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 세비야, 진정한 유로파리그의 '끝판왕' 맞군요

조회수 2016. 5. 19. 14: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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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UEFA 유로파리그 결승 리버풀 vs 세비야 매치 리뷰

요즘 내 별명은 ‘김문어’다. KBS 프로그램 비바K리그에 다음 라운드 경기결과를 예측하는 코너가 있는데 지난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를 시작으로 3경기 연속 승패와 스코어까지 정확히 맞혔다. 그동안 사실 승패 예측 적중률이 높은 편은 아니였는데 최근 경기 흐름과 결과, 심지어 득점 선수까지 맟히다보니 약간의 근자감까지 생기는 듯 했다.

이번주에도 예상이 적중한다면 어찌해야할까? (KBS 비바K리그 캡쳐화면)

세비야와 리버풀의 15/16 유로파리그 결승전. 스터리지의 골로 리버풀이 1-0으로 앞선 채 하프타임을 맞이했다. 오늘 함께 중계한 스포티비 채민준 캐스터에게 잠시 숨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민준아 내가 요즘 촉이 좋거든. 3-1로 리버풀이 우승할 것 같아.’

45분 후, 이번에도 나의 스코어 예측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런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팀은 리버풀이 아닌 세비야였다. 오늘 경기는 마치 두 팀이 아닌 네 개의 팀이 각각 전후반을 나누어 치른 것 같았다. 특히 후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흐름으로 전개되었고 지금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중계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후반전을 다시 돌려봤다.

‘도대체 오늘 이 경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 경기 초반 관전 포인트

양 팀은 최근 치러진 리그 경기에서 주전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며 컨디션을 잘 조절했다. 모든 초점을 오늘 유로파리그 결승 경기에 맞췄다. 리버풀은 부상에서 복귀한 핸더슨까지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고 세비야는 트레물리나와 크론델리, 레예스가 부상으로 제외되었지만 최선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양 팀의 라인업 (출처: UEFA 홈페이지)

리버풀은 준결승에서 스페인 팀인 비야레알을 상대했다. 리버풀의 강력한 전방 압박에 스페인 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준결승에서 비야레알을 상대한 것은 좋은 학습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세비야는 16강에서 스위스의 FC바젤을 상대했다. 결승전이 열린 생 야콥파크는 바젤의 홈 구장으로서 이번이 세비야에게는 올 시즌 두 번째 방문이 되었다. 올 시즌 리그와 유럽대항전을 가리지 않고 어웨이에서 유난히 약했던 세비야에게 생 야콥파크에 대한 경험은 하나의 중요한 경기 외적인 이점 이였을 것이다.

리버풀은 과연 전반 어느 시점부터 전방 압박의 시동을 걸 것인가?

세비야는 1차 빌드업 과정에서 빠르고 간결하게 리버풀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을까?

결승전을 제외하고 리버풀은 올 시즌 14번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딱 한 차례 패했다. 홈에서 5승2무, 어웨이에서 1승5무1패를 기록할 정도로 홈과 어웨이 경기의 리듬을 확실히 구분했다. 홈에서는 ‘클롭 리버풀’의 특징인 높은 수준의 전방 압박이 자주 진행됐지만 어웨이에서는 종종 라인을 내리면서 경기의 템포를 늦추며 힘을 비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리버풀은 분위기에서 앞서 있었다. 결승전에서 대결하는 팀 간의 전력 차이는 크지 않다. 당일 컨디션, 선수의 심리 상태, 경기 전날 수면의 질, 식사의 질 등 사소한 것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 심리 상태에 연관된 중요한 요소 중 한가지는 분위기다. 사실 나는 세비야 보다 리버풀의 분위기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리버풀은 토너먼트 단계를 거치면서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고 특히 도르트문트와의 8강에서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며 고비를 넘겼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시즌 종반 팀에 커다란 에너지가 형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반면 세비야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로파리그로 내려왔고 미드필드의 엔진인 크론델리까지 부상으로 잃으며 공격 패턴이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중립지역에서 단판 승부지만 과연 리버풀이 전반 어느 시점부터 자신들이 잘하는 전방압박을 과감하게 실행 할 것인가? 그리고 세비야의 진영에서 공을 소유권이 전환 될 때 과연 리버풀이 몇 초 안에 다시 공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반대로 세비야가 자신의 진영에서 공을 빼앗기지 않고 리버풀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이 경기 초반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였지만 결국 경기 흐름의 키는 리버풀이 쥐고 있었다. 세비야 보다는 리버풀이 어떻게 경기 초반을 시작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 나다니엘 클라인 vs 마리아노 페레이라, RB vs RB

