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전주성에서 열린 한여름 밤의 축제 그리고 옥에 티
지난 주말(24일) 전북의 밤은 뜨거웠다. '김신욱 데이'를 맞아 김신욱이 깔아준 멍석에서 제대로 즐겼고, 전북은 울산에 2-1로 승리를 거두며 무려 22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K리그 통산 타이기록이다. 뭉클하게 뜨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던 전주성, 그곳은 축제의 장이었다.
#196cm거구 김신욱의 눈물
경기가 열린 24일은 전북이 자체적으로 지정한 김신욱을 위한 날이었다. 전북은 경기를 앞두고 구단 SNS와 보도자료를 통해 김신욱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유도했고, 경기 당일에는 특별 제작한 김신욱 티켓과 팔찌까지 배포하며 그를 위한 모든 응원 준비를 마쳤다
김신욱은 이날 오랜만에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무대가 완벽하게 갖춰지면서 바통은 주인공 김신욱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친정팀 울산의 수비벽을 뚫기란 쉽지 않았다. 전반전 내내 골문 앞을 서성였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한 채 45분이 흘렀다. 후반은 더 답답했다.
오히려 울산에게 선제골을 내주면서 전북과 김신욱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괜한 이벤트로 부담을 준 건 아닌지, 김신욱을 향한 시선이 기대에서 걱정으로 바뀌어 가던 그때 전북의 골이 터졌다. 후반 31분 로페즈의 동점골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날의 주인공 김신욱이 골을 터트렸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기막힌 타이밍에 터진 기막힌 결승골이었다.
골을 넣은 뒤 본능적으로 몸에 벤 세리머니를 펼친 김신욱은 이후 감정을 추스리며 팬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동안의 설움과 고마움을 담아 홈팬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김신욱의 건강한 멘탈은 커다란 체구만큼 중요한 장점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개막 이후 계속해서 이어진 부진에 그 튼튼한 마음이 많이 다쳤던 모양이다. 잔디에 고개를 파묻은 김신욱은 한참을 일어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시즌 내내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밖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 괜찮다며, 이제 잘하면 된다고 훈련장까지 오셔서 격려해주셨다"며 "그런 평소 생각들이 세리머니로 나온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큰절은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킨 세리머니였던 것이다. 훈련장에 찾아온 팬들에게 늘 씩씩하게 웃어보였지만 사실 누구보다 미안하고 속상했던 김신욱이다. 그동안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시간이었다.
만약 이날도 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멍석을 깔아준 이도, 올라간 이도 민망할 뻔했던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김신욱. 주말 저녁 전주성은 그로 인해 뜨거웠다.
#1위 전북의 의미있는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이날 전주성은 유난히 진한 녹색 빛으로 일렁였는데, 다름 아닌 풍선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녹색 풍선은 바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전북은 이날 경기에서 굿네이버스 전북본부와 함께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을 진행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어린이 팬에게 녹색 풍선을 나눠주고, 안에서는 선수들이 직접 참여한 아동학대 방지 영상으로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슈퍼맨 아빠 이동국이 전하는 아동학대 방지 메시지는 그 어떤 광고보다 울림이 컸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전광판에서는 계속해서 관련 영상이 상영됐고, 하프타임에는 송하진 전라북도 도지사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그라운드에 내려와 구호를 외쳤다
팬들의 호응을 위해서라면 평소처럼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해야 했지만 전북은 이벤트보다 캠페인을 택했다. 가족단위 팬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 저녁, 전주성에 울린 "아동학대STOP&Love children" 구호는 단편적인 선물 이벤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었다.
#옥에 티1_ 다툼, 엉뚱한 심판 판정과 그라운드로 날아든 페트병
김신욱의 감동적인 결승골과 많은 팬들 앞에서 펼친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여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었다. 장내의 옥에 티는 과열된 신경전에서 비롯됐다.
전북은 울산 수비진과 몇 차례 신경전이 있었고, 급기야 경기 종료를 앞두고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북 고무열이 볼을 차지하려는 순간 울산 강민수가 거칠게 막아서면서 순간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다툼이 길어지면서 한동안 경기는 중단됐고, 관중석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그 장면을 지켜봤다.
조금 전까지 우리 아이들을 지켜달라며 환하게 웃던 형들의 흥분한 모습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답답한 장면은 또 있었다. 상황이 일단락된 후 심판은 두 사람에게 경고를 내렸는데, 대상자는 울산의 강민수와 전북의 최철순이었다. 최철순은 전반 30분 경고를 받은 상태라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다툼의 원인 제공자인 고무열도 아닌, 흥분한 박원재나 조성환도 아닌 엉뚱한 최철순의 퇴장에 경기장은 술렁였고, 경기장 곳곳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일반석에서는 페트병이 날아들기도 했다.
#옥에 티2_ 친정팀 찾아간 김신욱에게 던져진 욕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옥에 티는 있었다. 경기 종료 후 방송 인터뷰에 임한 김신욱은 동료들이 모두 그라운드를 떠난 뒤 홀로 관중석을 돌며 팬들에게 사인볼을 전달했다.
그리고 뒤늦게 친정팀 울산 서포터석을 찾았다.
그러나 김신욱의 등장에 몇몇 팬은 중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욕설을 퍼부었고, 김신욱은 인사를 전한 뒤 씁쓸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북 팬에게 너무 감동적이었던 그의 큰절 세리머니가 친정팀 울산에게는 너무 아픈 그림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무대의 마지막은 그렇게 욕설로 얼룩졌다. 그런데 혹시 그 팬은 알고 있을까? 전북 구단이 준비한 이벤트가 끝나기 무섭게 김신욱이 던진 첫 마디가 "저 이제 (울산 팬들에게)가봐도 되죠?" 였다는 것을. 구단 직원의 답이 떨어지도 전에 김신욱은 울산 서포터석을 향해 달렸다.
친정팀 앞에 침묵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다고 감사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 사람의 속도 모른 채 섣불리 의심할 필요는 없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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