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빅보이, 한 잔 해요" 카노는 그 마음 아는듯

조회수 2016. 5. 12. 13: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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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 설령 맞춘다고 치자. 그만한 거리를 보낸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볼카운트 1-2였다. 첫 타석 삼진의 나쁜 기억이 떠올랐다. 왼손 투수 스마일리의 6구째. 바깥쪽으로 얄밉게 빠져나가는 커터였다. 스트라이크 존 외곽에서도 한참 멀었다. 건드려봤자 기껏 내야 땅볼 정도? 그렇다면 타자는 물론 주자 2명(무사 1, 2루)의 생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 타구가 맞아나갈 때만해도 반응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주춤주춤 물러가던 우익수가 곧 포기하고 만다. 급기야 담장 너머로 공이 사라지자 현지 중계진의 샤우팅이 시작됐다. ‘와우’ ‘빅보이’~.

4번 타석에 나와 유효타는 그것 하나였다. 하지만 4회말에 나온 그 3점 홈런 강력함은 내내 경기 전체를 지배했다.

3점 홈런 뒤 이대호가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mlb.tv 화면

어느 매체의 용감한 기자가 오승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지금 미국에 와있는 (한국) 타자 중에 누가 제일 잘 치는 것 같아요?” 보통 이런 민감한 질문에는 대답이 쉽지 않다. 박병호도 있고, 강정호도 있고, 김현수도 있다. 모두 다 KBO리그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포지션 플레이어들 아니었나.

그러나 오승환은 별로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기술적인 부분은 대호가 제일 좋은 것 아닌가요?” 물론 개인적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렇다고 해도 영 새롭게 들린다. 아마 마운드에서 직접 상대해본 느낌에서 나온 생생한 평가인 것 같다.

독실한 플래툰교 신자 서비스 감독 

이번엔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하긴 뭐. 연타석 친 다음 날도 빠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정적인 3점포를 친 이튿날인 오늘(한국시간 12일)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우리 미디어와 팬들은 한결같이 매리너스 구단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반쪽만 쓰지 말고, 제대로 한번 기회를 주라고. 오른손 투수 공도 잘 치지 않냐고. 이 쯤 되면 정규직 전환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러나 참, 신분 변경이라는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걱정은 오늘 게임 하나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2주 가량은 상대편 스케줄이 대부분 오른손 투수가 나올 예정이다. 하루를 쉰 뒤 홈 3연전(LA 에인절스), 그리고 볼티모어, 신시내티 원정 6연전. 하필이면 모두 우투수 로테이션에 걸린다.

이대호를 지지하는 측에게 우울한 그 일정이 좌타자 애덤 린드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기회일 것이다.

독실한 플래툰교 신자인 스캇 서비스 감독의 신앙심이 발휘된다. 그는 자나 깨나 린드 걱정이다. “볼티모어와 신시내티는 타자들에게 유리한 곳이다. 거기 가서 하면 아무래도 (린드가 타격감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린드는 아직도 우리 공격력의 중요한 부분이다. 기다리다 보면 점차 나아질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런 마음이 부당한 처사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올해는 헤매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꾸준한 실적을 남긴 타자다. 연봉(800만 달러)도 이대호보다 몇 배나 많고. 투자자의 체면은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대호의 한 방이 터지자 시애틀 덕아웃에서는 감독, 코치가 기쁨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mlb.tv 화면

창조경제도 몸소 실천

상황이 이런 데도 우리 나이로 35살짜리 루키는 참 무던하다. 어디 무던할 뿐인가. 미국에서도 한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에게 국산 선글라스를 선물하며 몸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선도했다. 매리너스 공식 트위터는 그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대호가 동료 선수들에게 한국산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눈에 확 띄는 아름다운 색깔이었다. 팀원 모두가 써봤다. 다들 멋지다고 좋아했다.”

동료 선수들뿐 아니라 외야에 앉은 관중들에게도 나눠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국산은 품질을 보증한다”며 창조 경제의 일꾼다운 면모도 과시했다.

빅보이가 나눠준 선글래스를 쓰고 즐거워하는 동료들.     시애틀 매리너스 트위터 

초록물을 권하는 조용한 손 

<…구라다>는 바로 그 날. 그러니까 결정적인 3점 홈런을 친 다음 연출됐던 특별한 장면이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어린아이 같이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덕아웃에서 나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정신 없는 세리머니가 모두 끝나고,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는 순간이다.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조용히 초록물 한잔을 건넨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받아든 이대호는 곧이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팀의 간판 스타이자, 클럽 하우스의 리더나 다름없는 로빈슨 카노였다. 순간 당황했음이 역력했다. 얼마나 뜻밖이었으면, 공손히 머리까지 숙이며 두 손으로 잔을 받았을까.

덕아웃에 돌아오자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음료수 한 잔을 건넨다.        mlb.tv 화면
뜻밖의 환대에 놀란듯 이대호는 머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mlb.tv 화면

뭐 별 거 아니다. 돈이 드나, 품이 드나. 덕아웃 안에 있는 흔하디 흔한 음료수 한 잔일 뿐이다.

하지만 주는 사람의 마음, 받는 사람의 태도에서 그 행위에 담긴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같은 1982년생이다. 컵을 건넨 사람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나이에 왜 루키 신분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결코 만만치 않은 경쟁에, 쉽게 나아질 리 없는 상황까지.

그런데도 덩치 큰 팀 메이트는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밝고, 열정적이다. 한 타석, 한 타석의 소중함을 절절히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카노가 내민 손에는 그런 동료에 대한 애틋한 경의와 깊은 존중이 담겨 있었으리라.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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