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K리그 통키' 조성환, 박수 받아야 마땅

조회수 2015. 5. 26. 19: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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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이 정장이 아니라 갑옷 같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은 조성환 감독의 말이다.

지난 3월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개막 미디어 데이에서 정장이 가장 불편해 보인 이가 바로 조 감독이었다. 옆에서 "감독 되기 전까지 1년에 정장을 몇 번이나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갑옷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조 감독은 우직하고 남자다운 면이 있지만, 소위 옷을 잘 입는 '패피(패션피플)"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런 조 감독이 오렌지색 염색을 하고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지난 23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전남드래곤즈와의 리그 12라운드 경기에서다. 조 감독은 선이 굵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오렌지색 머리를 하고 선수단을 지휘했다. 제주는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이용의 헤딩골로 전남을 3-2로 잡았다. 환호하는 조 감독은 흡사 만화영화 피구왕 통키의 주인공 같았다.

조 감독은 전임 박경훈 감독의 공약을 이어받아 머리를 물들였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 2만 이상의 관중이 들어오면 염색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조 감독은 취임하며 "나도 그 공약을 지키겠다"라고 했고, 제주는 지난 5일 울산현대와의 경기에서 2만 13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실관중 집계시스템 도임 이후 최다관중이다.

사실 조 감독의 약속이행 방법이 가장 궁금했었다. 미용실에도 잘 다닐 것 같지 않은 사내 아닌가.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하려면 머리를 탈색한 후에 다시 염색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박경훈 감독은 탈색이 필요 없었기에 스프레이로 오렌지색 머리를 만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박경훈 감독은 23일 경기를 찾아 스프레이로 염색을 하고 관중석에 앉기도 했었다.

조 감독은 스프레이와 같은 '미봉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면 제대로 하겠다며 미용실을 찾았다. 염색은 4시간이나 걸렸다. 아내가 미용실에서 1시간 머리를 하더라도 기다릴 것 같지 않은 외모의 조 감독이다. 그런 사내가 두피 보호에 대한 문의까지 해가며 제대로 팬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주의 홍보담당자가 말을 멋지게 바꿨을 수도 있지만, 조 감독의 말은 일품이다. "머리 색깔이 정말 잘나와서 가발을 쓴 것 같다. (웃음) 부끄러움은 잠시다. 팬들과 약속이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할거면 확실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이 주황색 물결로 가득 차는 그날까지 선수들과 구단프런트와 더 열심히 뛰겠다."

멋지지 않다. 제주 구단에서 배포한 조 감독의 미용실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난다. 특히 조 감독이 하얀 미용실 가운을 두르고 있는 사진은 압권이다. 마치 머리 자르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엄마에게 끌려온 듯한 표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흰 가운이 오렌지색 머리와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것도 재미있다.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다. 평생을 운동복과 살아온 한 남자가 그것도 한 팀의 지휘봉을 든 감독이 머리를 특별한 색으로 물들이기는 쉽지 않다. "할거면 확실히 하자"라고 말하며 흔쾌히 미용실 의자에 앉을 수 있는 K리그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사진 한 장 찍자고 해도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감독도 여전히 존재한다.

축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앞에 '프로"를 달았다면 더더욱 공놀이가 아니다. 축구는 산업이다. 유럽에서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쓰고도 구단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축구가 이미 산업이기 때문이다.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쓸 수 있는 건,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들의 존재에서 가치가 나온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K리그의 현실은 이런 구도와는 다르다. 일단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흥행에 필요충족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승리만을 외쳐왔다. 팬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바라는지에 대한 탐구는 뒷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조 감독의 행동은 의미가 있다. 조 감독은 프로는 팬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도 그런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게 달갑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필자와 함께 중계를 보던 이는 "아마도 조 감독의 아내가 정말 싫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감독들은 멋진 수트를 입고 나오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이날 경기는 KBS1로 생중계 됐다. 경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아마 그날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조 감독의 머리 색깔에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제주 감독이 피구왕 통키와 같은 머리를 하고 지휘하는데 그냥 넘길 이는 많지 않다. 조 감독이 어떻게 저런 머리를 하게 됐는지 찾아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조 감독은 K리그에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다. 조 감독의 미용실 사진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넉넉하지 않은 K리그에 긍정적인 일이다. '피구왕 통키"로 분한 조 감독과 그런 조 감독을 응원한 제주 구단에 박수를 보낸다. 공들여 한 머리를 더 오래 그대로 간직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제주,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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