같은 기간에 스폰서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자동차 회사 A가 글로벌 스폰서일 경우 다른 자동차 회사 B는 로컬 스폰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일본에서 도요타와 공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기간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8년 간이었습니다. 후원 금액은 8억3천5백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2백억 원으로 추정됐습니다. 평창조직위는 "평창과 현대차가 후원 계약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을 IOC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왜 도요타와 글로벌 스폰서 계약을 맺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IOC에서 이 분야를 맡고 있는 티모 루메 마케팅 담당 국장과 에반 헌트 부국장은 이렇게 평창조직위원회에 설명했습니다.

"평창조직위원회가 몇 년 동안 현대자동차와 로컬 스폰서 협상을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원칙적으로 도요타가 글로벌 스폰서가 되면 현대자동차가 로컬 스폰서가 될 수 없지만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평창 동계올림픽은 예외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 점은 도요타 측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가 평창올림픽 로컬 스폰서가 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IOC의 명쾌한 설명으로 의문점은 풀렸습니다. 평창조직위원회를 취재하고 있는 저도 "이제 이 문제는 정리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IOC 조정위가 개막된 지난 17일 국내 한 방송사가 자사 메인 뉴스와 심야 뉴스를 통해 단독 보도(특종)임을 주장하며 "최근 토요타가 글로벌 스폰서가 되면서, 현대차와 협상을 벌이던 평창에 비상이 걸렸다. 사실상 천억 원대의 후원금이 날아갈 위기를 맞게 됐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평창조직위에는 각 언론사와 관계자들의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이 보도가 맞는다면 평창조직위가 거짓말을 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평창조직위 관계자는 즉각 "IOC는 현대차의 후원 계약을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방송사의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오보에 가깝다"며 반박했습니다.

IOC 조정위원회 마지막 날인 19일 오후 3시에 구닐라 린드베리 조정위원장과 조양호 평창 조직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여기서도 '도요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조양호 위원장은 "현대자동차가 로컬 스폰서가 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뒤 티모 루메 IOC 마케팅 국장이 직접 나서 국내 10여 개 언론사와 합동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의 대답 역시 내용은 똑같았습니다. "평창조직위가 원한다면 현대자동차와 로컬 스폰서 계약을 맺는데 어떤 문제도 없다. 평창올림픽 때 현대자동차 로고를 단 차량이 한국 영토 안에서는 독점적(Exclusive)인 올림픽 공식 차량이 되는 것이다."

평창 조직위원회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요타가 중점을 두는 것은 평창이 아니라 2020년 도쿄 올림픽이다. 그런데 사전 홍보 효과와 붐 조성을 고려해 2017년부터 계약한 것으로 안다. 평창조직위와 현대차의 협상 등 여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IOC가 당연하고도 합리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내 한 방송사가 보도를 하기 전에 평창조직위에 제대로 확인만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이다. 우리는 1억 원이라도 더 스폰서를 유치하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언론이 잘못된 보도로 마구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이것도 모자라 정보력 부재 운운하니 한마디로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저는 이번 IOC 조정위원회를 사흘 내내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IOC는 이번 '도요타 계약 건'과 관련해 평창조직위에 명쾌하게 설명했고 평창조직위는 국내 언론의 문의에 그 전말을 자세히 알렸습니다.

그런데도 관련 질문은 조정위 내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린드베리 조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티모 루메 마케팅 담당 국장은 "도대체 똑같은 답변을 몇 번이나 더 해야 되겠느냐"며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오는 9월 제5차 조정위원회를 비롯해 2018년까지 IOC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일은 참 많습니다. '도요타 해프닝' 같은 일은 이번 한 번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합니다.권종오 기자 kjo@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