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일 감독 "박태환에겐 격려가 필요할 때"

2015. 1. 30.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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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1995년 도핑 파문으로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이진일 원주시청 육상단 감독은 수영스타 박태환에게 비난보다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스포츠동아DB

■ 이진일 원주시청 육상단 감독1994히로시마AG 男육상 2관왕 스타덤1년 후 감기약 먹다가 억울한 도핑 적발"가장 외로운건 당사자…비난 대신 위로를실수로 인해 이전 업적까지 매도돼선 안돼"

박태환(26)의 도핑 파문 이후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단체에선 도핑 실태를 재점검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박명규 선수촌운영본부장은 29일 "대표선수 관리지침에서 대표선수 발탁 시 도핑 교육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궁대표팀도 최근 선수들에게 도핑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환기시켰다.

정확히 20년 전에도 한국체육계를 뒤흔든 도핑 스캔들이 있었다. 1995년 5월 1994히로시마아시안게임 남자육상 2관왕 이진일(42·원주시청 감독)의 금지약물 약성반응이 알려진 것이다. 결국 그 해 1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4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 사건 이후 한국체육계에선 도핑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싹텄다. 이 감독은 한번의 실수로 힘겨운 시기를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후배들은 '설마 내가?'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 "당시엔 억울했지만, 결국은 내 탓"

당대의 육상스타 이진일의 도핑 적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1994년 남자 800m 세계랭킹 8위로, 19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한국육상 사상 최초의 트랙 종목 메달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발단은 1995년 3월 당시 유행하던 홍콩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처방한 약으론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약국에서 일반 감기약을 먹었는데, 이틀 뒤 IAAF 도핑위원이 들이닥쳤다. 한 달 뒤 금지약물 '클렌부테롤' 양성반응이 나왔다. 클렌부테롤은 교감신경흥분제의 일종인데, 목감기에 걸렸을 때 복용하는 진해거담제에도 흔히 들어있는 성분이다. 이 감독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핑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감기 때문에 약을 먹었다는 '과정'이 아니라, 금지약물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결과'였다. 대회를 앞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기약을 먹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고 회상했다.

●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은 박태환 본인, 비난보다 격려를"

1997년 3월 자격정지 기간이 2년으로 줄었지만, 그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과거에 이룬 업적조차 '약물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의심받는 현실이 가장 힘들었다. 잘 나갈 땐 손을 잡아주던 지인들이 무심하게도 손을 놓을 땐 세상의 비정함도 느꼈다. 은퇴까지 생각했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넌 정말 약물선수로 낙인찍히는 것"이란 아버지의 따끔한 질책에 정신을 차렸다. 이후 이를 악 물었고, 결국 1998방콕아시안게임 남자 8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극적으로 명예를 회복한 뒤에야 현역에서 물러났다.

한번의 실수로 인생 항로가 바뀐 경험을 했기에 박태환의 도핑 파문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은 안타깝기만 하다. 잘못 여부를 떠나 특히 운동 후배가 받고 있을 상처들이 안쓰럽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은 그 느낌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업적까지 매도되어선 안 된다. 비난보단 위로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마음을 전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 @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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