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의 하프타임] 우리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어요.

조회수 2016. 5. 18. 18: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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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에게도 박수를 - 챔피언 될 자격이 없어요

“우린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어요.챔피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지난 14일 웸블리에서 벌어진 WSL FA컵 결승전을 마친 후 지소연 선수가 한 말입니다. 지난 시즌 팀 창단 이후 첫번째 우승컵을 웸블리에서 들어올렸던 디펜딩 챔피언 첼시레이디스는 2연패를 꿈꾸었지만 그녀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시티 레이디스와의 4강전에서 후반 종료 5분전에 터진 지소연 선수의 그림같은 프리킥 동점골과 연장 종료 직전 터진 프랑커비의 드라마틱한 역전골로 결승행 티켓을 따낸 후에 첼시 레이디스선수들은 다시 한 번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고, 4월 21일 결승 상대인 아스널 레이디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2:0의 완승을 거둔 후에는 그 자신감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또한 결승전이 열리기 전까지 이번 시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첼시의 독주를 막을 팀은 없어 보였습니다.

경기 전날 대망의 결승전을 앞두고 스탬포드 브릿지 밀레니엄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던 지소연 선수를 비롯한 첼시 레이디스선수들을 만났는데, 스탭들과 함께 경기를 앞두고 비디오를 보며 분석하기도 하고 산책도 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챔피언이 될 준비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맨시티전 결승골의 주인공인 프랑커비는 “당연히 준비되었다.맨시티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내일도 꼭 승리를 이루어 낼 것이다.”며 우승에 대한 욕심을 보였습니다. 휴식을 취하던 지소연 선수도 “컨디션은 괜찮아요. 내일 경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승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꼭 승리하고 싶어요.”라며 승리에 대한 욕심을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 열린 PFA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2위를 차지했을 때에도 아쉬움보다는 FA컵 우승에 대한 열정을 보였던 것처럼 꼭 우승하고 싶어한다는 마음을 느꼈어요. 그녀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대망의 결승전이 열리는 웸블리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은 여자선수들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로 가득하였습니다. 물론 남자 선수들의 경기만큼의 팬들은 아니지만 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린이팬들은 무료 입장이었기에 많이 보였고, 한국팬들도 간간이  보였습니다. 시작전부터 경기장은 파란색과 빨간색 물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경기에 앞서 양팀 선수들의 소개와 더불어 식전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축구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웸블리 스타디움에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선수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여름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열광 시켰던 결승골의 장면들과 우승을 확정지은 후에 첼시 플래그를 들고 응원하러 온 한국팬들 앞으로 뛰어 오던 지소연 선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다시 생각해도 감동적이고 멋진 모습이었어요. 그 생각 가운데 오늘도 다시 한 번 그 때의 감동적인 장면이 재연되기를 기대하면서 경기에서도 부상없이 멋진 경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구요.

경기 휘슬이 울렸고, 팬들의 함성과 함께 경기가 진행 되었습니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기는 하였지만 예상보다는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년보다는 많은 관중이었고, 여자 경기임을 감안할 때는 32,912명의 관중은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전광판에 뜬 관중숫자를 보면서 부러움과 동시에 국내리그에도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과 특히 여자리그에도 많은 관심들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첼시 레이디스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은 시작부터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스널레이디스 선수들의 움직임은 활발하였고, 승리하고 싶다는 열정을 경기력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디펜딩 챔피언이자 현재 리그 무패를 달리고 있는 첼시레이디스 선수들은 경직된 모습이었습니다. 패스 연결도 안되고, 자리도 잡지 못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시즌 결승전때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소연 선수 역시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구요. 골대를 살짝 빗나간 아쉬웠던 슈팅도 있었구요. 결과는 1대0으로 아스널이 승리를 거두며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첼시 레이디스의 2연패는 좌절되었습니다.

경기 후에 아스널 레이디스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사이에 첼시 레이디스 선수들은 관중석 앞으로 와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들의 경기력에 대한 아쉬움과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였습니다. 선수들의 표정에서 이번 경기가 만족스럽지 못하였음을 읽을 수가 있었구요.

“눈물도 안 나왔어요. 너무 실망해서… 제 자신에게도 그리고 팀에게도 너무 실망스러운 경기였어요. 아스널 선수들이 잘 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우리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없어요. 챔피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라며 경기 후에 지소연 선수는 자신과 팀의 경기력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하였어요. 그러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팀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남은 경기에는 달라진 모습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으면 좋겠네요.” 라며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경기 후,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스탬포드 브릿지의 한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하였습니다. 우승을 못해서인지 작년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어요. “우리는 시작부터 잘못된 느낌이었다. 선수들끼리도 그리고 스탭들과도 소통이 잘 안된거 같다. 왜 이렇게 실망스러운 경기를 하게 된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젬마 데이비슨은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웃음을 보여주었어요.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는 이런 웃음들만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틀간의 휴식을 가진후에 다시금 코밤에 있는 트레이닝 센터로 선수들이 훈련을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여느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엠마헤이즈 감독의 표정도 무거워 보였고, 훈련을 하는 선수들도 간간히 웃기는 하지만 다른때보다는 무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이미 훈련 전에 스탭들과 선수들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다시금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고,  더불어 감독님의 쓴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선수들이 지난 경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였는지 진중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계기를 통하여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팀이 되기를 기대해 보네요.

마지막으로 지소연 선수는 “아직도 리그, 컨티넨탈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등 많은 경기들이 남아 있어요. 어제의 실패를 토대로 더 좋은 팀이 될거라고 기대해요. 그래서 남아 있는 경기에는 지난 시즌 우승팀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겁니다. 저부터 다시 열심히 해야죠.”라며 앞으로의 시즌에 대한 다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시즌에는 2등만 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게요 계속해서 2등만 하네요. 설마 리그도 2등하는건 아니겠죠? 우승이든 2위든 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고 싶어요. 더 열심히 해야죠.”하며 멋쩍은 미소를 짓습니다.

‘PFA올해의 선수상, WSL FA컵 우승 그리고 리그우승’ 지난 시즌 지소연 선수의 성적입니다. ‘PFA올해의 선수상 2위, WSL FA컵 2위’ 이번시즌 현재까지 지소연 선수의 성적입니다. 팀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아쉬운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팬들도 쓴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1등에게 모든 찬사가 쏟아지며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1등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냐는 것입니다. 즉 후회없는 경기를 했냐는 것입니다. 결과에 앞서 그 과정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입니다. 그녀는 너무 실망해서 아쉬움의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녀도 팀도 열심히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1등에게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2등에게도, 승자에게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패자에게도 박수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2연패의 꿈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른 첼시 레이디스도 지소연 선수도 박수를 받아야합니다. 이 박수를 통해 더 힘을 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앞서 그 과정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축구 팬들도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 비난과 야유가 아닌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되고 이런 응원 문화가 우리 삶가운데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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