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아빠 골퍼'의 책임감

김세영 기자 2016. 5. 19. 08: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최근 국내 남자 골프 무대에서 '아빠 골퍼'의 바람이 거세다. 아빠라는 책임감이 골프 실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전이 반갑다. 사진은 주흥철이 2년 전 군산CC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달성한 후 아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사진=박태성 기자

결혼을 한 후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책임감이 커졌다. 자연 돈에 대한 개념도 생겼고, 씀씀이도 달라졌다. 술을 마셔도 저렴한 동네 호프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대신 아이를 위해 들어가는 돈은 그다지 아깝지 않다. 남들보다 못해 줄 때의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빠라는 말은 남자에게는 책임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최근에야 상황이 변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결혼을 해야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건 그 만큼 책임감이 커지는 일이기에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어른으로 인정을 해 줬다고 본다.

요즘 국내 남자 프로 골프 무대에서 '아빠 골퍼'의 바람이 거세다. 올 시즌 총각 골퍼가 우승한 경우는 아직 없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최진호는 두 아이의 아빠고, 박상현은 매경오픈 최종일 어버이날을 맞아 세 살 배기 아들의 카네이션 응원을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역시 두 아이의 아빠인 모중경은 매일유업 오픈에서 10년 만에 국내 투어 우승을 달성했다.

해외에서도 아빠 골퍼들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경태다. 2007년 프로 데뷔 첫해 3승을 챙기면서 상금왕과 대상, 최저타수상,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괴물'의 탄생을 알린 그도 한 때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김경태는 지난해 첫 아들의 탄생과 더불어 부활에 성공했다. 그는 "결혼 후 생활이 바뀌었다. 집에 가서 가족을 보살펴야 하니 책임감이 생긴다. 좀 더 열심히 연습하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한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왕에 오른 김경태는 올 시즌 벌써 일본에서 2승을 거두며 상금왕 2연패 전망을 밝히고 있다.

주흥철은 2년 전 군산CC오픈에서 "아내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우승하고 싶다"던 간절한 소망을 이뤘다. 그는 펑펑 울었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뭉클해졌다. 그는 특히 아들에 대한 애틋함이 더 하다.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 심장수술을 받아서였다. 그래서 아들 앞에서 우승컵을 더욱 들어 올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며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후 부진에 빠진 후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투어 무대에서 1인자로서의 외로움,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던 아버지 얼 우즈를 잃은 상실감 등으로 인해 섹스 중독에 빠졌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런 요소들이 아빠로서의 책임감보다 컸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인기로 치면 우즈와 동급이거나 때론 우즈보다 더 높다고 평가를 받았던 존 댈리 역시 자녀가 있지만 마약과 도박, 술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투어에서 벌었던 막대한 돈도 탕진했다. 우즈와 댈리의 경우는 한국보다 개방적이고, 가정 못지않게 '나의 삶'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그들과의 문화 차이로도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국내 투어에서 일고 있는 '아빠 골퍼'들의 선전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들을 연습장에 더 오래 머물게 했고, 그게 실력 향상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그럴 듯한 해석이 뒤따른다. 하지만 젊고 유능한,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은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선수라고 해서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작은 것도 아니다. 한국 선수 중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안병훈은 일찌감치 국내 선수들이 기피하던 유럽프로골프(EPGA) 2부 투어부터 뛰었다.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의 작은 마을로 이어지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왕정훈은 골프 변방인 중국프로골프(CPGA) 투어부터 시작했다. 언젠가 성공하리라는 믿음과 간절함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는 시기였을 것이고, 지금의 '성공신화'도 없을 것이다.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골퍼의 기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지는 지에 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최근 보여주는 선전이 반갑다. 같은 아빠로서의 동질감이 있기에 더욱 그렇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그렇다. 박수를 보낸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Copyright © 마니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