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브라질] 독일 성공을 따르기 어려운 이유

입력 2014. 7. 28. 18:12 수정 2014. 7. 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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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마라카낭에서 '디 만샤프트(독일 국가대표팀 애칭)'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전세계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우리도 독일 유소년 육성 제도를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독일 축구 최고의 베스트셀러 <토르!(Tor!)>의 저자 율리 헤세는 독일 모델이 다른 곳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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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두고 '12년에 걸쳐 만들어진 성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어졌다기보다 철저히 계획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유로2000을 기점으로 진행된 발전 프로젝트에서 독일 축구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댔다.

독일 축구의 성공을 바라보는 경쟁자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독일 축구는 어떻게 이런 성공을 '계획'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1980년대와 90년대 늙고 느리고 수비적이었던 독일 축구가 어떻게 젊고 재능이 넘치는 공격적인 스타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다음에 기다리면 메수트 외질과 마리오 괴체 같은 선수가 등장하는 걸까?

아쉽게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투자는 독일 축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을 뿐이다. 투자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독일 축구가 부활할 수 있었던 특유의 환경적 변수들을 무시할 수 없다.

# 투자는 필수적 그러나 결정적이 아니다

일단 투자 의지다. 독일 축구가 보여주는 숫자들을 들여다 보자. 지난 12년간 독일축구협회는 전국 각지에 유망주 육성을 위한 트레이닝센터 52개소를 신설했다. 여기에 366곳의 하부 지역센터도 갖춰졌다. 이곳에서는 1300명의 전임 지도자가 파견되어있다. '재능육성확장프로그램(Extended Talent Promotion Programme)'의 일환이었다.

본 프로그램은 2002년 시작되었다. 독일축구협회(DFB)와 프로구단이 함께 연간 4800만 유로의 운영자금을 내놓았다. 연간 운영자금 액수는 계속 증가해 지금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막대한 자금은 90년대 유소년 육성에 게을렀던 과오에 대한 벌금과 같았다. 당시 독일 대표팀을 이끌던 베르티 포그츠 감독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국 출신의 유망주가 사라지고 있으며 다들 그 문제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조만간 독일이 경쟁국들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1998년초 포그츠는 직접 유소년 육성을 위한 작은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독일 축구가 유소년 소멸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유로2000에서의 재앙(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나마 존재하는 재능마저 발견되지 못한 채 그냥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통산 최다 득점자로 올라선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보라. 독일 축구에 재앙이 덮쳤을 당시 21세의 클로제는 5부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까지 재능을 발굴하러 갈 스카우트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재능육성확장프로그램이 발족하던 날, 요르그 다니엘 이사는 "아무리 깊은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해도 드문 재능을 갖췄다면 우리가 반드시 그 아이를 찾아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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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vs 국가

그러나 독일은 재능 발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구시대적 스타일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분데스리가의 많은 구단들은 여전히 대인방어를 근간으로 하는 스위퍼 시스템을 구사했다. 풀뿌리 축구와 우수 자원 육성 분야에 못지 않게 지도자 육성에도 예산 중 큰 부분이 할당되었다. 지도자 육성을 위한 최상위 단계의 교육은 프로구단들이 담당했다.

여기서 독일 성공사례를 모방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가 발생한다. 전세계 어느 리그에서든 프로구단의 심리는 대동소이하다. 입으로는 "대표팀 전력 강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불편한 현실'이다. 프로구단은 국가대표팀의 전력 강화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솔직히 그들은 자국 선수들을 키워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프로구단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는 일만으로 가득하다. 지금 당장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선발 11인이 모두 외국인이라고 해도 구단으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구단들은 자기 아카데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 유망주를 길러냈다는 것은 좋은 구단 홍보이기 때문이다. 선수 영입 비용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쓸만한 유망주가 나오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항상 필요한 동시에 부족한 요소가 바로 인내심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어디에서 재능을 단련했는지 상관없이 완성된 선수(즉시전력감)를 사오는 것이다. 국적도 상관없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왜 그랬을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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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행운

우선 역사다. 오늘날 독일의 프로축구리그 모델은 잉글랜드와 유사하다. 독일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과 컵대회(FA컵에 해당), 심판을 관장한다. 프로구단은 독자적인 집행부(DFL; 리그연맹)를 구성해 1, 2부 리그를 관할한다. 하지만 독일 축구계가 이런 시스템을 갖춘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세기 전까지는 독일축구협회가 독일 영토 내 모든 축구 경기와 구단(팀)을 관장했다. 구단도 협회 소속이었다. 환경적 필요에 의해 협회와 프로리그가 분리되었지만, 지금도 양측의 상호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결과적으로 독일 축구계에서는 협회의 이익은 곧 프로구단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8월, 유로2000에서의 참패 직후 독일축구협회 내에서 '태스크 포스팀(TFT)'이 구성되어 대표팀 전력강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TFT는 분데스리가 7개 구단의 대표자로 구성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칼-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이 TFT의 리더가 되었다. 당시 그는 "유로2000의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라고 말했다.

