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헤이 마이크 트라웃? 나 오승환이야, 오승환"

조회수 2016. 5. 14. 07: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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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3>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수 많은 명장면, 명대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점. 우리에게 송강호라는 배우를 선물한 작품이다. 불사파 보스였던 그가 마지막 '작업'을 앞두고 애들에게 훈시하는 장면이다.

"예전에 말이야. 최영의라는 분이 계셨어. 최영의. 전세계를 돌며 맞짱을 뜨신 분이지. (중략)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딱 소 앞에서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나 최영의야. 그리고 그냥 소뿔을 딱 잡아. 잡고 그냥 무조건 가라데로 X나게 내려치는 거야...X나게...소뿔 빠개질 때까지."

에인절스전의 오승환은 1회 WBC 때 모습이 연상될만큼 완벽하고 싱싱했다.       mlb.tv 화면

20대 초반의 오승환을 다시 보는듯

LA 남쪽, 1시간 쯤 거리에 있는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은 특별하다. 1회 WBC 2라운드 때 한국 야구가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미국과 일본을 거푸 물리친 곳이기 때문이다.

그 대회에서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풋풋한 오승환이 치퍼 존스, 아라이, 다무라 같은 수준급 타자들을 간단히 제압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끝판왕이라는 명함을 돌리던 때다.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그는 "낯설지 않은 곳이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새삼스럽다"며 감회에 젖는듯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10년만에 다시 한번 현실에서 이뤄졌다.

어제(한국시간 13일) 그 경기는 20대 초반의 돌부처가 다시 소환된듯한 모습이었다. 그 강력함, 단호함이 빛나는 한판이었다.

무엇보다 MLB 최상위 레벨인 마이크 트라웃을 간단히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은 올 시즌 그의 투구 중 백미로 꼽을만한 사건이었다.

어지러운 경기를 깔끔하게 정리하다

선발 아담 웨인라이트가 심하게 폭격당했다. 무사히 넘어가는 이닝이 없을 정도다. 11개의 안타(홈런 1개 포함)를 두들겨 맞으며 무려 7점을 잃었다. 5이닝을 채우는 것도 허덕허덕이다.

마이크 매서니 감독이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했다. 그래도 웨인라이트인데. 이름값을 지켜주느라 불펜 가동을 최대한 늦췄다. 전반전이 끝난 시점에 10-7. 핸드볼 스코어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불씨는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가장 신뢰도 높은 소방대원에게 인터폰을 때렸다. '어지러운 경기 좀 정리해줘.'

불끄기의 달인은 시작부터 달랐다. 하위 타선 쯤이야. 초간단 모드로 진화 장치를 작동시켰다. 공 10개로 6회가 지워졌다. 매서니는 욕심이 났다. '미안하지만, 한 번 더 플리즈.' 그가 누군가? 그런 거 마다할 리 없다. 명예 소방대원으로 위촉된 인물인데. 'OK. Why not?'

7회에도 나간다는 건 상대 클린업 트리오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곧 이 경기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를 맡긴다는 의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이크 트라웃과의 맞대결이 성사된다는 애기다. 흥미진진이다.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가자 트라웃이 구심에게 뭔가를 묻고 있다.               mlb.tv 화면

핵심은 초구, 빠른볼 스트라이크였다

<…구라다>는 이 대목의 관전 포인트로 초구를 꼽는다. 과연 (변화구가 아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느냐. 그리고 그걸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수 있느냐. 그게 핵심이었다.

이유? 간단하다. 자존심이고, 그게 기백이기 때문이다. 투수는 수많은 공을 던진다. 끊임없이 타자와 수싸움을 벌인다. '어느 코스에, 무슨 구질이 좋을까' 따위의.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 꼭, 반드시, 직구여야 할 때 말이다.

그토록 소망하던 리그에 진출했다. 그곳에서 최상위 레벨의 타자와 만났다.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그럼 첫번째 공은 특별해야 한다. 변화구, 유인구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강한 상대에게는, 가장 강한 공을 뿌려야 한다.

그의 초구가 그랬다. 93마일짜리(약 148.8㎞)였다. 가장 먼 쪽에 꽉 차게 박혔다. 높이도, 코스도 예술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이 나왔다. 타자가 놀란다. 뭐라고 중얼거리며 심판을 쳐다본다. '저게 진짜 스트라이크 맞냐'고 물어보는 눈치다. 그만큼 완벽했다. 고개를 살짝 흔든다.

트라웃을 하수 다루듯

첫번째 스트라이크로 타자는 1차 충격을 받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그 빠른 볼이 또다시 오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포수 몰리나는 영리했다. 2구, 3구째. 연속 슬라이더로 타이밍을 흔들어 놓는다. 와중에 3구째(84마일)는 가운데 몰린 실투였다. 그런데도 트라웃의 배트는 한참 늦었다. 헛스윙.

3구째는 몰린 슬라이더였다. 그러나 트라웃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mlb.tv 화면

볼카운트 1-2로 아직 하나가 남았다. 하지만 타자는 완전히 구석에 몰렸다. 빠른 볼에는 (방망이가) 안 나가고, 슬라이더에도 타이밍을 못찾느다. 이미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투수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 노련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느낀다. 비틀거리는 타자를 괜히 길게 갈 필요없다. 곧바로 피니시 블로다. 몰리나가 직구 사인을 주고 빠져 앉는다. (초구와 같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미트를 댄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어렵게 갈 필요도 없다. 투수는 안다. 그냥 빠르게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으면 된다는 사실을. 가운데 높게 갔다. 사인과 반대되는 역구(逆球)다. 평소 같으면 장타를 걱정해야 할 코스다. 하지만 배트는 한참이나 차이났다. 택도 없이 허공에서 돌았다.

현지 중계방송을 하던 해설자가 이렇게 표현했다. "(승환)오의 공은 정말 살아있어요. 92, 93마일인데 손에서 나오는 순간 폭발적인 힘이 느껴지는군요."

옆에 있던 캐스터도 말을 보탠다. "얼마 전에 (LA 에인절스) 마이크 소시아 감독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오승환의 디셉션(투구시 볼을 숨기는 동작)이나 팁토(발 디딤)가 예전 롭 디블(1990년대 초반 신시내티 마무리)을 연상시킬만큼 뛰어나다구요."

빠른 공으로 간단하게 삼진 처리하는 장면. 트라웃이 들어가면서 오승환을 힐끔 쳐다본다.   mlb.tv 화면

다시 한번 <넘버3>다. 불사파 보스(송강호)가 최영의에 대해 강의하는 장면이다.

"코쟁이하고 맞장 뜰때도 마찬가지야. 헤이! 존슨...유, 유 로버트 존슨? 나 최영의야. 그냥 걸어가. 뚜벅뚜벅. (중략) 이 팔은 머머 니손 아냐? 이러면서 또 X나게 내리치는 거야. 무조건. 파..팔 치울 때까지. 그 무대뽀 정신, 무대뽀. 그게 필요하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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