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만약 그가 박태환이었다면..엇갈린 두 수영 선수의 운명

김기범 입력 2015. 3. 21. 07:04 수정 2015. 3. 21. 09: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년 벽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박태환 도핑 파문'이 마지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박태환의 선수 생명 지속 여부가 판가름날 '운명의 날'인 3월23일. 스위스 로잔의 국제수영연맹(FINA) 본부에서 박태환의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됩니다. 현재까지는 최대 2년의 자격 정지가 예상되는데, 적극적인 청문회 소명에 따라 결과는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수영 영웅의 운명이 결정되는 바로 그날, 또 한 명의 수영 국가대표는 훈련소로 쓸쓸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김지현(27) 선수입니다. 지난 해 의사가 처방해준 감기약을 복용했다 도핑 검사 양성 반응이 나와 무려 2년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선수 생활을 더 지속할 수 없게 된 김지현은 오는 23일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공군 훈련소로 입대합니다.

김지현은 박태환에 가려진 수영계의 2인자로 통합니다. 자신의 주종목인 배영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국내 최강자입니다. 고교 2학년인 2006년 처음 대표팀에 발탁된 김지현은 고3때인 2007년 전국체전에서 5관왕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함께 출전한 박태환도 5관왕에 올라 나란히 체전 MVP 후보에 올라 박태환과 경합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MVP는 당시 한국신기록을 세운 박태환의 차지가 됩니다)

박태환과 함께 한국 수영을 대표했던 김지현,하지만 지난 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부터 2년 자격 정지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징계입니다. 그런데 이 중징계가 과연 합당한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지현의 경우는 박태환과 달리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의사의 과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지현은 지난해 5월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에서 감기약 처방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금지약물 성분인 '클렌부테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의사가 클렌부테롤의 성분이 운동 선수에게 금지된 약물인지를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이는 해당 의사가 청문회까지 직접 나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증언을 한 점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김지현의 징계가 과한 이유는 또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형평성 문제입니다. 전 세계 어느 사례를 뒤져봐도 김지현과 같은 우발적 사고가 최고 수준의 징계로 이어진 경우는 없습니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 쑨양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트리메타지딘'이란 상시 금지약물을 복용해 도핑에 적발됐는데, 불과 3개월의 자격 정지에 그쳤습니다. 또 미국 여자 수영의 간판 제시카 하디의 경우는 선수 측 항변이 참작되어 2년에서 1년 자격정지로 징계가 경감됐습니다.

김지현의 금지 약물 복용 시점은 당시 대회 출전이 예정되지도 않았고, 단순 훈련 기간에 불과했습니다. 더구나 의사의 실수로 감기약 먹다가 도핑에 걸린 황당한 경우였습니다. 그런데도 KADA는 도핑의 '무관용 원칙'이라는 엄격한 잣대만 내세워 김지현의 선수 생명을 사실상 끊어 버리는 매몰찬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김지현의 변호인측은 "보통 자국 반도핑 기구는 선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중국의 쑨양이나 제시카 하디 역시 자국 도핑방지위원회가 자국 선수 보호 차원에서 징계를 최소화시키는 유연한 결정을 내렸다. 유독 KADA만 이런 강력한 징계, 그것도 정상 참작의 증거가 충분한데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김지현의 억울함은 대표팀 동료이자 친구인 박태환과 비교하면 더욱 커집니다. 남성 호르몬 주사를 맞아 가장 유명한 근육강화제 성분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된 박태환을 구제하기 위해서 대한수영연맹은 물론 대한체육회와 검찰까지 나섰습니다. 반면 김지현은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김지현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스타였다면 과연 이와 똑같은 대우를 받았을까요?

김지현은 아직도 동갑내기 박태환과 카톡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며칠 전 김지현은 카톡에서 박태환에게 "나 군대간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습니다. 박태환에게 돌아온 문자는 "왜 이렇게 빨리..."였다고 합니다.

박태환이 이번 주말 스위스 로잔에서 청문회 리허설에 몰두할 때, 김지현은 동네 이발소를 찾을 계획입니다. 입대 전 머리를 잘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김지현은 의외로 담담합니다.

"어차피 남자라면 군대는 가야 하잖아요. 다행이 공군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보직을 맡게 돼서 운동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기력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몸만들기는 계속 할 겁니다"

그리고 김지현은 아직도 국가대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용기있게 말합니다.

"군대 갔다오면 29살이 되는데요, 그래도 도전을 계속 할 겁니다. 마이클 펠프스나 라이언 록티도 아직 선수 생활 하는데 저라고 못하란 법 있나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김지현의 경우는 '유명무죄, 무명유죄'라고 해야 할까요? 단지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선수이기에 더 큰 벌을 감수해야만 하는 현 상황. '페어 플레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스포츠의 모순된 현실입니다.

[연관 기사]

☞ 지난 올림픽 도핑 재조사…박태환 영향은?

☞ 박태환 리우 뛸 수 있나…23일 '심판의 날'

김기범기자 (kikiholic@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