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박병호 홈런에서 틀린 그림 찾기

조회수 2017. 2. 27. 1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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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이 돼 간다. 2월 2일, 출국하는 날이었다. 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질문이 쏟아졌다. 그 중에 하나 귀에 꽂히는 게 있다. 타격 폼에 관한 것이었다. 대답이 이랬다.

“작년 타격폼으로 해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부족하다고 실감했다. 조금 수정하려고 한다. 아마 바뀐 타격 폼을 보면 ‘어디가 바뀐 걸까’라고 의아하실 것이다. 잘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당시는 방출대기조치(DFA) 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다. 작년에 못했기 때문에 훨씬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었다.

몰리터 감독의 성의 없는 관전평 

어제(한국시간 26일) 홈런이 나왔다. 어디 그뿐이겠나. 값진 희생플라이도 쳤다. 그 전날은 2안타였다. 고작 2경기였지만 제법 성과를 내고 있다.

폴 몰리터 감독도 반응을 보였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홈런은 아름다웠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 희생플라이도 꽤 좋았다. 가장 큰 변화는 사고 방식인 것 같다. 기술적으로는 작년과 같아 보인다. 타격시 스윙 스피드가 떨어지거나 빨라질 때 리듬에 변화를 주는 스타일은 변함없다.”

몰리터의 관전평은 실망스럽다. ‘기술적으로 작년과 같아 보인다’니. ‘사고 방식의 변화’ 때문이라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다. 전혀 전문가답지 않다. 그게 3천 안타를 달성한 타격의 달인이 할 얘기인가.

괜한 자괴감까지 든다.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안나는 건가? 초청 선수라고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 건가?

할 수 없다. 감독이 안하면 <…구라다>가 한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을 찾아야겠다. 그래야 ‘사고 방식’ 따위의 막연한 이유로 치부되는 비논리를 반박할 수 있다. 그래야 진화하고, 보강되고, 업그레이드 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난이도는 가볍지 않다. 출제자가 이미 ‘잘 보이지 않겠지만’이라는 단서를 걸었다. 어려운 틀린(달라진) 그림 찾기에 도전해 보자.

물론 설레발인 지 모른다. 겨우 홈런 하나였다. 그것도 시범경기 아닌가. 아직은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그게 무슨 대단한 거냐는 핀잔도 있으리라. 하지만 <…구라다>가 목에 핏줄을 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건 홈런의 질적인 차이 때문이다.

홈런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한 가운데 몰린 실투를 넘기는 건 웬만한 타자들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 것은 달랐다. 몸쪽에 제법 잘 붙은 공이었다. 게다가 빠른 볼이었다. 시범경기라서 측정은 안됐지만 수준급 스피드로 보였다.


몸쪽 낮은 직구. 모든 타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코스였다. 아울러 지난 해 그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었다. 그걸 공략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그것도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가장 먼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이건 첫 날 바깥쪽 높은 공을 때려 펜스까지 가는 2루타를 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고난도의 타격 기술이 필요한 장면이었다.

박병호의 코스별 타격 성적. 몸쪽 약점이 드러난다. (투수쪽 관점) Brooks Baseball 자료 

 어제 상대 투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에니스 엘리아스였다. 좌완으로 평균 91~92마일대의 공을 던진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은 건 아니다. 그러나 해마다 가능성은 보여주고 있다. (지난 겨울 한화가 접촉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틀린 그림 찾기를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가능한 비슷한 스타일의 상대를 골랐다. 화이트삭스의 왼손잡이 호세 퀸타나였다. 작년 6월 28일 시카고 원정 때 만났던 투수다. 평균 93마일 정도를 찍는다. 물론 레벨은 엘리아스보다 높다.

퀸타나는 당시에도 집중적으로 몸쪽 직구를 꽂았다. 지속적으로 파고드는 빠른 볼에 타자는 속수무책이었다. 전혀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이었다. 잘 하면 파울, 아니면 헛스윙이었다. 3타수 2삼진. 나머지 한 번은 유격수 팝 플라이였다. 10개의 투구 중에 9개가 패스트볼이었다.

작년과 올해 무엇이 달라졌나

투구가 시작되는 순간, 즉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타자는 시동을 건다. 여길 찾아보면 뭐가 달라졌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교 포인트가 몇 군데 있다.

① 양 손의 위치 : 파워 포지션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높이나, 앞 뒤 위치에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② 배트의 각도 :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타이밍 차이가 난다. 뒤로 제끼는 스타일이 있고, 투수쪽으로 눕히는 타자가 있다. 그는 눕혔다가 발사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서도 뚜렷이 달라진 것은 없다.

③ 다리 : 타자들이 가장 변화를 많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높이 들었다, 낮게 들었다. 넓게 벌렸다, 좁게 했다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왼쪽 다리의 높이나 폭에서도 별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타격 순간에서는 답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점을 조금 더 앞으로 되돌려 보자. 준비 자세다. 골프에서는 어드레스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타격을 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선 자세를 보자. 여기서는 뭔가 보인다. 왼발의 위치가 확연히 달라졌다. 작년까지 그는 정석적인 스탠스를 고수했다. 양 발이 평행하게 선 자세 말이다(스퀘어 스탠스ㆍsquare stance).

그런데 바뀐 타격폼은 왼발을 약간 뒤로 뺐다. 그러니까 몸을 약간 투수 쪽으로 열고 친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약한 오픈 스탠스(open stance)라고 봐야 할 정도다. 이 때 발바닥도 관찰 대상이다. 완전히 땅을 딛는 게 아니다. 발꿈치는 들고, 엄지 발가락 부분으로 중심을 잡는다. 체중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모습은 이번 스프링 캠프 타격 훈련 때도 관찰된다. 비 오는 날 실내 타격장에서 찍힌 사진이다. 역시 왼발을 열고 있다.

타격 폼의 변화는 몸쪽 빠른 볼에 대한 대처 때문이다. 아무래도 투수 쪽으로 상체를 열고 있으면, 대처하는 데 여유가 생긴다.

물론 단점도 있다. 변화구에 약점을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 왼쪽 어깨가 빨리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떨어지는 공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아마 대비책을 세우고 보강하고 있을 것이다.

타격폼 수정에 대한 트라우마 

그는 타격폼 수정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만년 유망주로만 불리던 구리 본즈 시절이었다. 1군에만 올라가면 폼을 바꿔야 했다. “한달에 한 번, 심하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 코치님이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 시키는대로 안하면, 게임을 못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번 교정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작년 초가을. 가장 먼저 시즌을 접고 귀국했을 때다.      

“원래 폼으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수정하려 한다. 타이밍을 왼쪽 다리로 잡고 치는 편인데, 그 준비 동작이 길었던 것 같다. 짧게 줄여서 빨리 투수의 공에 준비해야겠다. 직접 경기를 뛰면서 피부로 느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정교함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타격 폼을 좀 더 간결하게 하려 한다. 그래야 힘 있는 투수와 맞설 수 있다.”

물론 아직 성공을 얘기하기는 턱 없이 이르다. 왼발 조금 바꿨다고, 그리 쉽게 해결 되겠는가. 수정과 보완은 계속 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여전히 마이너리그 소속이다. 당장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지 않은 초청선수 신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희미하지만 빛이 보인다는 점이다. 깜깜한 상황과 여건을 딛고 매달릴 수 있는 뭔가가 생겼다는 점이다. 희망은 불씨를 살려낼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좌절을 이기는 땀에서 비롯될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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