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수원도 울고 서울도 울고 그리고 친구들도 울었다

조회수 2016. 12. 5. 13: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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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우승자를 결정 짓는 마지막 순간은 잔인했다. 승부차기라는 방식이 늘 그렇지만 이번에는 더욱 그랬다.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결승 2차전에서 서울과 수원은 정규시간을 넘어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끝내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 승부차기도 쉽사리 끝나지 않았고 어렵사리 찍어낸 마지막 장면은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못할 아픈 상처로 남았다. 너무도 잔인하지만 '이것이 축구'라는 명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던 '슈퍼파이널'이었다.

경기 시작 전 수 많은 취재진이 서정원 수원 감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양 팀 감독이 악수를 나눌 때 부터 이미 경기가 시작된 듯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쏟아지는 휴지폭탄
수원의 간절함은 잊고 있었던 '윤성효 부적'도 부활시켰다.

양 팀 서포터가 뿜어내는 열기는 한겨울 추위도 녹일 듯 뜨거웠고, 그라운드의 기싸움도 대단했다. 거친 볼 경합에 전반부터 경고와 퇴장이 속출했고, 후반에는 급기야 구급차까지 등장했다. 우승컵을 놓고 펼치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 몸을 사리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원 장호익과 서울 이석현이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 
전반 36분 경고누적으로 퇴장명령을 받은 수원 이정수
이정수가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의 다카하기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장호익의 드리블을 저지하기 위해 몸을 날린 김치우는 심한 부상으로 응급차에 실려 이송됐다. 

결승 1차전을 2-1 승리로 이끈 수원은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터트리며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후반 30분 아드리아노에게 동점골을 내준 뒤 후반 종료 직전 서울의 신예 윤승원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연장전에 돌입했다. 흥미로운 것은 2-1로 경기가 종료되자 수원 벤치에서는 한숨이 나왔고, 수원의 서포터석에서는 변함없이 우렁찬 응원의 목소리가 흘렀나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팬들이 더 커보였다.

종료 휘슬에 하늘을 바라보는 수원 서정원 감독
연장전 돌입에도 흔들림 없이 응원을 이어가던 수원 서포터스    

그라운드의 팽팽함은 끝내 결판을 내지 못한 채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퇴장으로 빠진 이정수와 다카하기를 제외한 양 팀의 9명의 선수가 차례로 골대 앞에 섰다. 공교롭게도(?) 양 팀 18명의 선수가 모두 골을 성공시켰다. 

승부차기를 지켜보는 양 팀 선수단 
간절한 마음으로 승부차기를 지켜보는 서울 서포터스 

앞서 언급한 잔인한 장면은 바로 여기서 펼쳐졌다.



#끝내 눈물 쏟은 골키퍼 유상훈

필드 플레이어가 모두 골을 성공시키면서 마지막으로 양 팀 골키퍼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먼저 골문을 마주한 서울 골키퍼 유상훈은 볼을 하늘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다음 차례인 수원 골키퍼 양형모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수원은 우승을 확정했다.

승부차기 마지막 골을 성공시킨 양형모 골키퍼에게 달려와 안기는 수원 선수들

마지막 골망이 흔들리는 순간 수원 선수들은 일제히 양형모 골키퍼에게 달려갔고, 서울 선수단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료 유상훈에게 향했다.

유상훈 골키퍼에게 위로를 전하는 서울 선수들

대개 승부차기에서 패한 팀 선수들은 그 자리에 멍하게 서있거나 주저 앉아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선수 중 누구도 슬픔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마지막 키커로 나선 유상훈 골키퍼에 대한 배려였다.

선수단 모두 유상훈 골키퍼를 위로했고, 황선홍 감독도 그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고개숙인 유상훈을 다독이는 황선홍 감독

그를 원망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가 더 미안함을 부추겼는지 관중석으로 향하던 유상훈은 끝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았다.

일반 관중석으로 향하던 유상훈이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고 있다. ​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고 얼굴을 감싸던 유상훈은 서포터석에 다다르자 더욱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팬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연신 눈물만 흘리던 유상훈

팬들이 이름을 연호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깊이 얼굴을 파묻은 채 되돌린 발길을 재촉했다. 

그는 경기 종료 후 "그냥 너무 화가 났다. 팬들과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모든 선수들이 다 잘했는데 내 실수로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군입대를 앞둔 유상훈에게 이날 경기는 한동안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이 될 듯하다.



#'축구'와 '브라질'로 연결된 하나된 슬픔

한편 이날 경기에는 다른 슬픔도 존재했다. 경기 시작에 앞서 양 팀 선수단을 비롯 전 관중은 항공기 추락 사고로 희생된 브라질 프로축구 샤페코엔시 선수들을 추모하는 묵념에 임했다. 머나먼 타국의 일이지만 '축구'와 '브라질'이라는 연결고리는 그들을 애도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항공기 추락 사고로 희생된 브라질 프로축구팀 샤페코엔시 선수들을 위한 묵념

수원 선수들은 검은 띠를 두르고 경기에 임했고, 팬들은 'PRAY FOR CHAPECOENSE'라는 걸개로 슬픔을 함께 했다. ​

이번 참사로 3명의 친구를 잃은 수원 조나탄은 선제골을 넣은 뒤 기쁨을 억누르며 동료들에게도 세리머니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취하는 조나탄 ​ 
조나탄은 동료들의 축하에도 굳은 표정으로 세리머니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웃으며 달려온 염기훈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이내 굳은 표정으로 위로의 제스처를 취했다.
동료들이 돌아간 뒤 조용히 검은 띠에 키스하며 애도의 뜻을 전하는 조나탄    

경기 종료 후 조나탄은 “샤페코엔시에 친구 3명이 있었다. 경기 전에 많이 생각했고 경기에 들어갔을 때는 잊었다. 하지만 골을 넣는 순간 다시 그들이 떠올랐고 세리머니를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교체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면 다시 한 번 애도의 뜻을 표하는 조나탄
우승 세리머니 중 샤페코엔시를 응원하는 걸개를 들고 취재진 앞에 포즈를 취하는 산토스, 반델레이 피지컬 코치, 조나탄

조나탄은 후반전 교체로 나갈 때 성호를 긋고 검은 띠에 키스를 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그들을 애도했고, 우승을 확정 지은 뒤에도 취재진 앞에 'FORCA CHAPE(힘내라 샤페코엔시)'라는 걸개를 들고 샤페코엔시 선수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전했다.

FA컵 득점상을 수상한 브라질 출신 공격수 아드리아노는 ‘VAMOS VAMOS CHAPECO(가자 가자 샤페코)'라고 적힌 언더셔츠를 입고 시상대에 오르기도 했다. VAMOS는 '가자'라는 뜻으로서 응원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아드리아노 역시 운명을 달리한 조국의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을 향해 따뜻한 메시지로 위로를 전했다.

올 시즌 내내 마음고생이 심했던 수원의 선수들과 팬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시즌 더블을 노리던 FC서울의 선수들과 팬들은 아쉬움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자신들과 똑같이 축구에 꿈을 담아 뛰었던 또 다른 친구들을 떠올린 눈물도 있었다. 다양한 이들의 사연 있는 눈물들이 쏟아졌던 2016년 FA컵 결승이었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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