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패자의 품격, 김호령의 '더 캐치(The Catch)'

조회수 2016. 10. 12. 09: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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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시리즈. 어느 매체가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 시간에는 짜장면 배달도 안된다는 얘기에서 비롯된 말이리라. 기발한 작명 센스다.

뭐, 두 말하면 숨 가쁘다. KBO 리그가 생긴 이래 최고의 카드다. 이건 마치 송강호와 황정민이 공동 주연으로 캐스팅 된 영화나 마찬가지다. 이미 초대박 흥행이 보장된 매치업이었다.

무대는 좀 미약했다. 한국시리즈라면 훨씬 더 대단했을텐데…. 그래도 괜찮다. 우승을 향한 사다리의 최하위에 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이지만 나름대로 파괴력이 있다. 1+1 단판 승부의 매력 때문이다.

두 경기의 잠실 구장은 꽉꽉 찼다. 중계방송 시청률도, 포털 사이트 조회수도 기록적이었다. 경기 내내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한 몫 보탰다.

명승부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혼이 실린 1구, 1구가 뿌려졌다. 몸을 던지는 호수비가 게임의 길목마다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하나의 플레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가을 기억해야 할 최고의 한 컷

어제(11일) 경기는 마치 풋볼(미식축구) 같았다. 한쪽은 공격만 하고, 반대편은 막아내느라 전전긍긍이다. 몇 차례나 치명적인 고비가 있었다. 그 때마다 감탄사가 터지는 수비가 나왔다. 가까스로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시각각 조여오는 압박의 강도는 심해졌다.

그렇게 9회를 맞았다. 또다시 파상적인 공세가 시작됐다. 안타→도루→고의4구, 또다시 안타. 1사 만루가 됐다. 이번에도 버틸 수 있으려나? 초읽기 같다. 재깍재깍, 한계 상황이 임박하고 있었다.

투수가 바뀐다. 벤치에서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내야수들은 중간 위치로, 외야수들은 최대한 앞으로 당겼다. 3루 주자를 놓치면 모든 게 끝이다.

2구째. 배트가 번쩍였다. 타구는 외야를 향해 날았다. 타자는 치자마자 만세를 불렀다. 0.1초만에 그라운드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끝났구나.’

그 때였다.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진 수비로 한참 앞에 있던 중견수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 전력으로 타구를 쫓는다. 좌중간으로 거의 빠질뻔한 공은 그의 글러브 속으로 아슬아슬하게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몸을 틀어 또 한 번 힘을 쥐어 짠다. 잡은 공을 홈 쪽으로 높이 쏴 올린다.

김호령은 마지막까지 전력질주해 타구 잡아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홈으로 뿌렸다.      mbc 중계화면 

이 장면은 올 가을 기억해야 할 최고의 한 컷이 될 것이다. 적어도 <…구라다>는 그렇게 믿는다.

김호령의 마지막 몸부림이 전하는 메시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구가 뿜어져 나가는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비록 김용의가 두 손을 번쩍 들지 않았더라도, 덕아웃에 있던 홈 팀 선수들이 전부 뛰쳐나오지 않았더라도, 마운드의 지크가 고개를 떨구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너무도 뻔히, 알 수 있는 결말이었다.

사실은 촌스럽기 짝이 없다. 고교 야구도 아니고. 적어도 프로라면 그러지 않는다. 적당히 따라가다가 그냥 내버려두고 철수하는 게 보통이다. 그게 훨씬 더 시크하고, 쿨한 모습이다. 잡아서, 던져봐야 뭘 어쩌자는 말인가.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무작정 홈으로 달리지는 않을텐데.

1954년 월드시리즈 1차전은 역사에 남을 경기였다. 뉴욕 자이언츠와 클리블랜드의 대결이었다. 장소가 특이했다. 뉴욕 폴로 그라운드였다. 가운데가 기형적으로 먼 구장이다. 센터 펜스까지 거리가 무려 483피트(약 147m)나 됐다.

2-2 동점이던 8회 무사 1, 2루. 원정팀 빅 워츠가 가운데 쪽으로 엄청난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홈 팀 중견수였던 윌리 메이스는 30m 이상 따라붙었다. 펜스 근처에서(비거리 139m) 완전한 리버스 캐치로 공을 글러브에 담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주자까지 잡아냈다. 이 장면은 ‘더 캐치(The Catch)’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로 기억된다.

물론 김호령의 플레이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처럼 승부를 바꾸지도 못했다. 관중들의 뜨거운 갈채는 커녕,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끝내기의 환호와, 패배의 그늘에 완전히 가려졌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더 진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0.1%도 안되는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너무나 간절한 절박함이 느껴졌다. 말할 수 없는 애잔함에 뭉클함이 전해졌다. 그 숙연함과 진지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패했다. 그래서 탈락했다. 최종 순위는 기껏 5위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울 필요는 없다. 충분히 좋은 게임을 팬들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패자도 박수받을 가치가 있다. 패배에도 품격이 있다. 그걸 입증한 게 김호령의 마지막 플레이였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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