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조금 어색했던 강정호, 그래도 노랗게 빛난 컴백 홈

조회수 2016. 5. 20. 13: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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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오랜 시간 갇혀 있었다. 드디어 자유의 몸.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고향의 그녀가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누군가의 사람이 됐을 지도….

편지를 썼다. ‘당신에겐 아직도 내가 필요한가요? 그렇다면 마을 어귀의 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하나 묶어 놓으세요. 만약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겠어요. 우리 일은 잊겠어요. 모두가 내 탓이겠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돌아가는 길. 눈을 감았다. “(버스) 기사님, 도저히 볼 수가 없네요. 제발 알려주세요. 노란 리본이 있는지.”

잠시 후. 버스 안은 승객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 믿을 수 없었다. 마을 어귀, 그 오래된 참나무에는 수백개의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었다.

Tony Orlando & Dawn이라는 그룹이 부른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의 가사 내용이다. 이 곡은 1973년 900만장 이상 팔려나가면서 그 해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경기전 강정호가 해리슨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mlb.tv 화면

계속되는 ‘단독 샷’…뭐라도 하는 주인공

노란색 다리(橋)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브리지를 넘어 PNC 파크에 하나 둘, 발길들이 모인다. 팬들은 2주 가량의 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해적들을 맞으러 왔다.

물론 오늘의 특별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서막은 온전히 그의 차지다.


카메라를 등지고 섰다. 멀리 외야에서 펄럭이는 해적기를 향했다. 뒷모습이라 표정을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가슴 한 켠이 짠하다. 관중석에 팬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가 몇 개 눈에 띈다. ‘You are the Best King Kang’ ‘Welcome to the Kang Show’.

오랜만에 만난 팬들에게 사인해주는 모습도 나온다. 중계방송 하던 ‘ROOT Sports’의 캐스터 그레그 브라운의 톤이 살짝 격앙된다. “작년 9월 17일 이후 처음입니다. 다시 팬들 앞에 돌아왔습니다.”

카메라는 다시 덕아웃 안으로 왔다. 또 단독샷이다. 빨간 불이 들어오자 그가 ‘뭐라도’ 한다. 건강함을 과시라도 하듯 강렬한 표정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귀여움과 오글거림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든다.

잠시 후 또다시 원 샷이 온다. 경기 시작 무렵이다. 글러브 끼고 3루수 위치로 간다. 카메라도 따라간다. 또 뭘 해야 하나? 얼굴은 웃지만, 눈빛은 대략 난감이다. 분위기 파악한 PD가 재빨리 화면을 넘긴다. 멀리 외야석의 진짜 해적같이 생긴 2명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대형 태극기가 PNC 파크에 휘날린다.

거듭된 단독샷. 강정호는 카메라를 향해 건강함을 과시하고 있다. mlb.tv 화면  

첫 타석 기립박수와 피어나는 노란 글씨들

무사히 1회 수비를 마치고 첫 공격. 뿌듯하다. 4번 타자다. 허들 감독이 홈 복귀전이라고 신경 좀 써 줬나? 그럴 리가. 잘 치니까 그런 거다.

1사 2, 3루. “J.U.N.G.H.O.K.A.N.G~.” 장내 스피커를 통해 그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하나, 둘, 셋…. 어느 틈에 수 천명이 모두 일어섰다. 함성이 터진다. 아낌없는 갈채가 쏟아진다. 그 속에서 노란 글씨들이 피어오른다. ‘Welcome Back Home’ ‘Pittsburgh Loves You’.

다시 ‘ROOT Sports’의 캐스터 그레그 브라운의 외침이 감성을 흔든다. “작년 와일드카드 게임 이후 처음 이곳에 모습을 보입니다. 그 때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죠. 여러분, 우리의 내야수가 돌아왔습니다.”

파이어리츠 구단의 트위터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팬들이 보낸 뜨거운 박수가 멋졌다. 반갑다 강정호.”

첫 타석 등장 때 기립박수. 곳곳에 노란 빛깔이 피어난다.    mlb.tv 화면

그날도 오늘처럼 밀리터리 룩이었다

그날도 목요일(현지시간)이었다. 오늘처럼 밀리터리 룩을 입는 날이었다. 비명에 쓰러졌다. 끝내 앰블런스를 거부했다. 팬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랬으리라. 부축을 받고 절뚝이기는 했지만, 자기 발로 걸어서 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244일 만이었다. 그의 ‘컴백 홈 시리즈’가 화려하게 치러졌다. 3연전내내 4번 타자, 주전 3루수로 건강하게 팀의 중심을 지켰다.

특히 복귀 첫 날(현지시간 17일, 화요일)은 ‘강정호 스페셜’이나 마찬가지였다. ‘ROOT Sports’는 경기 내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팬들의 환대가 인상적이었다.

<…구라다>는 경기내내 그 노래가 오버랩 됐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말이다.

관중석과 그라운드 곳곳에서 파이어리츠의 상징인 샛노란 빛깔들이 영롱하게 피어올랐다(구단에서는 자기들 색깔을 금색ㆍgold이라고 부르지만). 유니폼, 장신구, 응원문구들….

팬들의 응원 문구들이 그의 환영을 반기는 노란 리본 같다.            mlb.tv 화면

노란 리본 같았다. 커다란 참나무에 매달아 놓은 수 백, 수 천개의 나부낌 같았다. 거기는 그런 메시지가 담겼다. 기다림, 반가움, 간절함, 기원.

베트남전, 이라크전, 걸프전…. 미국인들은 그럴 때 노란 리본을 꺼냈다. 길고, 힘겨운 여정을 끝낸 사랑하는 이를 환영하는 마음들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아픔이 남았지만.)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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