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빙상계 파벌 달라진 게 없다

권종오 기자 2014. 11. 2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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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 국제대회로는 1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 2차대회가 어제 막을 내렸습니다. '빙속 여제' 이상화가 여자 500m에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와 명승부를 펼쳤고 '쇼트트랙 여왕'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 박승희도 처음 출전한 디비전A 대회에서 '초보'답지 않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록 무료입장이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에는 관중석이 꽤 많이 찰 정도로 팬들의 열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 대회 운영 능력과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을 모두 동원하며 성공 개최를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럼 이번 대회의 운영 성적은 어떨까요?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립니다. 이번 대회 진행에 참여한 A씨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기본적인 대회 세팅조차 되지 않아 국제빙상연맹(ISU)관계자와 외국 선수단 보기에 얼굴이 화끈 거렸다. 대회 운영을 잘 모르는 사람이 실무 책임을 맡은 게 화근이 됐다. 외국인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마중 나온 사람이 없는데다 연락처도 몰라 1-2시간을 그냥 기다렸다고 한다. 숙박과 식사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치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1차대회는 완벽했다고 들었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했으면 비교가 덜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빙상계 인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10년 만에 큰 대회를 치렀기 때문에 다소 경험이 부족했던 것은 맞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무난하게 해냈다고 본다. 선수 수송과 안전, 관리 문제도 합격점을 줄 수 있다. 태릉 국제스케이트장도 최상은 아니지만 대회를 충분히 치를만한 수준이다. 빙질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선수가 빙질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럼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국제빙상연맹 관계자와 외국 선수단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렸습니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러 한국에 온 네덜란드 신문 <더 텔레그래프> 기자는 "경기장 수준, 대회 진행 등에서 최상은 아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숙소가 너무 멀었다. 경기도 일산의 호텔에서 태릉 국제스케이트장까지 2시간이 걸렸다. 왕복으로 치면 하루 4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한 셈이다. 이 점이 가장 아쉬웠다."

여러 사람의 말을 정리하면 이번 대회가 디테일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예를 들어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의 전광판 표기가 실제 기록과 한 두 차례 다르게 나오는 등 세밀한 부분에서 치밀하지 못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큰 사고 없이 치렀지만 앞으로 국내에서 개최될 각종 국제 대회를 감안하면 운영 능력을 더 키워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3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경기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대형 이벤트를 치를 실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빙상계의 화합이 필수적입니다. 위에 언급한 A씨는 "연맹이 빙상인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작 일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자기네 사람에게만 중요한 일을 맡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맹은 그동안 빙상인의 단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고 인재를 고루 기용해왔다. 어느 조직이든 100%의 사람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불만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연맹 행정에서 배제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 운영이 미흡했다고 지적하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인천공항에서 외국 선수단을 수송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었고 숙소가 있는 일산에서 태릉까지는 평균 4-5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식사는 최고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사실 빙상계의 분열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수 십 년 묵은 고질중의 고질입니다. 국내 다른 체육단체에도 대부분 이런 현상이 있지만 빙상계는 유독 심합니다. 빙상연맹이란 제도권에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싸우는 것은 물론 같은 연맹 이사끼리도 이른바 '한체대파', '단국대파'니 하면서 반목합니다. 학연과 함께 지연(地緣)까지 작용해 '주류'와 '비주류'를 갈라놓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뿐만 아니라 쇼트트랙과 피겨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빙상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당하면 수긍하기는커녕 "내가 주류가 아니어서 이렇게 가혹하게 당한다"며 반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문제를 지적하자 빙상연맹은 '빙상발전위원회'와 '조직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파벌 의식 해소에는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고 있습니다.

<맹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를 역설했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은 '천시'이고 그것이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것은 '지리'입니다. '천시'와 '지리'를 두루 갖추고도 '인화'가 안 돼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빙상인의 대오각성을 기대해봅니다.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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