TFT의 다른 구성원인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CEO 볼프강 홀츠하우저는 "우리는 대표팀을 분데스리가에서 19위에 그친 최고의 팀으로 상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협회와 프로구단의 현실과 지향점이 다르긴 하지만, 독일 축구계에서는 상호간 협력체제가 매우 공고했던 덕분에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

두 번째 이유는 돈이다. 자금력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부족했기 때문이다. 2001년말 분데스리가의 TV독점중계권자의 재정상태가 파탄 지경에 이르면서 분데스리가 소속 구단 전체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바이에른을 모든 구단들이 부득이하게 자기 아카데미에서 키운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적시장에서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리그의 구단들과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단적인 예였다. 최근 들어 도르트문트는 독일 축구의 유소년 육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사정이 많이 달랐다. 도르트문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 연속으로 독일 19세 이하 챔피언 자리를 독식했지만 그들 중 1군에서 뛰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도르트문트 역시 유럽 무대에서 당장 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전력 약화로 인해 분데스리가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도르트문트도 진지하게 유소년 육성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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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정 강화

이런 환경적 필요가 세 번째 이유로 연결된다. 엄밀히 말해 독일 축구는 유소년 육성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고 해야 한다. 유소년 출신 선수 등록 관련 규정 자체를 고쳤다. 클럽 라이선스 기준이 강화되었다.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재능육성확장프로그램'의 발족과 함께 독일축구협회와 프로리그는 유소년 육성을 위한 아카데미 운영 강화를 아예 법제화했다.

1군 스쿼드 내 유소년 출신 선수의 숫자를 의무적으로 늘렸다. 지역 학교와의 교류를 위한 코치와 물리치료사의 의무 고용 숫자도 늘렸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구단은 클럽 라이선스가 취소되어 분데스리가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강력한 제재를 구비했다. 아마추어팀이 되기 싫다면 무조건 강화된 클럽 라이선스 기준을 만족시켜야 했다.

# 사회적 변화

잉글랜드 축구계를 보라. 로만 아브라모비치 같은 구단주에게 구단의 올바른 운영방법을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만수르 왕자에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서 자국 출신 선수들을 키워내야 하오"라고 요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다행히 독일의 사정은 다르다. 분데스리가 구단들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지역 사회와 일체화된 덕분에 '공리(公利)'를 논할 수 있다.

도르트문트는 규정 강화에 대해서 끝까지 저항했다. 그들은 거의 클럽 라이선스를 박탈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마지막 순간 도르트문트는 우수 유망주 육성 센터를 개설하기로 굴복(?) 당했다. 그 센터에서 재능을 단련한 선수가 훗날 브라질에서 열린 FIFA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렸다.

독일 축구의 성공을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사회문화의 변화다. 2009년 유럽 21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독일은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우승 멤버를 보면 전례 없는 다문화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안드레아스 벡), 폴란드(세바스티안 보에니스치), 가나(제롬 보아텡), 나이지리아(데니스 아오고, 치네두 에데), 미국(파비안 존슨), 스페인(곤살로 카스트로), 튀니지(사미 케디라, 아디스 벤-하티라), 이란(아슈칸 데아가), 터키(메수트 외질)를 모국으로 하는 선수들로 꾸며진 팀이었다.

다른 서구 사회처럼 독일도 '코스모폴리탄' 국가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독일의 세계화는 타국에 비해 늦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외국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축구 국가대표팀 선발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터키 이민자들이 단적인 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터키계 독일인이 대표선수가 되기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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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신한 지도자의 배출

자국 리그의 확대도 축구 문화 변화에 일조했다. 유소년을 육성하기 위해서 더 많은 지도자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단순히 스타 출신 감독뿐 아니라 참신한 지도자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최근 독일 축구계에서는 돋보이는 지도자들이 많다. 위르겐 클롭을 필두로 랄프 랑닉과 토마스 투헬도 있고, 물론 요하킴 뢰브도 있다. 이들 모두 평범한 선수 경력을 가졌으면서도 창의적인 지도 수완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들의 발탁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위르겐 클린스만이다. 2004년 독일축구협회는 지도자로서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던 클린스만에게 국가대표팀을 맡겼다. 독일 축구의 부활사에서 클린스만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 과정에서의 '얼굴'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독일축구협회가 내린 대단히 용감한 선택이었다. 성공과 변화를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강요된 결과이었을지언정 용기는 어쨌든 용기다.

글=율리 헤세(Uli Hesse),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포포투DB 월드 No.1 풋볼 매거진...포포투 한국판(www.fourfourtwo.co.kr)☆☆포포투 한국판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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