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류현진을 4패 투수로 만든 SF의 끝내기 픽오프(Pick-off)

조회수 2017. 4. 26. 09: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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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다저스는 71승 91패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5년간 재임하던 짐 트레이시 감독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구단은 후임자 물색에 나섰다.

이런 소문은 그쪽도 엄청 빠른가 보다. 사방에서 이력서가 쇄도했다. 서류 전형에만 며칠이 걸렸다. 가리고, 추려서 1차 합격자 5명에게 면접 일정을 통보했다. 제리 로이스터, 테리 콜린스, 론 워싱턴 등이 리스트에 있었다.

쟁쟁한 후보자들 틈에 독특한 인물이 한 명 끼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론 워터스(당시 44세)였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유격수 출신이라는 그의 선수 경력은 보잘 것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달랑 2시즌(83~84년) 32게임에 나간 게 전부였다(타율 .207 홈런 0개).

내세울 것은 코치 경력뿐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현직 3루 코치였다.

채용 면접은 폴 디포데스타 단장이 맡았다. 워터스는 이 자리에서 하버드 출신의 젊은 천재 단장에게 다저스의 수비 포메이션 문제를 지적하며 논쟁을 벌였다. 내야 수비에 관해서는 최고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전통의 명문 구단 GM과 말이다.

결과는 좋을 리 없었다. 불합격이었다. 감독 자리는 보스턴 레드삭스 출신 그래디 리틀에게 돌아갔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디포데스타마저 얼마 후 해임됐다.)

위터스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치 감독 체제(2007년~)에서 벤치 코치(한국의 수석 코치)로 롱런하고 있다. 물론 감독에 대한 야망은 여전하다. 시애틀(2013년), 템파베이(2014년), 워싱턴(2015년) 등 매년 겨울이면 빠짐없이 이력서를 들고 인터뷰를 위해 돌아다닌다.

보치 감독의 왼쪽에 나란히 앉아 있는 론 워터스 벤치 코치.          mlb.tv 화면

 ‘세컨더리 리드’ - 복선과 반전

 9회가 시작됐다. 홈 팀은 살얼음판 같은 2-1 리드를 지키고 있다. 원정 팀은 타순이 좋다. 2번부터 시작돼 클린업 트리오로 이어진다. 3점대 ERA의 마무리 투수(마크 멜란슨)에게는 꽤 터프한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1사 후 3번 저스틴 터너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다. 골치 깨나 아프게 생겼다. 이어지는 야스마니 그랜달, 에이드리안 곤잘레스 같은 좌타자를 연속으로 만나게 됐다.

첫번째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바깥에서 꺾여 들어온 백도어 커터였다(92.6마일). 그랜달은 꼼짝못하고 서서 삼진을 먹었다.

2사 1루. 곤잘레스의 차례다. 내야에는 강력한 시프트가 걸렸다. 수비는 일제히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초구가 문제였다. 82마일짜리 너클 커브가 너무 낮았다. 땅에 튀기며 포수가 잡지 못했다(기록상 폭투). 불과 몇 발짝 옆으로 흘렀지만 주자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번개 같이 스타트를 끊어 2루로 달렸다. 한 어깨 하는 버스터 포지가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려봤지만 어림없는 세이프였다.

해설진은 주자를 칭찬했다. ‘세컨더리 리드(secondary lead)’를 잘했다며 침을 튀겼다. 투구하는 순간 스타트를 걸며 리드폭을 키웠던 게 효과를 발휘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포수가 보인 작은 헛점에도 스코어링 포지션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의 복선일 뿐이었다. 거대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컨더리 리드’는 결국 커다란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짧은 폭투 때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로 2루 진입에 성공하는 저스틴 터너.    mlb.tv 화면

섬광처럼 번뜩인 벤치 코치의 메시지

2루를 손에 넣은 터너는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주자로 변모했다. ‘스치는 안타 하나만 나와봐라. 홈까지 단숨에 먹어버리겠다.’ 두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4만 1,399명의 홈 팬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일제히 소리를 모아 “Beat LA(무찌르자 LA)”를 외쳤다. 그러나 초조한 표정들은 감출 수가 없었다. 화씨 59도(섭씨 15도)의 을씨년스러운 날씨마저 공포감을 더욱 키웠다.

