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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위험한 영역에 도전하다 - 몸쪽 승부

조회수 2016. 8. 21. 12: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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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이닝이다. 노동 강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우리 팬들이 '혹사'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지 모르는 것 같다. 아마 마이크 매시니 감독이 댓글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가끔은 그가 절대로 이해 못할 단어들도 등장한다. 혹시 유진(통역 구기환씨)에게 물어볼 지 모른다. "What's the 매이콘?"

경기 후 기자회견 때도 질문이 나왔다. 너무 길게 쓰는 것 아니냐고.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9회 11개 밖에 안됐다. 그것도 고의4구를 빼면 7개였다. 결국 10회까지 해봐야 20개 정도였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봤다." 투구수까지 꼼꼼하게 기억한다. 신경을 쓰긴 쓰나보다. 하긴, 요즘 같은 때 함부로 굴릴 수 있나. 보스 없으면 그나마 와일드 카드 싸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당사자는 덤덤하다. '던질만 하니까 던지지.' 그런 표정이다. 예전부터 3연투, 4연투도 마다한 적 없다. 4이닝 마무리도 거뜬했다. 일본에서는 리그 챔피언전 6차전에 전부 나가기도 했는데 뭘. (2014년 요미우리와 클라이맥스 시리즈)

1+이닝을 지워주는 데 대한 감탄, 그리고 걱정과 우려가 뒤섞인 반응들이다. 와중에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투구 패턴의 의미심장한 변화다.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14번째 투구

어제(한국시간 20일) 그의 등판은 1부와 2부로 나눠진듯 했다. 9회가 불안했던 반면 10회는 완벽했다. 몇 가지 요소들이 변수였다. ▶ 갑자기 등판하게 됐던 점 ▶ 좌타자가 줄줄이 나왔던 점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런 견해는 너무 포괄적이고, 일반적이다. 조금 더 세밀하고, 구체적일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제시한다. 딱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다. 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건 바로 이 경기에서 그의 14번째 투구였다. 3번 타자 앨런 알데르에게 던진 세번째 스트라이크 말이다. 그 공 이후로는 돌부처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게임이 됐다.

9회는 간신히(?) 막았다. 그런데 사실 10회는 더 걱정스러웠다. 3번부터 시작되는 중심 타선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두 타자 알데르에게 초구 슬라이더(89.5마일)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스스로 하드 슬라이더라고 부른 구질이었다. 휘어지는 각도는 작지만, 속도가 빠르다.

다음 공은 바깥쪽. 95.3마일짜리 패스트볼에 스윙이 나왔다. 파울이 됐다. 볼 카운트 0-2가 됐다.

이윽고 3구째. 몰리나가 타자쪽으로 슬쩍 다가 앉는다. 92.7마일짜리 빠른 공이 숨 막히는 지점에 꽂혔다. 알데르의 배트는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존의 아슬아슬한 경계였다. (구심이 손을) 들어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힘찬 콜이 울려퍼졌다. 타자는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③번 코스에 온 공은 존의 한계 지점에 간신히 통과했다. 타자는 손 쓸 수도 없는 곳이었다.   mlb.tv 화면   

패턴의 변화, 그리고 자신감의 결과

알데르가 몸쪽 공에 얼어붙은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4번 마이켈 프랑코, 5번 토미 조셉의 승부는 모두 그 영향권 아래서 이뤄졌다.

프랑코는 슬라이더에 중심을 뺏기고 힘 없는 땅볼 아웃. 마지막 타자 조셉에게는 연달아 5개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모두 빠져나가는 공. 헛스윙만 세 번 하고는 방망이를 집어던졌다. 다 들 앞타자의 강렬한 몸쪽 패스트볼에 대한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상태였다.

이 게임을 방송한 세인트루이스 중계진은 이렇게 설명했다. "시즌 초에는 거의 먼쪽 밖에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몸쪽 승부를 즐기고 있다."

이건 두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전략적인 변화다. 외곽 일변도의 볼배합은 단조롭다. 처음이야 다들 당했지만 이제 대비를 하고 타석에 들어온다. 따라서 투구 패턴이 다양해질 필요성이 생겼다.

두번째는 자신감이다. 초반에는 장타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어느 타순에도 홈런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점에 가장 신경 쓰고 있다." 그가 자주 인터뷰에서 하던 말이다.

하지만 게임수가 거듭되면서 이 부분이 많이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물론 스피드가 3~4마일 가량 증가한 것도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몸쪽으로 붙을만 하다'는 계산이 섰으리라.

리스크에 베팅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구역'임에 틀림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존에 대한 감각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심판들은 안쪽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후하지 않다.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인색하다.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알데르를 삼진시킬 때도 그런 장면이 목격됐다. 그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순간, 보스는 여러차례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아, 거기구나' '이제 알겠다' 같은 깨달음이 담긴 동작으로 보인다.

반면 정반대의 순간도 있었다. 9회 에르난데스(9번타자)의 타석 때다. 초구에 93.5마일짜리를 깔끔하게 붙였다. Pitch F/X 상으로도 완벽하게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심은 외면했다. 그러자 돌부처도 표정이 변했다.

무엇보다 그곳은 늘 위험이 도사린 '구역'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른다. 10번을 잘 던지다가도, 한번만 삐끗하면 치명타를 맞는다.

물론 그렇다고 피해갈 수는 없다. 바깥쪽 하나 만으로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 어차피 거쳐야 할 진화의 단계일 것이다.

게다가 조심하고, 빙빙 돌아가는 것은 그의 캐릭터가 아니다. 돌파하고, 이겨내는 게 끝판 대장 아닌가.

리스크에 베팅하지 않고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건 엄연한 게임의 법칙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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