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대호 보복구의 재구성

조회수 2016. 9. 1. 15: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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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도대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0-0. 팽팽했던 2회였다. 2사 1루에서 엘비스 앤드루스의 2루 땅볼은 지극히 평범했다. 1루에서 여유있게 아웃되는 타이밍이었다. 송구도 정확했다. 공을 잡는 1루수의 동작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돌발적인 상황이 생겼다. 달려오던 앤드루스가 1루수를 양 손으로 강하게 밀치며 넘어뜨렸다. 마치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동작 같았다. 다른 데 시선을 뺏길 일도 없었다. 왜? 일반적인 주루 라인보다 안쪽으로 달렸을까. 도발인가? 그럴 일도, 상황도 없었다.

1루심도 아웃을 선언하면서 주자를 이상하다는듯 쳐다봤다. 하다못해 자기 팀인 1루코치조차 의아한 표정이었다. “너, 왜 그러니?” 하는 것처럼….

가장 황당하고, 기분 나쁜 건 피해자였다. 몸집이나 작은가? 0.1톤이 훨씬 넘는 슈퍼 헤비급이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강력한 백어택을 당했으니 그럴 수 밖에.

어이 없이 주자를 쳐다보던 그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대응했다. 양 팔을 벌렸다. 아마 대사가 있었다면 “니 지금 뭐하는 기고?” 정도였을 것이다. 일어서면서 오른손으로는 무릎을 ‘탁’ 쳤다. ‘이런, 된장’이라는 뜻이 담긴 동작이리라.

머쓱해진 것은 앤드루스였다. 갑자기 웃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미안하다는 제스처였다. 사과를 안 받아주기도 그렇고. 떨떠름한 빅보이는 돌아서며 공을 1루측으로 팽개쳤다. 그쪽은 홈 팀 벤치 쪽이었다. 사실 이 순간 양 팀 덕아웃에는 모두 데프콘(전투준비태세)이 발령된 상태다. 아마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면, 한바탕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을 것이다.

당사자는 오히려 담담했다. 경기 후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어렵게 잡아서 부딪혔다면 모르는데, 여유 있게 아웃되는 상황이었다. 화가 나려고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길래 다른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태는 일단락 되는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도어가 초구를 보고 뭔가를 외쳤다

그 일로부터 두 시간 가까이가 지났다. 7회말. 이닝 보드의 숫자는 어지러웠다. 8-0으로 홈 팀이 압도적이었다. 원정 팀은 이미 백기를 들었다. 마운드는 패전 처리에게 넘겨졌다. A. 카미네로였다. 앞 이름 A는 아르키메데스의 약자다. 벌써 2천년 전에 지렛대의 원리를 깨달은 인류 최고의 천재다.

그가 처음부터 앤드루스를 노렸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행위의 의도성에 대해서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단 7회에 그의 신경을 건드린 일이 있었다. 1사후 루그네드 오도어에게 맞은 2점 홈런이다. 10-0이 되자 텍사스 덕아웃은 축제 분위기였다. 카미네로는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봤다.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2사후 베이스는 텅 비었다. 타석에는 앤드루스가 들어섰다. 만약 무슨 일을 도모했다면…. 그렇다.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초구.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이때 중계 화면에는 텍사스 덕아웃에 있는 오도어가 클로즈업 된다. 오도어는 그 공을 보더니 그라운드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낀듯 하다.

초구가 몸쪽에 날아오자 벤치의 오도어가 그라운드를 향해 뭔가를 외친다. mlb.tv 화면

2구째. 투수가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젓는다. 아마 계산된 동작이라면 천재 아르키메데스가 맞다. 왜? 두번째 공은 슬라이더(커터?)였다. 가운데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갔다. 타자는 헛스윙했다. 아마 그리고 안심했을 지 모른다. ‘맞히려는 건 아니구나’라고.

그러나 천만에. 그건 페이크였다. 3구째 사인을 받는 투수의 표정이 비장하다.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침을 한번 ‘퉤’. 결행이다.