그 때였다. AT&T 파크가 극도의 긴장에 쌓여있던 순간이었다. 비수같이 날카로운 장면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홈 팀 덕아웃이었다. 보치 감독 왼쪽에 앉아 있던 그가 그라운드를 향해 필살의 메시지 하나를 섬광처럼 날려보냈다. 맞다. 그는 12년 전 채용 면접에서 물먹었던 론 워터스였다. 인사권자인 GM과 내야 수비 시스템을 놓고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다.

워터스 코치가 유격수를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mlb.tv 화면

그는 유격수 브랜든 크로포드를 향해 무언의 손짓을 보냈다. 양 손을 벌려 거리감을 나타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가리켰다. 직역하면 이렇다. ‘주자의 리드 폭을 봐라. 그 점 염두에 두고 플레이 해라.’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의역하면 이런 의미다. ‘저렇게 나대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어떻게 준비해서 작업 한번 들어가야지.’ 

픽오프의 핵심 : 헛스윙을 유도하라 

벤치 코치의 지시가 나오기 불과 1, 2분 전이다. 터너가 2루를 점령한 직후였다. 또 한 가지 심상치 않은 장면이 목격된다. 유격수 크로포드가 슬쩍 투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뭔가 얘기를 나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포수가 이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공사의 기획 단계다.

유격수가 투수에게 다가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마운드에서 바라보는 포지.        mlb.tv 화면

여기서 수비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주자의 움직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한 걸음이라도 리드폭을 줄여야 한다. 만약의 사태에 홈 승부를 유리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투수의 견제다. 그러나 멜란슨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 없는 큰 투구폼으로 타석의 곤잘레스와 승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자는 안도하게 됐다. 이른바 ‘세컨더리 리드’가 더욱 활발해졌다. 공격성을 더욱 키워나가도록 수비측이 일부러 유도한 것 아닌가 의심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곧이어 벤치 코치의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변수를 만드는 일이다. 즉 주자가 더 활성화될 요소를 가미시키는 일이다. 그건 곧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평소 리드폭이라면 아웃시킬 타이밍까지 빼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타자가 스윙을 하면 달라진다. 홈을 노리고 있는 주자는 동시에 스타트를 끊게 된다. 그러니까 문제의 ‘세컨더리 리드’를 시도하게 것이다. 그렇게 되면 2루에서 상당히 멀어지게 된다. 유격수의 베이스인 거리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픽 오프 당시 장면. 곤잘레스의 스윙과 함께 스타트를 끊으며 역동작에 걸리고 말았다.         mlb.tv 화면

미끼를 물다 - 가슴 높이 빠른 볼 

1루가 비어 있었다. 굳이 곤잘레스와 위험하게 승부할 필요는 없었다. 때문에 버스터 포지의 노림수는 스트라이크를 잡는 게 아니었다. 곤잘레스의 헛스윙을 유도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2루 주자를 엮는 픽오프(Pick-off) 타이밍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카운트 2-1까지는 바깥쪽 위주였다. 하지만 타자의 참을성이 발휘됐다. 그러자 포지는 메뉴를 바꿨다. 몸쪽 하이 패스트볼로 미끼를 던졌다. 4구째도 통하지 않았다. 3-1에서 마지막 5구째. 드디어 낚시에 걸렸다. 가슴 높이 직구에 곤잘레스가 강렬하게 반응했다. 동시에 2루의 터너도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아뿔사. 그 코스는 배트가 공과 만나기 어려운 지점이다. 헛스윙이 돌았고, 대신 포수의 순발력이 빛나는 순간이 됐다. 유격수의 베이스인 타이밍에 맞춰 반박자 늦은 송구가 2루로 날아들었다. 외야에서 홈쪽으로 향하는 시속 15마일(24㎞)의 역풍도 회심의 저격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2루심 빌 밀러가 27번째 아웃 카운트를 선언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야구 중계 해설자인 듀에인 키퍼가 연신 감탄사를 내지른다. “Oh my God. 저거예요. 캠프 때 계속 준비하던 거였는데. 그걸 실제로 눈 앞에서 보게 되네요. Oh my goodness….”

터너가 2루에서 픽오프에 걸려 경기가 끝나는 장면.                                     mlb.tv 화면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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