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강정호의 치명적 실책, 6월 '그 사건'에 대한 나쁜 상상까지

조회수 2016. 12. 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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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뉴스를 훑어보던 후배가 1보를 알렸다. "강정호가 음주운전에 걸렸다네요."

"어? 음주운전?" 주위의 관심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각자 검색창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들었다.인명 피해를 체크했다. 다행히 없는 것 같았다. 이어 혈중 알코올 농도와 술 마신 장소, 일행 여부. 등등. 자잘한 주변 상황들이 모아졌다.

조금 뒤. 심각한 팩트 하나가 추가됐다. "뭐야, 뺑소니까지 했네." 사고를 내고 그대로 도망쳤다가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어이 없는 사실이 하나가 더 보태졌다.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다가 걸린 것 같다는데."

급기야 예전에도 2차례 음주운전에 적발된 전력이 발견됐다. 삼진 아웃 케이스라는 것이다. 최악이다.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였다. 마치 우울한 요즘 시국 같다.

강렬한 어휘들이 등장하는 사장의 성명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징계 여부다.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소속팀의 반응이다. 파이어리츠는 사건이 알려진 후 이렇게 발표했다.

"우리는 강정호가 금요일 오전 한국 서울에서 심각한 혐의에 연루된 것을 파악했다. 우리는 그가 이번 일에서 보인 일련의 결정에 대해 극도로 실망했다. 음주 운전은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이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일과 관련한 사실들을 모두 파악하고, 강정호와도 얘기를 나눠본 뒤 추가되는 언급을 하겠다."

성명서는 몇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했다. 먼저 시점이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피츠버그 시간으로 저녁 6시 이후였다. 비시즌 임을 감안하면 근무시간 끝난 뒤다. 그럼에도 공식 코멘트가 즉각적으로 릴리스됐다. 게다가 성명의 주체가 구단 사장인 프랭크 쿠넬리였다.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조다. 아주 강렬한 어휘들이 등장한다. '극심하게(extremely) 실망해서', '어리석은(foolish) 행동' 같은 표현들이다. 웬만한 공식 코멘트에는 잘 쓰지 않는 것들이다. 특히 자기 팀 선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극히 이례적이다.

쿠넬리 사장은 명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를 나온 수재다. 게다가 잘 나가는 변호사 출신이다. 사장으로만 10년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재직 시절에도 사건 사고의 중재 담당을 맡았던 경력이 있다. 대외적인 어휘 선택에 대해서는 고도로 훈련된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신도 2012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바 있다.)

그의 성명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하나 있다. 혐의에 대한 부분이다. 언급된 것은 음주 운전에 관한 것 뿐이었다. 뺑소니나 운전자 바꿔치기 같은 부분은 거론하지 않았다. '관련된 사실들을 더 파악해 보겠다'며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죄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는 DUI(음주운전)에 대해 별도의 징계를 내리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간단한 벌금과 치료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곤 한다.

하지만 뺑소니의 경우는 다르다. 2008년도 세인트루이스 소속이던 스캇 스피지오가 캘리포니아에서 음주 사고를 내고 도망가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카디널스 구단은 구치소에 수감된 그에게 즉각적인 방출 통보를 내렸다. 물론 당시 스피지오는 약물 등 다채로운 전과가 있었다. 나이도 35세였다. 현재 강정호의 가치와 비교하기 어려운 점은 있다.

어쨌든 사장의 성명서는 팩트(혐의)에 대해서 신중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어조를 통해서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그가 잃은 가장 치명적인 것 '신뢰' 

쿠넬리 사장은 반년 전에도 성명 하나를 발표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사건' 때였다.

"우리는 강정호에 대한 이러한 주장(성폭행 혐의)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함께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 당시는 변호사 출신다웠다. 상당히 냉정했다. 사건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자제됐다. 심각성은 인정했지만, 잘못된 부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역력했다.

2개의 성명서는 비슷한 시점에서 발표됐다. 경찰 조사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유무죄는 법원의 판단을 통해 확정된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예단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법률가 출신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무슨 차이였을까.

이 사건의 본질은 음주 운전이 아니다. 사고를 숨기려는 시도와, 책임을 떠 넘기려는 기도가 훨씬 더 큰 문제다. 그로 인해 그는 신뢰를 잃었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동안 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 영향은 지난 6월 사건에도 파급될 지 모른다. 이제까지 많은 그의 팬들은 그의 무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신고가 접수된 뒤 몇개월째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혹시?' 하는 의구심을 내비친다.

당시를 따져보면 그렇다. 처음 알려질 당시만 해도 무척 위중한 사건으로 보였다. 피해자로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도 구체적인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법률 전문가의 조언이 작용한 흔적이 강했다. 이틀 뒤에 병원까지 직접 가서 '레이프 키트(rape kit)'라는 성폭행 증거 채취 작업을 했다거나, 10일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완벽히 묻혀 있다. 유일하게 알려진 사실은 신고자가 23세의 백인 여성이라는 점이다.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보도된 바로는 경찰 조사가 지지부진한 이유가 신고자 때문이다. 연락을 잘 받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의 의지나, 차분함, 준비성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니까 여지껏 우리가 믿었던 것처럼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도 성립할 지 모른다.

말했다시피 강정호의 실책은 결정적이다. 그로 인해 이제까지 이룬 많은 것들을 잃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신뢰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아쉽다. 한때는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선수였는 데 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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