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PO리포트3]KBO의 The Catch 그리고 만루, 만루, 만루

조회수 2016. 10. 25. 09:24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무수한 기회를 무산시킨 가운데 LG 중견수 안익훈의 슈퍼 캐치에 이어 땅볼로 11회말 결승점 뽑고 4차전으로

‘야구 앞에서 겸손하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보다보다 이런 경기는 처음 본다.’라는 말 역시 야구에서 종종 나옵니다.

이 세상 경기를 다 본 것 같아도, 또 전혀 본 적이 없는 경기가 또 펼쳐지는 게 바로 야구입니다. 그래서 야구 앞에서 잘난 척 하다가는 큰 코를 다치곤 합니다. 24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PO 3차전은 그간 3000경기쯤 취재한 경기들을 다 되돌아봐도 듣도 보도 못한, 또 처음 보는 참 진기한 경기였습니다.

이날 잠실구장에서 열린 PO 3차전은 11회말 1사에 대타 양석환의 타구가 투수 글러브 맞고 굴절될 때 3루에 있던 히메네스가 홈을 밟으면서 2-1로 마무리 됐습니다. LG 트윈스는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며 1승2패를 만들고 25일 4차전에서 희망투를 이어가게 됐습니다. 반면 무수한 위기를 넘기며 버티던 NC 다이노스는 11회초 절호의 기회가 무산되며 결국 스윕에 실패, 험난한 적지 4차전을 벌이게 됐습니다.


이날 11회 장기전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1회초 LG 중견수 안익훈의 믿기 어려운 수비였습니다.

 

사실 길고도 지루하기도 했던 이날의 승부는 양 팀의 뛰어난 수비로 수많은 고비가 겨우 겨우 실점없이 넘어갔는데, 그 중에도 가장 결정적인 플레이어는 안익훈이었습니다.

11회초 트윈스 마운드는 1차전 패전 투수였던 마무리 임정우로 9회말 2아웃부터 올라와 호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1회초 1사에 9번 김성욱을 볼넷으로 내준데 이어 1번 박민우에게 안타를 맞고 큰 위기에 몰렸습니다. 임정우는 침착하게 2번 이종욱을 삼진 처리했지만 3번 나성범을 만나 결정적인 실투를 하고 맙니다. 초구 129km 포크볼을 던진 것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중앙에 높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간 침묵하던 나성범의 배트는 번개처럼 돌아갔고 총알 같은 타구는 외야 담장을 때리느냐, 넘어가느냐의 기로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11회가 시작되면서 LG 중견수는 안익훈으로 교체됐습니다.

경기 후반 리드하거나 혹은 팽팽한 경기에서 외야 수비 강화를 위해 자주 사용하는, 트윈스 수비의 가장 강력한 카드가 안익훈입니다. 그리고 참 절묘하게도 나성범이 친 타구는 잠실 야구장을 절반으로 가르면서 중앙 펜스를 향해 쭉 쭉 뻗어갔습니다. 그러나 딱! 하는 순간에 이미 안익훈은 펜스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어쩌면 이 공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나성범의 타구는 힘을 잃지 않고 계속 뻗어갔는데, 안익훈의 다리도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외야 잔디를 박차며 치달렸습니다. 그리고 공이 펜스를 때리기 직전에 날아오르듯 오른팔을 쭉 뻗어 이 공을 낚아챘습니다.

1954년 MLB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자이언츠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는 ‘The Catch’로 명명된, 100년 넘는 월드시리즈 사상 여전히 최고의 수비 장면으로 꼽히는 '서커스 캐치'를 후대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안익훈은 이날 PO 3차전에서 KBO리그 포스트 시즌 사상 두고두고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슈퍼 캐치를 했습니다. 나중에 ‘너 안익훈의 그 수비 봤어?’라는 게 야구팬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요.

임정우는 동료의 슈퍼 캐치에 저도 모르게 마운드에 주저 않으며 머리를 감쌌고, 이미 1루를 돌던 나성범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헬멧을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이노스 두 명의 빠른 주자는 넉넉히 홈을 밟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익훈의 수비는 패배를 거부했습니다.


안익훈은 만 20세의 고졸 2년차 선수입니다.

그의 수비는 이미 야구계에선 정평이 나 있습니다. '10년에 하나 나올법한 외야 수비력을 갖췄다.'는 말을 들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176cm로 운동선수치고는 단신이고 아직 1군 무대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의 타격 능력을 보이진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열심이고 악착같은 투지를 지닌 선수라 풀타임으로 기회를 주었다면 공격에서도 훨씬 큰 발전을 했겠지만 LG의 외야진 경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작고 힘에서 밀리는 그는 2015시즌 말부터 테이블 세터로 기회를 받기도 했지만 그 기회를 확실히 살리진 못했습니다. (50경기에서 3할3푼9리에 출루율 4할2푼3리면 사실 아주 빼어난 기록이지만 74타석에 불과한 표본이 아직 너무 적었습니다.)

하지만 팀의 간판선수인 박용택은 올 시즌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안익훈을 주목하라. 야구를 잘 할 기질이 보이는 친구다. 오지환도 신인 시절부터 그런 기질이 느껴졌었다. 지금 안익훈의 모습이 딱 그렇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에 인색한 엄격한 선배인 박용택에게 극찬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11회초에 나온 안익훈의 수비는 LG 트윈스에게 1승으로 가는 희망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일단 바꿔 놓았습니다. 때론 그렇게 결정적인 수비가 야구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LG 트윈스가 이날 3차전을 도대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는 꽤 오래갔습니다.