전반전 공 점유율은 57% - 43%로 리버풀이 앞섰지만 전반 34분, 스터리지의 골이 터지기 전까지 양 팀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리버풀도 세비야도 오른쪽 풀백의 영향력이 돋보였다. 밀너, 찬의 활발한 중앙 활동력 덕분에 클라인은 측면에서 과감하게 전진했다. 세비야의 페레이라 역시 오른쪽 윙어로 나선 코케와의 우수한 호흡을 통해 공격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양팀 오른쪽 풀백의 강력한 전진으로 인해 자연스레 왼쪽 풀백은 수비에 치중하는 시간이 많았다. 양팀의 왼쪽 라인은 올라가지 않는게 아니라 올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였다.

세비야 페레이라의 측면 영향력

# 리버풀의 전방 압박에 대한 세비야의 자세 (전반전 편)

전반 20분 이후 리버풀은 전방 압박의 강도를 올렸다. 최전방에서 빠르게 도전하여 세비야 수비진이 전방으로 부정확한 롱킥을 하도록 유도했다. 초반에는 측면으로 몰았지만 세비야의 풀백들이 개인 역량으로 몇 차례 풀어나오자 압박의 타겟을 센터백으로 변경했다. 전반전 시간이 갈수록 카리소나 라미에게 빠르고 강한 도전이 발생했고 2~3차례 세비야 수비가 곤란함을 겪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바로 미드필더 바네가 였다. 바네가는 오늘 경기에서 폭발적으로 뛰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경기장 많은 부분을 돌아다녔다. 무엇보다 바네가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공에 관여되어 있었다. 세비야의 센터백이 리버풀 압박의 타겟이 되자 바네가는 자신의 진영으로 깊게 내려와 직접 공을 받아 우수한 개인 스킬로 리버풀의 압박을 풀어나왔다. 빠른 동작은 결코 아니였지만 훌륭한 상황인식과 여유있는 몸동작으로 공을 지키고 패스를 뿌렸다.

전반 중반 이후 바네가는 직접 깊게 내려가 공을 받아 플레이를 전개했다.
리버풀은 카리도 등 세비야 센터백들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4-2-3-1을 사용하는 세비야에게 바네가가 밑에 내려가서 공을 받는다면 전방에 있는 가메이로에 키 패스가 제공될 확률이 줄어들었다. 전반전 바네가의 동선은 리버풀의 전방 압박을 벗어나기에 좋은 방법이였지만 가메이로가 고립되며 공격 루트 또한 제한적으로 변했다. 중앙과 측면을 활발하게 오가며 공을 직접 운반 할 수 있는 크론델리의 공백이 아쉬운 상황이였다.


# 준비 vs 준비

양 팀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분석하여 준비한 듯 했다. 리버풀의 불안요소는 침투를 잘하는 가메이로가 발이 느린 투레와 로브렌과 경합하는 상황을 차단해야 했다. 그동안 세비야의 키패스는 주로 바네가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리버풀의 2선은 바네가 밑에 위치한 은존지와 크리호비악에게 부담을 주며 결국 바네가의 동선을 밑으로 향하게 했다.

세비야는 쿠티뉴 등 리버풀 2선 자원들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세비야 역시 수비 상황에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좋았다. 무엇보다 쿠티뉴와 피르미누의 공격 패턴을 잘 차단했다. 특히 쿠티뉴가 왼쪽 측면에서 가운데로 공을 운발 할 때 리버풀의 확실한 패턴이 만들어졌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커버가 촘촘하게 여러겹으로 준비된 느낌이였다. 쿠티뉴와 피르미누는 전반 내내 조용했지만 스터리지의 선제골 장면에서는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스터리지의 슈팅도 대단했지만 그 슈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웠다. 전반전은 리버풀의 것이였다.


# 유럽대항전에 존재하는 ‘15분의 법칙’

후반 시작 20초만에 세비야의 동점골이 터졌다. 킥오프와 동시에 세비야는 공격을 시작했고 전반 내내 훌륭했던 페레이라는 모레노를 측면에서 지워버리며 가메이로에게 골을 선물했다. 유로파리그 8번째 골을 터뜨린 가메이로의 마지막 움직임 또한 훌륭했다. 수비가 상대 공격수와 맞선 상황에서 가벼운 모습을 보이면 곤란하다. 가벼운 모습이란 한 번에 공을 뺏으려고 덤빈다거나, 상대 공격수의 진행 방향을 미리 예상해서 그쪽으로 몸을 써버리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모레노는 혼자가 아니였다. 도전이 아닌 지연을 통해 뒤에 있던 쿠티뉴와 협력수비로 페리이라를 측면으로 밀어 낼수도 있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해설하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어느 팀이던 상대에게 15분 이상 경기 리듬(주도권)을 내주면 곧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상대가 15분 가까이 경기 리듬을 통제한다면 그 흐름을 깨기 위한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 경기 템포를 늦춰 공을 갖고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린다.

