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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들숨날숨] 최강희와 함께 쌓은 10년의 장면, 영화를 만들다

조회수 2015. 7. 30. 15: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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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던 2005년 7월14일 전라북도 무주군에 위치한 덕유산 설천봉(1522m)을 향해 건장한 사내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리의 중심에는 새롭게 전북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초짜' 감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강희였다. 당시만 해도 감독 경력이 전무한 낯선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여름, 최강희 감독은 '재활공장장' '봉동이장' '강희대제' 등 숱한 수식어를 겸비한 K리그 대표 명장이 됐다.

당시 산행은 2005시즌 후기리그부터 전북을 이끌게 된 최강희 신임 감독과 선수들의 상견례를 겸한 '전북현대 워크숍'의 일환이었다. 동행했던 이철근 단장은 "최강희 감독이 먼저 제안했다. 축구화를 신고 첫 대면을 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구단 측에 요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해 전기리그에서 전북이 거둔 성적은 2승3무7패, 13개 클럽 중 11위에 그쳤다. 군팀인 광주상무가 1승3무8패로 최하위였고 2003년 창단한 막내 대구FC가 2승3무7패로 12위였다. 그때 전북은 그런 팀이었다. 최악의 시즌을 벗어나고자 구단은 과감하게 칼을 빼들었다. 시즌 중 수장을 바꾸겠다는 결단을 내렸는데, 선택이 의외였다.

수원삼성과 국가대표팀 등에서 코치를 역임한 것이 지도자 생활의 전부였던 최강희 감독에게 키를 맡긴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누군가는 "새 시즌부터 팀을 이끌 차기 감독에게 바통을 넘기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실패한 시즌을 처리하기 위한 형식적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그 감독이 현재 K리그 최장수 감독과 동일 인물이다.

지난 8월2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전에서 거둔 2-1 역전승은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서 거둔 154승(80무 82패)째였다. 이는 K리그 통산 단일팀 최다승 신기록이기도 했다. '수원의 아버지'로 통하는 김호 감독이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달성했던 153승(78무82패)을 넘어서는 위대한 발자취였다.

'대타' 혹은 '최단명 감독'에 그칠 수 있었던 최강희 감독이 장수 감독을 넘어 기록의 사나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0년 전 자신이 내뱉은 약속을 충실히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무주에서 마주한 최강희 감독은 전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소신을 뚜렷하게 밝혔다.

▲열심히 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가 아니라 '미쳐야' 가능하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악바리가 되어야한다. 지금 전북은 너무나도 얌전한 축구를 한다.

▲안방에서 패하는 것은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유를 불문하고 홈에서는 전승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팬들이 없는 축구는 의미가 없다.

▲선수들의 능력치를 100%라고 봤을 때 평소 120%를 훈련해야 경기에서 80~90%를 발휘할 수 있다. 훈련 때 고작 50~60%를 하면서 경기 때 100%을 바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등등이 대표적인 인터뷰 내용이다. 전북을 담당하는 기자들이나 전북의 팬들이라면 소개한 내용들이 지금까지도 최 감독의 입버릇임을 잘 알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10년 전 무주에서 만난 최강희 감독은 "앞으로는 전주월드컵경기장도 팬들로 꽉꽉 찰 것"이라는 야망도 내뱉었다. FC서울과 상암벌이 '박주영 신드롬'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다. 앞선 목표들은 대충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적어도 '전주성 꽉꽉'은 허황된 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0년 뒤 현실이 됐다.

8월26일 수원전에는 올 시즌 최다인 3만1192명이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아 녹색 물결을 만들었다. 폭염보다 더 뜨겁던 팬들 덕분에 극적인 역전승이 가능했다. 80분을 수원에게 끌려가던 전북이 막판 10분 동안 경기를 뒤집자 전주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장관이 펼쳐졌다. 최강희 감독은 "이제 경기장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참 좋다"면서 웃었다.

'이제서야'라고 아무렇지 않은듯 말했으나 그 안에는 10년의 한결 같았던 노력이 숨어 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화란 결국 수많은 사진(장면)들이 켜켜이 쌓였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션픽쳐(motion picture)라는 표현을 그대로 직역했던 과거의 '활동사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2015년 여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상영됐던 한편의 영화는 2005년 여름 덕유산을 오르면서 흘린 땀방울부터 시작된 10년의 결실이다. 양반의 도시,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이 유명했던 전주는 이제 '축구도시' 이미지가 더해졌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했던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봉동은 생각지 못했던 '이장님' 덕분에 꽤나 유명한 지역이 됐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이 실천으로 입증하고 있다. 장면이 쌓이고 모이면, 결국은 영화가 된다.

[전북 vs 수원 전체 하이라이트]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부/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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