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못난 패자(敗者)들의 '훈훈했던 시리즈'에 박수를

조회수 2016. 10. 26. 09: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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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가 마지막 스트라이크를 흘려 보냈다. 구심 우효동 씨의 오른손이 가차 없이 올라갔다. 27번째 아웃 카운트였다.

3루쪽 원정 팀 응원석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거대한 환호성이 잠실의 밤하늘을 뒤덮었다. 덕아웃에서는 김경문 감독이 수고한 코치들과 스태프를 일일이 안아줬다. 그라운드의 선수들도 첫 한국시리즈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반면 1루측 홈 팀은 차분했다.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들고 관중석을 향해 도열했다. 머리 숙여 죄송함과 감사함을 전했다. 정성훈은 큰 절을 올렸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팬들은 남겨놓았던 박수를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렇게 그라운드에는 정반대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 쪽은 승리의 기쁨을, 다른 한 쪽은 실패의 진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 하나가 연출됐다. 마치 어둠이 가득한 무대로 떨어지는 한줄기 스포트 라이트 같았다. 선명하게 주위와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그건 분명히 양상문 감독이었다. 패배의 아픔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사람이다. 그가 뚜벅뚜벅 3루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환희의 세리머니가 한창인 무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을 발견한 김경문 감독, 양승관 수석 코치가 서둘러 다가온다. 만감이 담긴 악수와 포옹이 이어진다.

어디 양 감독 뿐이겠는가. 패한 팀은 승자를 위해 축하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나마 눈 인사를 나눴고, 엄지를 들어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최후의 아웃 카운트 희생자였던 김용의는 적극적이었다. 직접 달려가 몸으로 표현했다. 김태군, 나성범 등에 진심어린 부러움과 칭찬을 전했다. 김태군은 그런 선배를(놀랍게도 4년 차이) 따뜻하게 안아준다.

“한국시리즈 가서 꼭 우승해라” 패장의 당부

다음은 OSEN 한용섭 기자가 전한 목격담이다. 4차전이 끝난 뒤 잠실 구장 본부석에 마련된 인터뷰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통 패장 인터뷰를 가장 먼저 한다. 괴로운 사람이니 가급적 빨리 마치고 돌려보내려는 배려다. 그래서 양 감독이 먼저 기자회견을 끝냈다. 그리고 라커룸으로 가다가 복도에서 박석민과 마주쳤다. 그라운드에서 MVP 인터뷰(방송을 위한)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던 도중이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좁은 복도에 피해 갈 곳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MVP가 깍듯한 폴더 인사로 예를 갖췄다. 그냥 보낼 양 감독이 아니다. “그걸 넘기삐나(넘겨버리나)?” 결정적인 홈런을 맞은 데 대한 원망(?)을 실었다. 물론 정색이었을 리 없다. 빙긋이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었다.

아무리 넉살 좋은 박석민이라도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답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쭈뼛거렸다. 그제서야 패장은 덕담을 건넨다. “그래 한국시리즈 가서 꼭 우승해라. 너그 감독이 그리 원하는 우승인데….” 그걸로 성이 안차는 지 한 마디를 보탠다. “그리 쳐서는 안된다. 더 잘 쳐야한다.” 그때서야 MVP는 “넵. 알겠습니다”라며 진땀 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울려퍼진 합창 <걱정말아요 그대>

 물론 이번 플레이오프에 좋은 평점을 주기는 어렵다. 완성도 면에서 크게 떨어진다는 혹평이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에 비해 점점 시들해진다는 팬들의 지적이었다.

창원 1, 2차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잠실로 옮긴 뒤가 문제였다. 막판에 몰린 트윈스의 공격력이 헛돌기 시작했다. 결정력을 잃고 시종일관 갑갑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특히 중심 타선의 부진은 심각했다. 결정적인 찬스 때마다 한 방이 아쉬웠다. 졸전에 대한 여론의 거센 질타에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구라다>는 이번 시리즈에 박수를 보낸다.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훈훈함 때문이다.

물론 몇 차례 아슬아슬한 대목도 있었다. 특히 어제(25일) 4차전이 그랬다. 해커와 타이밍 싸움에서 미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잦은 견제구, 그리고 타자들은 타석을 벗어나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해커의 위협적인 패스트볼이 두어 차례 타자 몸쪽 깊은 곳으로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한 치의 물러섬도 허락되지 않는 살벌한 곳이었지만, 결코 따뜻함을 잃은 적은 없었다.

3차전 때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다이노스 김태군이 중견수 앞 안타를 날렸다. 류제국의 얼굴로 향한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였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1루에 나간 김태군은 누가봐도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즉시 타임을 걸고, 한 달음에 마운드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안부를 살폈다.

지난 봄 트윈스의 스프링캠프 때였다. 불펜 포수 여주형 씨가 부른 노래 한 곡이 화제가 됐다.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였다. 오랜 객지 생활에 지친 선수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는 사연이었다. 그들은 정규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8일에도 팬들과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어제도 그랬다. 경기가 끝나고 패자들이 도열했다. 1년 동안 성원해준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때 응원석에서는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에 커다란 합창이 됐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중략)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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