* 포지션에 변경을 주어 선수들의 간격과 밸런스를 재설정 한다.

* 선수 교체를 통해 흐름을 끊고 경기장의 공기를 환기시킨다.

후반 시작 20초만에 터진 가메이로의 골로 인해 양 팀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여유를 잃은 리버풀은 통제가 되지 않았고 전방 압박을 시도할 때 전반과 달리 단위적으로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는 전진하고 누구는 자리를 지켰다. 자연스레 공수 간격이 벌어졌고 리버풀의 팀 밸런스는 무너졌다.


# 리버풀의 전방 압박에 대한 세비야의 자세 (후반전 편)

후반 초반 깨진 리버풀의 팀 밸런스는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릴 때 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세비야는 리버풀의 깨진 팀 밸런스 사이에 발생한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전반전과 달리 세비야는 리버풀의 전방 압박에 대해 두 가지 부분에서 성공적인 변화를 보였다.

무리한 전진패스 보다는 백패스, 그리고 백패스 바로 직후의 패스는 '횡으로 빠르게'.

상대 진영에서 공격 전개 시, 측면에서 중앙으로 온 공은 원터치로 간결하게.

전반전 중반부터 세비야는 리버풀의 압박에 좀처럼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이른 시간 동점골 이후 세비야의 유연한 대처가 눈에 띄었다. 리버풀의 압박이 강하다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한 칸 뒤로 패스를 보냈다. 그리고 한 칸 뒤에서 공을 받은 선수는 미리 봐둔 옆에 있는 동료에게 최대한 빠른 타이밍에 빠른 속도로 패스를 연결했다. 이 패턴은 리버풀의 전방 압박을 무력화시켰다. 추가적으로 뒤로 패스를 한 선수는 곧바로 다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각도로 움직였다. 상대의 압박을 깰 수 있는 가장 좋은 형태인 ‘전후 볼 소유’가 가능한 포지셔닝이 후반전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풀어나온 공이 측면에서 중앙을 통해 진행 될 때, 터치 또한 간결했다. 측면에서 가운데로 공이 연결되면 수비수의 시선은 (1). 측면에서 패스를 한 사람 – (2). 중앙에서 공을 받는 사람 순서로 이동된다. 그 과정에서 수비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위치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2). 에 해당하는 선수가 원터치로 방향을 바꿔 패스를 한다면 공격자에게 매우 좋은 상황이 연출되는데 후반전 가메이로에게 이런 상황이 몇 차례 발생했다.

후반전 세비야의 간결한 공격 전개

후반 19분에 터진 코케의 역전골도 비슷한 리듬에서 나왔다. 밸런스가 깨진 리버풀의 수비 시작 지점이 애매했고 공수 간격도 벌어져있었다. 골은 코케가 기록했지만 이 장면의 핵심 역할은 비톨로가 해냈다. 중앙 지역에서 전후 방향으로 진행되는 두 차례 간결한 원투패스를 통해 리버풀의 수비 블록을 파괴했고 마지막 코케에게 연결된 패스도 훌륭했다.


# 세비야, 진정한 “유로파 끝판왕”

리버풀은 후반 24분 오리기를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후반 25분 세비야는 또 다시 코케가 골을 성공시키며 3-1 로 달아났다. 클롭 감독은 벤테케까지 투입하며 3-4-3 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했지만 끝내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리버풀은 흐름이 좋았던 전반전 몇 차례 판정과 후반전 초반 세비야의 흐름을 끊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작년 10월에 부임한 클롭 감독 체재에서 리버풀은 단기간에 긍정적으로 변화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시즌에도 리버풀의 감독은 위르겐 클롭이라는 사실이다.

‘90%’ 지난 10년 간 치러진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팀이 우승한 확률이다. 단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제골을 넣은 팀이 우승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세비야의 ‘유로파 DNA’는 이런 통계조차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세비야는 유로파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됬다.

“우리는 유로파리그 우승 경험이 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하면 결코 경험이 모든 걸 좌우하진 않을 것이다.”

경기 하루 전 코케의 인터뷰는 연막 작전이였을까? 전반과 후반이 너무 달랐던 리버풀,

그 차이는 결국 유로파 결승 무대에 대한 경험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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