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연이은 DL, 슬럼프, 추문..그리고 이치로의 '준비'

조회수 2016. 7. 22. 12: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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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마(魔)가 낀 것 같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무슨 일들이 그렇게 터지는지. 한국에서, 미국에서. 야구판이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형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어디 추문만 그런가. 갑자기 쓰러지는 선수들도 속출이다. 레이스가 중반을 넘어서자 이곳저곳에 탈이 난다. 팔꿈치에, 허리에, 허벅지에…. DL, 햄스트링 같은 달갑지 않은 영어 공부까지 하게 만든다.

물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나. 게임 못 뛰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안타까울 것이다. 특히나 오랜 재활을 거쳐서 막 복귀한 순간에,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얻은 주전 자리에서 마음껏 플레이를 펼치려 한 시점이었기에 안쓰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프로 선수다. 이해와 동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별로 없다. 결과로 얘기해야 하는 냉혹한 곳이다.

이럴 때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현재 메이저리거 중에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다(1등은 바톨로 콜론). 모자를 벗으면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1973년 10월생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는 44살짜리 후보 외야수의 이야기다.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하는 일들

한 미디어가 전한 그의 게임전 모습이다.

플레이볼은 아직 4시간이나 남았다. 그런데 벌써 시작이다. 일단 라커 앞에 자리잡는다. 할 일이 무척 많아 보인다. 발 맛사지 기계를 꺼내더니 양 발을 넣고 스위치를 켠다. 그게 끝나면 이번엔 바닥에 눕는다. 진동 폼 롤러(vibrating foam roller)로 허벅지 뒤쪽(햄스트링)에서 엉덩이까지 한참을 풀어준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정성을 들인다. 그 다음은 스파이크를 꺼낸다. 쇠 브러시로 징이 박힌 부분까지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한다. 이어서 유니폼을 꺼내서 무릎 위에 놓고 소형 가위로 도드라진 실밥 하나하나를 모두 제거한다.’

참 유별나다. 자기가 무슨 서장훈이나 허지웅 쯤 되는 줄 아나보다. 깔끔 대마왕이다.



그가 남긴 어록 하나가 기억난다. “깨끗하게 직접 손질한 글러브로 훈련한 것은 몸에 남는다. 그런 기억은 계속 몸에 새겨진다. 하지만 더러운 글러브로 플레이 하고 있으면 그런 운동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런 의미가 크다.”

어쨌거나 경기 전 준비는 이어진다.

정리가 끝나면 흐트러진 라커 앞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나가서 팀 전체가 하는 준비 운동에 참가한다. 같이 하지만 동료들과 두어 걸음 떨어진 곳이다. 다들 끝내고 흩어져도 혼자 남아 20분 정도를 계속한다. 목과 등, 허리, 발목, 무릎 등을 꼼꼼하게 스트레칭 한다. 그걸 마치면 비로서 케이스에서 배트 하나를 꺼내 실내 타격 연습장으로 향한다.’

그의 베트 케이스는 유명하다. 습도 조절이 가능하도록 특별 제작한 ‘휴미더’에 보관한다. 휴미더(humidor)란 습도에 민감한 시가 담배 같은 물품을 보관하는 데 쓰는 장치다.

이치로가 들고다니는 휴미더.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뉴욕타임스 캡쳐


배트에 몸 컨디션을 맞춘다

그의 배트는 미즈노에서도 최고의 장인(匠人)으로 불리는 구보타 이소카즈가 전담 제작한다. 33.5인치, 무게는 31~31.75온스(약 880~900그램)짜리다.

대개의 선수들이 컨디션에 따라 수시로 배트의 무게나 길이를 바꾼다. 하지만 그는 반대다. 항상 똑같은 것을 쓰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배트에 맞춘다. 제작자도 “평생 그렇게 일정한 것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고 감탄한다. 다만 작년부터는 조금씩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양키스 시절 동료였던 CC 사바시아의 기억이다. “이치로가 쉬는 날은 1년에 딱 이틀이다. 시즌 끝난 다음 날과 크리스마스 뿐이다. 나머지는 매일 훈련이다.”

그의 아침 식사 메뉴는 늘 똑같다. 처음 7년간은 카레만 먹었다. 요즘은 페파로니 피자로 바꿨다. 이것저것 먹다가 혹시라도 탈이 나면 경기를 망칠까봐서다.

허리에 부담이 갈 지 모르는 푹신한 소파도 멀리한다. 라커룸에서는 딱딱한 철제 의자를 사용한다. 스파이크를 신으면 계단도 피한다. 장애인용 슬로프를 이용한다. 발목이 걱정돼서다.

그는 자기 몸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특별한 트레이닝 기구를 쓴다. 1개가 아니다. 집에 하나, 야구장 클럽하우스에 하나, 그리고 일본에 있는 부모님 집에 하나씩 가져다 놨다. 머무는 곳 어디서나 사용하겠다는 얘기다.

이치로의 개인 트레이닝 기구. 3년전 ‘월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된 사진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캡쳐


16년간 단 한번의 부상자 명단

2009년이었다. 30년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주적이 바뀔 뻔한 그 즈음이다.

WBC는 그에게도 엄청난 압박감을 줬다. 대회를 마치고 쓰러졌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구단에서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단은 출혈성 위궤양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라갔다. 그의 16년간 유일한 DL이었다. 그럼에도 그 해 146게임을 뛰었다.

작년까지 15시즌을 뛰면서 전 경기(162)를 출전한 것이 4번이나 된다. 매년 평균을 따져도 157게임이 넘는다. 외야수니까 괜찮다고? 부상의 위험이 큰 도루를 (ML에서만) 500개나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너무나 지독하다. 병적일만큼 집착한다. 그런 몸 관리에 대해서 곁에서 누군가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이랬다. “내가 지금 얼마를 받고 있나 생각한다. 그 연봉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팬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쿠보 히로키(대표팀 감독)는 이치로의 인상적인 말이 몇 가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언젠가 목표를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고쿠보 상은 숫자를 남기기 위해 야구를 합니까? 나는 마음 속에 연마하고 싶은 돌이 있습니다. 야구를 통해 그 돌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 때 한 말이 유명한 ‘준비의 준비’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에 나설)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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