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당신은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조회수 2016. 6. 8. 1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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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나이티드가 무려 8년 만에 FC서울의 홈에서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선제골을 넣은 후 내리 3골을 내주며 또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기겠다'는 의지와 믿음으로 똘똘 뭉쳐 경기를 4-3으로 뒤집고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FC서울의 세 번째 골이 들어가던 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환호로 가득찼고 제주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남은 시간 29분, 스코어는 1-3. 따라잡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많이 넘어가 있었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비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서울의 세 번째 골이 들어간 순간 망연자실한 제주 선수들    

그러나 교체 투입된 김호남을 중심으로 제주는 안정감을 되찾았고, 침착하게 골을 만회하기 시작했다.

후반 32분 동점골을 터트린 김호남
후반 34분 역전골을 성공시킨 권순형이 그라운드에 얼굴을 묻으며 기뻐하고 있다 ​ 

승리해서 기뻤고, 그곳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이라 참으로 행복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두 손을 번쩍들어 환호하는 조성환 제주 감독

그리고 어떤 이는 그곳에 자랑스러운 '나의 영웅'이 있어 더 행복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전, 한 중년 부부가 서울월드컵경기장 원정석을 찾았다. 지난해에 데뷔한 제주의 신인 정영총의 부모님이었다.

멀리 제주에 소속팀이 있어 자주볼 수 없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선 부부는 잔디를 거니는 정영총을 발견한 뒤 아이처럼 반가워하며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맑은 웃음은 사라졌고, 조마조마 한 마음에 경기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한시도 자리에 앉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들 영총이가 볼을 잡을 때 마다 자체 모자이크에 들어갔다.

'에구머니.....'
'에구구구.....'

지난해 제주에 입단한 정영총은 신인치고 꽤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수로서 이렇다 할 성적(17경기 출전/0골0도움)을 기록하지 못했다. 또, 한 번은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팀 동료와 충돌해 의식을 잃는 사고까지 있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 아들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늘 가슴 떨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작년 5월16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팀 동료와 충돌 후 잠시 의식을 잃은 정영총>


그런데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좋은 일이었다. 아들 영총이가 제주의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정영총의 선제골 장면>


프로 데뷔 두 번째 시즌 만에 서울의 홈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아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감격한 두 사람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골인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득점 이후 제주는 내리 3골을 먹었고, 정영총은 교체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두 사람은 간절한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1-3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가 3-3, 4-3이 되면서 경직됐던 표정은 다시 울음으로 바뀌었고,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제주를 응원했다. 부디 아들 영총이의 골이 빛바래지 않기를 마지막까지 기도했던 두 사람이다.


경기가 종료된 후 많은 사람들이 김호남을 칭찬했다. 그가 들어온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고, 득점이 모두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한 곳으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다. 나의 영웅이 그동안 어떤 땀을 흘렸고, 오늘 어떤 일을 해냈는지. 이날 누군가의 히어로는 정영총이었다.

경기 종료 후 벤치에서 나와 조용히 얼굴을 훔치는 정영총


비슷한 장면을 하나 더 소개한다. 지난 5월24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 열린 전주성에서의 한 장면이다.


친구들과 함께 경기를 보던 꼬마가 후반전 김신욱의 등장에 당당하게 유니폼을 펼쳐들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 이름을 마킹하고 경기장을 찾았는데, 하필 내가 좋아하는 '신욱이 형'만 나오지 않아 속상했던 꼬마는 그의 등장에 어쩔 줄 모르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친구들 앞에 당당하게 유니폼을 뒤집어 입었다.  

선수교체가 빈번한 축구판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순간이겠지만 이 꼬마에게 당시 김신욱 형의 출현은 잊지 못할 추억일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얼마나 뛰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벤치든 그라운드든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자랑스러운 형,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혹 주전 경쟁에 지치고, 반복되는 훈련이 지겹다면 한번쯤 돌아보길 바란다. 당신의 뒤에 당신의 존재만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그들이 서있다는 것을 말이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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