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페어플레이와 반성문은 동의어가 아니다

조회수 2015. 5. 28. 09: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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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축구나 농구를 하면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 반칙 여부로 시작해 나중에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로 끝난다. 그 싸움에는 답이 없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때도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게임의 법칙 안에서 움직이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규칙이 아니라 도덕을 두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 심판이 있어도 다툼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덕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다.

지난 주말 K리그는 두 가지 일을 겪었다. 전북현대 한교원이 경기 도중 인천유나이티드의 박대한의 얼굴을 가격하며 물의를 빚었고, 부산아이파크의 이범영은 광주FC와의 경기에서 고의로 상대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에 잔디를 훼손해서 팬들의 지탄을 받았다. 두 선수 모두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의 조치가 나오기 전에 구단에서 자체 징계를 받았다. 모두 반성문도 썼다.

한교원의 경우는 이미 바로 퇴장을 당했고, 연맹의 상벌위원회에도 회부된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범영의 경우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이범영의 행위는 경기규칙서에도 나와 있는 반칙이 맞다. 하지만 당시에 심판이 잡아내지 못했고, 상벌위원회에 회부되지도 않았다.

이범영의 행위는 연맹 심판평가위원회에서 검토하겠지만, 퇴장을 받을 반칙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고의로 그라운드를 훼손했을 경우에는 경고를 받는다. 사후징계를 할 수 있는 행위는 퇴장을 받았어야 하는 반칙에만 해당된다. 이범영의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인지 하지 못한 심판들이 벌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범영의 행동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퇴장 당할 행동이 아니었다. 경고를 받았다고 해서 구단에서 자체 징계를 하고 자필 반성문을 쓰게 한 전례가 있었던가? 이범영이 누군가에 그렇게 큰 상처를 냈던가?

부산과 광주의 경기는 어느 대학, 어느 고등학교의 운동장에서 벌어진 게 아니다. 엄연히 국제축구연맹(FIFA)가 공인한 경기장에서 대한축구협회에서 공인한 심판의 입회 하에 벌어졌다. 프로의 경기장은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구단이나 팬이 아니라 심판이 판정하는 것이다. 심판도 인간이기에 심판평가위원회가 이를 돕는다.

심판이 이범영의 행위를 보지 못하고 넘어간 것은 지탄받아야 할 일이고, 이범영이 이해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범영에 대한 벌은 경고 한 장과 팬들의 지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구단에서 처벌의 근거도 제대로 대지 못하면서 중징계를 내릴 일은 아니다.

팬들이 화를 낼 수는 있다. 팬들의 원성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도덕의 관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이 그런 관점에서 선수를 징계하면, 어떻게 축구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라운드에는 게임의 법칙이 있다. 상대를 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일이 아니라면 경기규칙서에 의거해서 판단하고, 징계해야 한다.

경기가 격해지면 양 팀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일부러 상대팀의 기술 좋은 공격수를 밀어 제치기도 한다. 어떤 팀이든 역습을 당할 때는 일부러 무리하게 상대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기싸움'이라고 한다. 가끔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반칙을 당한 선수도 나온다. 그런데 이때 반칙을 당한 선수가 반칙을 가한 선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지는 않는다. 자신도 반대의 경우에는 그런 행동을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 경기의 일부다. 프로선수는 게임의 법칙 안에서 움직이면 된다. '이 반칙(상대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을 했을 때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반칙을 했을 때 내가 퇴장을 당하거나 우리 팀이 더 나쁜 상황으로 가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정상이다. 가끔 해설자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나. "경고 한 장과 실점과 바꿨다."

한국 대표팀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한 외국인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너무 예의가 바르다"고. 한국 수비수들은 너무 신사적이라는 것이다. 그 코치는 "한 번 공격수에게 뚫렸다면 다음에는 다리라도 걷어 차서 저지해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그냥 보내준다"라고 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중앙수비수가 맥없이 공격수를 놓아주면 '신사적'으로 돌파를 허용했다고 박수를 칠 팬이 있을까? 규칙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공격수를 괴롭히는 게 수비수의 임무다.

페어플레이는 동업자의식과 비슷한 의미다. 반칙을 아예 하지 않는 게 페어플레이는 아니다. 투지가 부족하다고 평가 받는 팀의 감독들을 만나면 나오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 애들은 독하지 못하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악당이 돼야 한다" 등등. 아마 윤성효 부산 감독도 선수들에게 투지를 불러 일으키려고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는 윤 감독이 구단 상벌위원회에 참석해 이범영의 징계를 내리는데 동참했다니. 아이러니다. 윤 감독은 선수시절에 부지런한 미드필더였다.

팬들이 선수를 비난할 권리는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팬과 선수는 다른 영역에 있다. 하지만, 팬들의 관점에서 선수를 비판한다고 해서, 구단까지 같은 관점을 갖는다면 게임은 계속될 수 없다. 선수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인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면 자체징계 혹은 계약해지와 같은 처벌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라운드에서 경고를 받을 정도의 멍청한 일을 했다고 선수에게 자필로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은 과한 조치다. 구단은 학교가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경기 도중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물린 이탈리아의 조르조 키엘레니는 FIFA가 수아레스에 9경기 출전 정지 및 4개월간 축구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리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게는 수아레스에 대해 기쁨이나 복수심, 분노 같은 감정이 전혀 없다. 이미 끝난 이야기다. 수아레스에 대한 징계가 과하다고 생각한다." 키엘리니는 도덕적인 부분에서 분노한 게 아니다. 키엘리니가 신경 쓴 것은 오직 축구라는 게임이다. "수아레스에게 아무 감정도 없다. 내게 남은 것은 경기 결과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뿐이다."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에서는 도덕을 찾고, 도덕의 영역에서는 게임의 법칙을 인정하는 아이러니는 없어야 한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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