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윤의 스탯토리] 임정우의 'MLB급' 커브 사용법

조회수 2016. 10. 18. 15: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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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주목해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마무리 투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최고의 마무리 투수를 가진 팀의 마지막 이닝은 늘 밋밋하고 평범하다.

1승1패로 균형을 맞춘 채 잠실 라운드에 접어들었던 준플레이오프 3,4차전이 그랬다.  경기는 내내 치열했다.  드라마도 많았다.  하지만 마지막 이닝은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마운드에 승리팀 마무리투수 임정우가 서 있었다.

그의 대표 구종은 커브다.  3000RPM이 훌쩍 넘는 경우도 흔하다.  메이저리그에도 이런 커브가 흔하지 않다.  그런데 원래 그랬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런 커브를 던졌다.  하지만 그때 임정우는 리그의 흔한 유망주이거나 괜찮은 불펜자원이거나 어중간한 하위선발 후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하나다.  소속팀 LG 트윈스의 기적같은 후반기 공세의 주역이다.  뭔가 달라졌다.

그는 무난한 패스트볼을 가졌다.  평균구속 144kmh 정도다. 별다른 특징은 없다.  대신 변화구의 선택지가 많다.  수준급의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던진다.  커브 뿐 아니라 이 두 구종 역시 결정구로 쓰기에 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것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 달라진 것은 그 공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좌타자를 상대할 때 스플리터의 비중이 12.3%-16.0%-19.0%로 늘어났다.  우타자를 상대할 때는 커브의 비중이 높아졌다.  16.2%-17.0%-20.3%다.  패스트볼 비중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고 좌타 상대 슬라이더 사용비중도 줄었다.


좌타자는 스플리터, 우타자는 커브

투수의 싸움은 결국 자신이 가진 무기의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지난 3년동안 임정우가 보인 변화에는 전략적 선택이 있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것 보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이다.  

임정우는 타자를 압도하는 파괴적인 패스트볼을 갖고 있지 않다.  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제구력도 그의 것은 아니다.  대신 구종의 다양성이 있다.  보여주기 구종이 아니라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는 모두 리그 수준급 완성도를 가졌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다.  구종의 다양하고 불규칙한 배열과 조합을 통해 상대의 노림수를 흩어놓고 허를 찔러가는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구종을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상황에 던지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전략이다.

변화구는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바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효과적이다.  우투수의 커브와 슬라이더는 그래서 우타자에게 더 위력을 갖는다.  스플리터는 기본적으로 떨어지는 공이지만 좌우 움직임에서 체인지업이나 싱커처럼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좌타자에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타자도 안다.  타자가 노리는 방향 대비하는 구종도 같다.  힘으로 누를 수 있는 패스트볼과 달리 변화구는 타자에게 읽히면 장타를 허용하기 쉽다.  게다가 임정우는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는 상황이 많았다.  그것이 구종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라 해도 배터리가 ‘뻔한 구종선택’을 주저할 만한 이유다.  임정우는 작년까지 이런 상황에서 늘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좌타자에게는 스플리터를 우타자에게는 커브를 ‘뻔하게’ 던진다.  결과는 더 좋다.

뻔한 구종선택, 더 좋은 결과

또다른 변화도 맥락이 같다.  볼카운트에 따른 구종 선택이다.  커브와 스플리터는 헛스윙 유도에 적합하다.  따라서 2S로 몰아넣은 이후에 가장 효과적이다.  비슷한 공에 손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타자의 압박도 크다.  성공하면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얻는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다른 구종이 필요하다.  좌타자에게 슬라이더를 쓰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패스트볼 하나 밖에 없다.  우타자에게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2가지다.  하지만 이 두 구종은 구속차이가 작기 때문에 같은 타이밍에 대처할 수 있다.  

150km짜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운데를 보고 던져도 밀려서 파울이 되기 쉽고 볼카운트는 투수에게 유리해진다.  하지만 임정우는 그런 패스트볼이 없다.  변화를 준다면 패스트블과 커브, 스플리터를 섞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구 타이밍이 읽히면 볼카운트만 불리해진다.  임정우는 늘 이런 고민 속에 있었다.

2S 이전에는 패스트볼, 2S가 되면 커브 

임정우는 작년 우타자를 상대할 때 0S-1S-2S 각각의 상황에서 커브 구사비율이 7.2%-22.5%-22.0%였다.  초구 커브는 많지 않았지만 1S와 2S 상황의 구사비율은 같다.  좌타 상대할 때 스플리터는 커브와 같은 역할이다.  작년에 각 볼카운트에서 13.2%-15.3%-16.4% 를 던졌다.

올해는 다르다. 우타 상대할 때 0S-1S-2S에서 커브구사비율은 9.2%-20.6%-36.6%로 확연하게 다르다.  좌타 상대 스플리터도 비슷하다.  S카운트가 늘어날수록 10.9%-18.6%-30.8%로 늘어난다.   2S 이전에는 패스트볼을 휠씬 더 많이 던지고 2S가 되면 크게 떨어지는 커브와 스플리터를 던진다.  구사비율이 둘다 30%가 넘는다.  구종선택이 ‘뻔해졌다’.  그런데 결과는 더 좋다.

올 시즌 리그 대표 마무리로 성장한 임정우의 피칭은 아주 심플하다.  예전보다 휠씬 더 예측가능한 볼배합을 한다.  뻔하게 던진다.  하지만 이젠 타자들이 그를 두려워한다.  2S 에 몰리면 3000RPM 짜리 커브가 날아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서두른다.  2S에 몰리면 그 커브가 실제로 날아들고 알면서도 당한다.  볼넷은 여전히 좀 많지만 탈삼진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9이닝 당 11.1개다.  그의 커리어 평균은 7.2개였다.

투수의 주도권

준플레이오프 3,4차전 그는 성장하는 영건이 아니라 리그 최고 마무리투수의 자격으로 그라운드에 섰다. 2차례 경기에서 2번의 마무리를 하며 8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타자는 그의 커브를 두려워했고 팬들은 그의 커브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 두 경기에서 임정우는 또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가 던진 31개의 공 중 커브는 5개였다. 구사비율 15%로 다소 낮은 편이다. 커브를 아꼈다. 준플레이오프 최종승리를 결정지은 마지막 타석에도 그랬다.  그는 김웅빈을 3구째에 이미 1볼2스트라이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커브는 없었다.  다음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헛스윙 삼진 피치는 좌타자 무릎 쪽으로 파고들며 떨어지는 소위 ‘백풋 슬라이더’였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지만 그는 최고의 무기를 아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막다른 곳에 몰린 타자가 임정우의 커브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제 두려움은 임정우의 몫이 아니다. 다음 구종을 예측하고 선택해야 하는 압박감은 타자의 몫이다.

올 가을, 임정우가 마운드를 지킨 엘지트윈스의 마지막 이닝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승리를 확정짓는 과정만 있었다. 임정우는 뻔한 공을 던지는 투수로 변했고 엘지트윈스의 마지막 이닝도 휠씬 더 단조로워졌다.  

데이터 - KBO홈페이지, 스탯티즈, 애슬릿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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