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 익스프레스] 50만원 쏘고 떠난 친절한 챔피언 핸더슨

조회수 2012. 3. 12. 11: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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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다른 선수들 때와 마찬가지로 이 둘의 스파링 또한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핸더슨보다 두 체급 아래에서 활동하는 강경호가 핸더슨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모두 방어해 냈던 동시에, 오히려 핸더슨에게 레슬링 기술 중 가장 큰 기술에 속하는 '안아 띄우기'를 선사한 데 더해, 태클도 한 두 차례 성공시켰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마다 핸더슨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용수철처럼 가볍게 튀어 일어났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경악할 수 밖 에 없었다. 그 전 스파링에서 김동현도 특기인 싱글렉 테이크다운으로 핸더슨을 넘어뜨리긴 했지만, 강경호는 김동현에 비하면 무명에 가까운데다 체격도 훨씬 작은 선수다. 더구나 과거에 그가 레슬링에서 밀리며 일본 무대에서 몇 차례 분패했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는 실로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참고로 훈련이 다 끝난 다음, 이날 잡아본 한국 선수들 중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핸더슨은 다들 너무 잘한다고 얘기면서도 강경호에 대한 강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훈련이 끝난 다음 함께 모인 대한민국 UFC 파이터들. 왼쪽부터 양동이, 김동현, 벤 핸더슨, 정찬성. 사진제공-엠파이트)

이렇게 핸더슨과 대한민국 정상급 파이터들 간의 스파링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와중에도 필자의 머릿속엔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그 중간에 끼어서 핸더슨의 기량을 체험해 보고픈 바람이 가득했지만, 필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근육질의 만두귀 남성'들이 열 명도 넘게 줄을 서 있었기에 도저히 새치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스파링은 끝났고, 핸더슨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은 다양한 형태의 철봉 운동 및 스트레칭으로 이날의 훈련을 마무리했다.

훈련이 끝난 후 다 함께 모인 대한민국 파이터들 앞에 선 핸더슨이 겸손한 태도로 얘기한 내용은 이러했다.

"다들 너무 강합니다. 아직은 한국이 종합격투기 강국으로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처럼 강한 선수들이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들과 함께 지금처럼 열심히 훈련한다면, 세계 곳곳의 많은 젊은 선수들이 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미국이나 브라질 뿐 만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날아올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날이 오도록 만들기 위해 그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날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벤 핸더슨과 함께한 모습. 사진제공-엠파이트)

필자는 얼떨결에 이 자리에서도 통역을 맡아 핸더슨의 얘기를 선수들에게 전달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핸더슨의 겸손함과 따뜻한 마음씨, 그리고 격투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감동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 대 마음으로 전해져 왔고,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참 멋진 사람이다.'라 감탄하며 탈의실로 휘적휘적 걷고 있는데, 누가 등을 톡톡 두드린다. 다름 아닌 핸더슨이었다.

"헤이, 대환. 아까는 차례를 잡기가 어려웠죠? 이제 다 끝났으니 편하게 한 번 굴러 봅시다."

정말 너무 깜짝 놀랐다. 결국 UFC 라이트급 챔피언과 가볍게나마 스파링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움보다 수많은 선수들과의 스파링 및 철봉 운동까지 다 마친 다음에도 그런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것에 대한 감동이 더 컸다. 사실 핸더슨, 정찬성과의 훈련에 참가할 수 있게 된 후 필자는 핸더슨에게 그런 자리에 초대해줘 영광이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핸더슨이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연일 수 있는 필자의 그런 열정을 기억해 주리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마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스파링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얘기할 게 없다. 주짓수 스타일로 그라운드 기술로만 진행된 스파링에서 핸더슨은 몸의 힘을 완전히 빼고 여유 있게 한 동작 한 동작을 마치 가르쳐 주듯 유연하게 구사했으며, 중간에 하체관절기 콤비네이션이 나올 타이밍이 되자 "다친 발목이 어느 쪽이었죠?"라 필자에게 묻고 아픈 쪽은 건드리지도 않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었다. 스파링 중 필자가 핸더슨에게 느낀 건 딱 세 가지였다. 그 누구보다도 유연하며, 쓸데없는 힘을 결코 쓰지 않고, 그동안 얼마나 피땀 흘려 운동을 해 왔는지 딱 느껴질 정도로 기술 하나 하나의 디테일이 굉장히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핸더슨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 데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필자와의 스파링이 끝난 후 핸더슨은 팬들 및 여러 선수들의 사진 요청을 모두 받아준 후 샤워를 간단히 하고 선수들과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이미 널리 보도된 대로 핸더슨은 김치찌개 한 대접에 밥 네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엄청난 식욕을 과시한 후, 최소 50만원은 되었을 식대를 통 크게 계산하며 "완전 한국 스타일이야!"라는 주위의 칭송을 들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를 하며 어머님과 함께 인천공항 행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핸더슨과의 만남은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을 듯 하다. 직접 만난 핸더슨은 UFC 라이트급 벨트 뿐 만 아니라 운동에 대한 진지한 열정, 어머님에 대한 각별한 효성, 팬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 등 모든 걸 갖춘 진정한 챔피언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대중들 앞에서의 모습이 거짓 혹은 의도적 연출인 유명인들의 경우가 많이 그려지곤 하는데, 핸더슨은 그와 정반대였다. 격투기 팬 여러분들이 TV를 통해 보고 느끼는 핸더슨의 강하면서도 순수한 모습, 그 따뜻한 이미지가 실제 핸더슨과 100% 일치한다고 보시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단순히 흥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따스한 감동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는 핸더슨이 앞으로 챔피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마지막으로 핸더슨과의 합동 훈련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핸더슨. 사진제공-엠파이트)

