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의 왼발 - 복잡한 기하학(幾何學)을 숨기다

조회수 2016. 5. 23. 09: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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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의 경기 기사에는 특징이 있다. 그냥 제목만 봐서는 언제적 얘기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는 점이다. 이게 어제 건지, 오늘 얘기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왜? 비슷비슷하니까. ‘1이닝 2K 퍼펙트’ ‘또 무실점...8경기 연속’ ‘공 13개로 간단히 임무 끝’ 등등.

상대와 장소가 바뀔 뿐이다. 나올 때마다 결과는 비슷하다. 그냥 완벽 그 자체다.

지금 상황을 예상한 전문가가 몇이나 될까. 며칠 전 중계방송 하던 현지 캐스터와 해설자가 주고받은 말이다. Fox Sports의 댄 맥롤린과 릭 호튼이다. 둘의 대화를 옮기면 이렇다.

“사실 시범경기 때는 그저 그랬어요. 그냥 괜찮은 정도? 뭐 엄청난 마무리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솔직히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었죠.”

“맞아요. 그냥 ‘쓸만하겠네(serviceable)’ 했어요. 그런데 개막하면서부터 달라지네요. 자신감도 많이 붙고.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요.”

날로 눈부시다. 그런 뛰어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공 빠르기는 리그 평균 아래다. 체격 조건(키)도 한참 부족하다. 간혹 RPM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확연한 월등함은 아니다. 저 공을 왜 못치지? 물리학적으로는 도대체 설명이 안된다.

돌부처는 종교학의 범주에서 다뤄야 하나? 유감스럽게도 그 경지는 <…구라다>의 능력 밖이다. 해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기하학(幾何學)이다.

물리학 보다 기하학

도형이 어쩌고, 삼각 함수가 어쩌고. 하필이면 왜 기하학이냐고? 가장 어렵고, 골치 아픈 과목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걸 이용해야 설명이 가능하다. 너무 걱정은 마시라. 3쿠션 당구 초짜 수준만 돼도 해독 가능이다.

우선 그의 발을 주목해야 한다. 먼저 오른발이다.

그가 공을 던지기에 앞서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자. 투수판의 오른쪽, 그러니까 3루쪽을 밟고 있다. 이건 일반적이지 않다. 투수판의 길이는 24인치(61cm). 대부분의 투수는 그 중에 1루쪽을 이용한다. 왜?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3루쪽을 이용할까? 투구 동작의 다음 단계가 이를 설명해준다. 왼발이 나가는 방향이다.

보통은 곧장 앞으로 내딛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왼발도 약간 3루쪽으로 향한다. 이를테면 틀어서 빗각을 만드는 것이다.

즉, 정리하면 이렇다. 투구 동작은 ▶ 투수판 3루쪽에서 시작해서 ▶ 던질 때는 (화면을 기준으로) 더 오른쪽으로 옮겨진다. 그 상태에서 릴리스가 이뤄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적인 투수) 트레버 로젠탈과 비교해 봤다. 이 이미지는 투구폼이 시작돼서, 공을 놓는 지점에서 생기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로젠탈에 비교해 오승환의 공이 더 큰 대각선을 이룬다.                 mlb.tv 화면

각도, 디셉션, 슬라이더

왜 이럴까? 부자연스럽다. 복잡하고, 어렵다. 당연히 일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① 특이한 각도

그의 키는 (프로필상) 178cm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신장(191cm)에 훨씬 못미친다. 팔 길이까지 합하면 핸디캡은 더 커진다. 비슷한 궤적이라면 불리할 게 뻔하다. 독특한 각도는 새로운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치 (우타자의 경우) 등 뒤에서 공이 오는듯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② 디셉션 (deception)

기만, 속임수. 아시다시피 본래는 좋지 않은 뜻이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투수의 숨김 동작을 부르는 용어다.

똑같은 스피드라도 타자에게 어려운 공이 있다. 타이밍 때문이다. 투수의 릴리스 동작이 잘 안보이면 그만큼 애를 먹는다. 즉, 몸을 최대한 닫아놓고 (틀어서) 던지면 훨씬 효과적이다. 그는 가뜩이나 정상적인 폼이 아니다. 왼발을 내딛을 때도 한번 덜커덕 하면서 혼란을 준다. 타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골치 아픈 투구 동작이 아닐 수 없다.

평균 92.1마일(148.2㎞) 밖에 안되는 공에 왜들 그리 선풍기를 돌리는 지 설명되는 부분이다. (메이저리그 불펜투수 평균 구속 92.9마일)

③ 슬라이더에 날 세우기

<…구라다>의 견해로는 이게 가장 결정적인 효과다. ‘각도’로 인해 그에게는 극강의 무기가 생겼다. 바로 슬라이더에 끼친 영향이다. 중요한 얘기니 단락을 넘겨서 계속 얘기해 보자.

경이적인 슬라이더의 지표

그에게 올 시즌 최고의 구종은 무엇일까. 돌직구? 아니다. 단연 슬라이더다.

fangraphs.com에 따르면 그는 올해 총 94개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 중에 안타를 허용한 것은 단 1개 밖에 되지 않는다. 피안타율을 따지면 .040에 불과하다. 아무리 초반이라고 해도 엄청난 숫자다.

             피안타율   삼진     볼넷/삼진     BABIP

직구          .179        17            0.24        .318

슬라이더   .040        11            0.09         .071

체인지업   .250          1            1.00         .286

그의 투구 패턴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바깥쪽 빠른 볼이냐 ▶ 아니면 바깥쪽 슬라이더냐. 크게 나누면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오승환의 공은 대부분 바깥쪽(우타자 기준)으로 몰려 있다. 왼쪽이 직구, 오른쪽이 슬라이더다.
                                                                                                                                         fangraphs.com 자료

그는 몸쪽을 거의 쓰지 않는다. 가끔 들어가는 것은 몰리나의 사인에 반대 투구가 된 정도다. 그럼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빗각으로 던지는 게 바깥쪽 투구에 유리한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NO’. 그럴 리 없다. 보통 투수들처럼 1루쪽을 밟고 던지는 게 편하다.

하지만 슬라이더와 결합되면 대답이 달라진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돌직구는 좌우폭이 큰 대각선 궤적을 이룬다. 그럴 경우 같은 슬라이더라고 해도 멀어지는 각도가 훨씬 커진다. 웬만한 슬라이더는 쳐내기도 하고, 파울볼로 커트도 시킨다. 하지만 그의 공은 그게 어렵다.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게 그 때문이다.

물론 그런 투구법을 하는 투수들이 꽤 있다. 하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발목, 무릎 등에 무리가 가기 쉽다. 다리나 허리의 강한 근력도 뒷받침 돼야 한다. 무엇보다 아웃 코스에 낮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중간 보스는 요즘 출근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5~6시(회)에 나오더니, 요즘은 8시(회)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Fox Sports의 캐스터 릭 호튼이 그렇게 설명했다. “카디널스는 쑹.완.오에게 점점 중요한 상황(high leverage situations)을 맡기고 있군요.”

로젠탈이 어제(한국시간 22일) 2점 홈런을 맞았다. 요즘 들어 여러가지 지표에서 중간보스에게 밀린다. 무엇보다 안정감에서도 비교된다. 아마 감독이라면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출근 시간을 조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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