3구째부터는 뭔가를 결행할 듯한 표정으로 변한다. mlb.tv 화면

야수들도 일제히 “왜요?” - 완벽한 팀워크

3구, 4구. 연속으로 몸쪽이다. 타자는 점점 물러난다. 그럴수록 포수는 슬금슬금 다가간다. 5구째. 98마일짜리다. 가슴 쪽으로 날아갔다. 아마 준비되지 않았다면 훨씬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눈치 챘다. 피하는 동작이 날렵했다. 공은 표적을 살짝 비껴갔다. 유니폼에 강하게 말리며 쓸리듯 스쳤다.

심판은 이미 사태를 예감한 것 같다. 구심 토드 티케너(10년 경력)의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오른손 검지로 퇴장 사인을 날렸다. 백스톱 뒤쪽의 홈 팀 관중들도 일제히 그 사인을 따라한다. 서비스 감독이 덕아웃에서 뛰쳐 나왔지만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억울한 표정이다. 그러나 별로 설득력 있는 연기는 아니다. 리플레이를 돌려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잡힌다. 구심의 퇴장 지시에 유격수, 3루수가 일제히 “왜요?”라는 동작을 취한다. 아마 그들은 알고 있었을텐데…. 완벽한 팀워크다.

지옥의 문턱을 넘은 앤드루스는 나름대로 변명을 늘어놨다. “(이대호와 충돌 상황에 대해서) 난 누구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이 아니다. 전력질주 하는 바람에 베이스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게 빈볼을 맞을만한 일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야구다. 나는 괜찮다. 신이 도와주셔서 큰 일은 당하지 않았다.”

카미네로의 화려한(?) 과거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는 도미니카 출신이다. 2005년 말린스에 입단해 오랫동안 마이너리그에 머물었다. 2013년에 처음으로 콜업됐다. 불펜에서만 뛰다가 2015년 피츠버그로 현금 트레이드 됐다. 그러다가 얼마 전인 8월 초 시애틀로 옮겼다.

그가 아직 강정호의 동료였던 5월의 일이다. 그들은 앙숙 애리조나와 일전을 벌였다. 첫 날은 피츠버그가 당했다. 라이언 보글송이 조던 라일스의 투구에 왼쪽 눈 부근을 맞았다. 다발성 안면 골절상을 입고 실려나갔다. 그는 아직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날. 피츠버그가 보복할 차례였다. 7회 저격수로 등판한 것이 바로 카미네로였다. 그는 진 세구라의 얼굴 쪽으로 96마일짜리를 날렸다. 헬멧을 강타했고, 구심은 1차적인 경고를 줬다.

그러나 카미네로는 멈추지 않았다. 8회였다. 이번에는 닉 아메드의 머리를 겨냥했다. 공은 왼쪽 어깨에 맞았고, 구심은 결국 퇴장을 명령했다. 항의하던 클린트 허들 감독도 쫓겨났다.

두 팀은 2년전 악연이 있었다. 애리조나의 주포 폴 골드슈미트가 상대 투수(프리에리)의 공에 맞아 왼손 뼈가 부러졌다(시즌 아웃). 그러자 애리조나는 다음날 경기에서 앤드류 매커친의 등을 맞혀 갈비뼈 부상을 입혔다(DL행).

앤드루스가 생사의 고비를 넘긴 표정으로 1루에 도착했다. 빅보이는 모른척, 딴 데를 본다. mlb.tv 화면

카미네로는 본래 그렇게 빠른 투수가 아니었다. 90마일 초중반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 팔꿈치 수술 이후 구속이 부쩍 늘었다. 100마일 넘는 공도 가끔 던진다. 평균 구속은 97.8마일이나 된다.

볼 컨트롤이 나쁜가? 글쎄. 올해 53.1이닝을 던지며 몸에 맞는 공을 4개나 허용했다. 하지만 오늘 1개, 애리조나전 2개를 제외해 보자. 실제는 1개 밖에 되지 않는다. 진짜는 몸쪽 승부를 별로 즐기지 않는 투수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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