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와 佛대통령이 보인 '리더의 자격'

조회수 2015. 2. 25. 13: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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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이지만, 리더는 자신이 품은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의 팀원이 아무런 잘못 없이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면 이에 분명하게 맞서야 한다. 안으로는 상처 받은 이를 감싸고, 대외적으로는 이에 대해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럴 때, 침묵은 금이 아니다.

주제 무리뉴 첼시 감독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적지에서 벌어진 파리생제르맹(PSG)과의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고 안도감과 더불어 조금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웃을 수 없었다. 일부 첼시 팬들이 파리 지하철에서 인종차별행위를 한 게 프랑스와 영국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첼시의 정신 나간 팬들은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술레만 실라(33)가 지하철에 타지 못하게 밀어냈다.

책임소재를 정확하게 따지면, 무리뉴는 이 사건을 책임져야 할 이는 아니다. 감독은 선수를 관리하는 이다. 감독은 팬을 통제할 시간도, 이유도 없다. 하지만, 무리뉴는 입을 열었다. 20일 열린 번리전 대비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을 한 이들에 독설을 했고, 피해자에 사과했다. "정말 부끄럽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연계되는 걸 거부한다…(중략) 이런 모습은 첼시가 아니다. 우리는 술레만에게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중략) 나는 그를 모르지만, 여기에 초청하고 싶다."

무리뉴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독설을 퍼부으며 2가지를 얻었다. 무리뉴는 첼시라는 구단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살렸다. "이런 건 첼시가 아니다"라며 백인 이외의 첼시팬들에 직접적으로 다가선 것이다. 구단 내에 있는 흑인 선수들의 동요 가능성도 막았다. 무리뉴는 "우리는 몇 년 동안 아프리카와 끈이 있는 12~14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 팀의 라커룸은 평등이라는 대원칙 아래 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라며 내부적인 단속도 했다. 첼시는 악재를 겪었지만, 무리뉴는 박수를 받았다. 민감한 사안에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술래만을 감싼 또 한 명의 리더가 있다. 바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다. 올랑드는 사생활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자신의 국민이 인종차별 당한 것에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했다. 올랑드는 술레만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그에게 직접 전화했다. 술레만이 겪은 차별에 대하 안타까움을 표했고, 프랑스 정부가 술레만의 소송(술레만은 인종차별을 한 이들을 고소했다)과 수사과정을 돕겠다고 했다. 술레만은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대통령이 내게 큰 지지를 보여줬다"라고 만족했다.

무리뉴와 올랑드가 보여준 리더십은 한국에도 울림을 가져왔다.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신문의 사회면까지 가지 않고, 스포츠면 그것도 K리그에서 일어난 사건만을 보아도 그렇다. 민감한 사안에 입을 열어야 할 때, 상처 받은 구성원 혹은 조직을 감싸야 할 때 리더가 나서는 일은 매우 드물다. 작은 일에는 사사건건 목소리를 내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묵언수행에 들어간다.

2012년 아디(현 FC서울코치)를 향한 인종차별사건이 있었다. 로꼬끄스포르티브 디자인팀장을 사칭한 어떤 이가 인터넷상에서 모델로 나선 아디를 비꼬았다. 모델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피부색깔을 꼬집었다. 하지만 당시 FC서울과 르꼬끄의 대응은 무리뉴와 올랑드의 대응과는 달랐다. 르꼬끄가 직원을 사칭한 이를 수사의뢰 한 게 전부다. 당시 팀을 이끌던 FC서울의 리더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디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알더라도 워낙 프로페셔널한 선수여서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구단의 공식반응이었다.

2014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이재명 성남시장(성남FC) 구단주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줄다리기 때도 그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 시장이 SNS에 올린 글을 문제 삼아 'K리그 명예실추'건으로 상벌위원회에 회부했고, 그 과정에서 논란이 커졌다. 결국 이 시장의 재심청구취소로 사건은 마무리 됐지만, K리그는 큰 타격을 받았다. 타격이 컸던 것은 축구계 리더들의 잘못이다. 이 시장이 K리그와 한국축구를 들었다 놓는 사이에 한국축구 리더들은 침묵했다. "K리그가 그런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이도 없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도, K리그 사령탑도 침묵했다. 이들의 침묵은 국민들에게 이 시장 발언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읽혔다.

큰 조직의 리더가 모든 구성원을 챙기고, 하나하나 돌볼 수는 없다. 리더는 전체적인 틀과 계획을 짜는 이다. 조그만 일에는 침묵으로 대응하는 게 더 낫다. 하지만 구성원 혹은 조직이 사회적인 부조리 혹은 불합리로 고통 받을 때는 리더가 나서야 한다. 리더의 권위와 힘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나는 너를 지지 한다. 너의 고통을 십분 이해한다. 우리 조직은 그렇지 않다"는 단순한 말에 많은 게 바뀐다. 무리뉴와 올랑드도 특별한 말을 한 게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말을 했기에 특별한 것이다. 한국 축구의 리더들도 적절한 말로 특별해지길 바란다.

글=류청 기자(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한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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