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농부의 땀방울과 올림픽 골프

김세영 기자 입력 2016. 8. 18. 08:56 수정 2016. 8. 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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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골프 선수들은 농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의 땀을 흘렸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그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올림픽은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됐을 것이고, 새로운 희망도 됐을 거라고 믿는다. 사진편집=박태성 기자

브라질 리우올림픽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종목 중 하나는 골프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이후 1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해서다. 여자는 1900년 파리 대회 이후 116년 만의 복귀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잇단 불참 선언으로 우려를 낳았던 남자부 경기는 당초 예상과 달리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여자골프는 이제 시작이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다. 박인비, 김세영, 전인지, 양희영이 출전하고 영원한 골프 여왕 박세리가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다. 금메달 10개 이상과 10위 이내 입상이라는 '10-10'을 목표로 내세웠던 대표팀이 당초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어 여자골프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첫날 출발도 상쾌하다. 박인비와 김세영이 공동 2위에 올랐다. 둘 다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골라내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박인비는 당초 우려를 불식시키며 큰 대회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매특허인 중장거리 퍼트감도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하다.

한국 대표 중 올 시즌 유일하게 우승을 달성한 김세영도 올림픽이라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첫 단추를 잘 꿰었다. 티샷은 매번 페어웨이를 갈랐고, 후반 까다로운 홀에서는 무리한 공략보다는 그린 중앙을 노리며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펼쳤다.

그렇다고 장밋빛만은 아니다.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이 예상대로 단독 선두로 치고 나섰다. 그는 올 시즌 생애 첫 우승과 함께 내리 3연승을 거둔 데 이어 올림픽을 앞두고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무엇보다 차원이 다른 골프를 한다.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도 2언더파로 금메달 사냥을 시작했다. 그는 화려함은 없지만 영리한 플레이를 앞세워 후반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스타일이다. 미국의 렉시 톰프슨도 3언더파를 치며 메달 경쟁에 불을 지폈다.

세계 정상급 남자 골퍼들이 올림픽 출전을 고사한 것과 달리 한국 여자골프는 시즌 초반부터 치열한 리우행 티켓 경쟁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도 돋보였다. 박인비는 올림픽 포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전인지도 '가방 사건'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잘 이겨냈다.

리우행이 좌절된 선수들도 그랬다. 이보미는 주 무대인 일본 투어를 빼먹으면서 미국 원정길에 나섰고, 김효주 역시 슬럼프에 빠지면서 출전이 불발됐지만 최근 귀국해 4년 후를 기약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 마지막 결실만 남았다. 누군가는 금메달을 따 환호할 수 있고, 누군가는 좌절할 수도 있다. 어쩌면 '노메달'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흘린 땀방울의 가치마저 평가 절하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농부의 삶을 살았다. 5년이라는 짧지 않는 기간이었다. 그 시기 평범한 이웃 촌로들에게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자연에 대한 순응'과 '희망'이다. 변덕스런 날씨나 병충해로 인해 농사를 망쳤을 때의 심정은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자식을 잃은 심정, 그와 비슷하다.

처참한 수확에 고개를 떨어뜨릴 때 그들은 내게 또는 당신들에게 "올해는 잘 안 됐응게, 내년에는 잘 되겄지. 그게 농사여"라고 위로하곤 했다.

안병훈과 왕정훈은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고, 여자 골프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 했다. 안병훈은 "4년 후 도쿄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며 새로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왕정훈은 "원하는 성적을 얻지는 못했지만 골프 인생에서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말복과 처서 사이, 일 년 중 가장 더운 이때 농촌에서는 참깨 수확이 한창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의 작업은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다. 몸은 금세 땀범벅이 된다. 참깨는 곡물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그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 한 됫박이 되고, 됫박이 모여 가마니를 채운다. 참기름이 고소한 이유는 농부가 흘린 수많은 땀방울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라고 믿는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골프 선수들도 농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의 땀을 흘렸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그들의 아름다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은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됐을 것이고, 새로운 희망도 됐을 거라고 믿는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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