*이날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핸더슨과 김동현 간의 스파링이 치러지는 동안, 그 옆에서는 또다른 UFC 파이터 양동이와 국내 중량급 최강자 중 한 명인 이상수 간의 스파링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 또한 평소 같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꽉 잡아 놓았을 만한 빅매치였지만, 반대편에 대한 관심도가 너무도 높았기에 체육관 내 백 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들 핸더슨VS김동현 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 흐르듯 기술을 주고받는 핸더슨과 김동현의 모습에 다들 감탄하던 순간, 갑자기 반대쪽에서 '우당탕탕!'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들 깜짝 놀라 그쪽을 보니 양동이와 이상수가 두 마리 황소처럼 서로를 넘어뜨리려 씨근덕대다가 구석의 철창에 거세게 처박힌 것이었다. 다치지 않았냐고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두 선수는 괜찮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 등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졌는데, 이 때 양동이의 스승인 코리안 탑 팀 전찬열 대표가 씩 웃으며 던진 말이 걸작이었다.

"봐 달라는 거지. 자기들도 좀 봐 달라는 거야. (두 선수 포함 모든 사람들 박장대소) 이럴 때는 봐 줘야 돼. 저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서운하다는 얘기거든. 자, 지금부터는 좀 저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줍시다. (핸더슨과 김동현마저 대폭소)"

(UFC 미들급에서 활약 중인 양동이가 핸더슨과 함께한 모습. 양동이는 오는 5월 15일 UFC on Fuel TV 3에서 브래드 타바레스와 대결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엠파이트)

*훈련이 끝난 후 핸더슨은 김동현 등 부산 팀매드 선수들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핸더슨이 다음에 한국에 와서는 부산에 들러 꼭 함께 훈련하고 싶다고 얘기하자, 팀 매드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이야기.

"이왕 올 거면 여름에 와 주세요. 훈련 끝나고 저녁 때 해운대 같이 가게요. 요새 부산 여름에 직입니데이~."

(김동현과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벤 핸더슨. 사진제공-엠파이트)

*핸더슨은 훈련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을 메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사진 촬영 공세에 시달려야(?) 했는데, 단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한 명 한 명과 촬영을 다 해 주었다. 어머님과 친척들이 이미 근처 고깃집에서 자리를 잡고 핸더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핸더슨은 팬들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려 애썼다. 보다 못한 경호업체 관계자 분이 잘못하면 비행기 시간에 늦을 수 있다며 일단 샤워부터 얼른 해 달라고 간청하자, 핸더슨은 "잠깐만 씻고 나와서 다시 해드릴게요." 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샤워를 마치고 다시 팬들과 사진을 다 찍어 주었다. 필자의 기억에 이처럼 '뼛속까지 친절한' 챔피언은 K-1의 영웅 피터 아츠 이후 처음 본 것 같다.

*핸더슨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 탈의실에서 몸을 닦고 있을 때, 국내 모 신인 선수가 몇 년 후 UFC에서 그와 대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해 마시라. WWE 프로레슬링처럼 갑자기 샤워실에 난입해 서로 싸운 게 아니라, 같이 웃으면서 한 얘기 중 일부였다.) 이를 들은 핸더슨은 전혀 기분나빠하지 않고 웃으며 "좋다. 계속 이겨서 UFC로 와라."라 얘기했고, 그가 나간 후 필자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저 친구와 똑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BJ 펜의 굉장한 팬이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이뤄질 그와의 싸움을 늘 상상하곤 했었다. 물론 내겐 저 친구처럼 비제이에게 직접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지만.(웃음) 저런 패기와 꿈은 선수라면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속 이기라고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 친구가 만일 정말 연승을 거둬 UFC에 와서 나와 싸우게 되면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난관에 부딪힐 거라는 점이다.(웃음)"

*김동현과 양동이 등 UFC 파이터들은 식사 중에도 핸더슨과 훈련 등 여러 부분에 대해 활발히 얘기를 나누었고, 필자는 이를 통역하며 많은 소중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핸더슨은 시합 전에는 하루에 총 5~6 차례 훈련을 소화한다고 한다. 기상 후 러닝으로 시작해 오전에 스트렝스 훈련, 오후에는 2~3시간 정도 고강도의 집중 MMA 훈련, 저녁에는 복싱이나 주짓수, 레슬링 등의 퍼스널 트레이닝을 날마다 바꿔가며 두 타임씩 받는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핸더슨을 한국에 처음 알린 장본인인 이정수 기자(지금은 기자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음)에 대한 핸더슨 어머님의 사랑은 각별해서, 식사 내내 그 앞으로 계속 고기를 가져다 주셨는데, 덕분에 이정수 기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필자는 이날 먹을 복이 제대로 터졌다. 핸더슨이 계산을 하러 간 동안에도 최후의 한 점까지 입에 밀어 넣는 필자의 모습을 보며, 핸더슨 어머님은 연신 고기를 가져다주신 것도 모자라 미처 다 구울 수 없었던 남은 생삼겹살까지도 필자에게 싸주셨다. 남은 삼겹살을 주섬주섬 담는 필자의 모습에 쏟아졌던 '저렇게까지 고기를 더 먹어야 하나.'는 수많은 격투 관계자들의 질린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갖고 계신 핸더슨 어머님과 필자가 지하철에서 괜히 눈치 보이지 않도록 투명이 아닌 검은 비닐봉지에 삼겹살을 담아주시는 센스를 과시하신 음식점 사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참고로 그 삼겹살은 강남역 환승센터에서 한 번 떨어뜨려 누가 한번 밟고 가 봉지 옆구리가 터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까지 무사히 가져와 감사히 다 구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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