무수히 루상에 주자가 나가고 무수히 그대로 루상에 남았습니다. 다이노스의 만 21세 젊은 선발 투수 장현식은 시작부터 도무지 영점을 잡지 못했고, 1회말 볼넷으로만 만루를 내줬습니다. 그리고 또 볼넷 밀어내기로 이날 첫 점수를 내주고 다시 2사 만루, 그러나 7번 손주인이 친 공은 우익수에게 잡혔습니다.

1회말에만 두 번의 만루를 시작으로 2회말 다시 볼넷 3개로 2사 만루 후 4번 타자 히메네스가 NC 두 번째 투수 최금강에게 삼진을 당했습니다. 3회말에는 두 명의 주자가 나갔지만 9번 김용의 날카로운 타구가 NC 중견수 김준완의 호수비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4회말 볼넷 2개와 안타로 다시 만루였지만 6번 채은성이 외야 뜬공 아웃. 4회까지 이미 다이노스 투수진은 10개의 볼넷으로 포스트 시즌 한 경기 최다 볼넷 타이기록을 세웠고, 물론 이 기록은 이날 완전히 깨지고 맙니다. 6회말 또 볼넷 2개와 안타가 중간에 끼며 5번째 만루가 나왔지만 채은성이 친 땅볼이 중앙을 빠져나가는 대신 손시헌에게 잡혀 또 잔루만 잔뜩 남겼습니다.


특히 8회의 만루 기회는 트윈스 팬에겐 절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엔 안타, 사구, 사구로 만든 6번째 만루에서 이날 2안타를 친 히메네스의 타석이었지만 그가 친 강한 타구는 3루수 박석민에 바로 잡혔습니다. 3루 베이스 밟고 홈 송구로 협살 과정에서 3루 주자 문선재가 주저앉으며 포수 김태군의 태그를 피했다는 판정으로 홈에서 세이프, 드디어 1-1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그러나 합의 판정 결과는 포수의 미트가 주자를 먼저 터치했다고 뒤집혔습니다. 이어서 몸에 맞는 공으로 LG는 이날만 7번째 만루가 됐지만 채은성이 친 강한 타구가 이번에는 우익수 나성범의 다이빙 캐치에 잡히고 맙니다.


8회까지 트윈스의 잔루만 17명이었습니다. LG 2번 이천웅은 4연속 볼넷 등 한 경기 5개의 4사구라는 기록을 세웠고, NC 5번째 투수 이민호는 한 이닝 3사구의 기록도 새로 썼습니다. NC 공격도 무력하긴 만만치 않아서 7회까지 10개의 잔루를 남겼습니다. 매 이닝이 끝날 때마다 루상에는 돌아오지 못한 주자가 그득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기 마지막에 만루가 나오지 않은 대목은 좀 의외였습니다.

11회초 안익훈의 슈퍼 캐치로 큰 위기를 넘긴 LG는 11회말 선두 히메네스가 NC 6번째 투수 김진성에게 볼넷을 골라 나갔습니다. 이어 오지환이 안타를 치며 주자는 1,2루가 됐고 채은성의 희생 번트로 1사에 2,3루로 이동했습니다. LG는 대수비였던 황목치승 대신에 양석환을 대타로 내세웠고, 1루는 비어있었습니다. 조심스런 유인구 승부를 펼치다가 안 되면 이날 8번째 만루도 불사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1볼에서 2구째 공이 스트라이크존 낮은 곳으로 꽂혔고 양석환은 주저하지 않고 방망이를 냈습니다.

아마도 다음 타자 정상호의 오늘 타격감이 아주 좋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몸쪽으로 붙이려던 공이 안으로 몰린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공으로 이날 경기의 운명은 갈렸습니다.


양석환이 공을 때린 순간은 마치 느린 영상이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빗맞아 회전을 잔뜩 머금은 공은 투수의 글러브를 튕기며 유격수 앞으로 흘렀고 손시헌이 공을 잡았을 때는 이미 히메네스가 홈에 다다를 무렵이었습니다. 경기 개시 4시간46분만에 딱 3점째가 난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경기의 썩 내세우고 싶지 않은 포스트 시즌 신기록들을 보면

-NC 최다 볼넷 허용 13개

-양 팀 최다 볼넷 19개

-양 팀 최다 4사구 25개

-LG 한 팀 최다 잔루 19개

-양 팀 최다 잔루 33개


이날 NC 투수 6명은 197개의 공을 던졌고, LG 6명 투수는 18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LG가 15명의 야수가 52번, NC는 13명의 타자가 48번 등 타자들이 총 100번의 타석에 나섰는데 안타는 똑같이 6개씩, 총 12개에 불과했습니다.

내용이나 진행 과정을 보면 명승부로 꼽을 수는 없었지만,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승부였습니다. 그리고 안익훈의 슈퍼 캐치에 이은 마지막 공격 득점으로 25일 PO 4차전이 치러집니다.


LG는 우규민을, NC는 해커를 각각 선발로 내세웁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