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한화 로저스의 보크, 퍼즐에 대한 추측

조회수 2016. 5. 9. 10: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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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속에 감춰진 파마 머리(?). 우아한 갈색톤이 살짝 비친다. 힙합의 스피릿이 느껴지는 세련된 스타일이다.

이글스 팬들이 손꼽아 기다린 에이스가 돌아왔다.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야구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궁금하게 여겼다. 개막 후 많은 의혹과 화제를 뿌리며 자취를 감췄던 에스밀 로저스가 드디어 복귀전을 가졌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첫 등판은 별로였다. 지난 해 리그를 얼어붙게한 그 강렬한 인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볼은 빠르지만, 뭔가 완성되지 않은 모습. 그러니까 보통의 외국인 투수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뭐, 그럴 수 있다. 아직 첫 등판 아닌가. 찜찜한 부상을 겪었고, 한 달 넘는 재활 기간을 거쳤다. 와중에 온갖 구설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그런 생각이 순리에 맞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물음표를 남긴 장면이 있었다. 과연 괜찮을까? 자신의 최대치를 올해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보자.

연이은 보크 선언, 침묵하는 벤치  

그의 첫 등판은 많은 숫자를 남겼다. 최고 구속, 투구수, 피안타, 실점, 탈삼진, 등등. 그 중에서도 <…구라다>가 관심을 갖는 지점은 한 군데다. 숫자 2. 그가 기록한 보크의 갯수다.

1회는 완벽했다. 이대형, 오정복이 연달아 강풍기를 돌렸다. 날카로운 슬라이더 근처에도 못가는 스윙이었다. 역시. 압도적인 구위였다.

2회 김상현에게 솔로홈런을 맞았다. 그래도 4-1이었다. 승리를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순조롭던 2사후. 박기혁에게 안타를 맞았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김종민을 내야플라이로 아웃시키고 이닝을 종료하려는 순간, 박종철 구심이 얼음 땡을 외쳤다. 로저스의 투구폼을 지적하며 보크를 선언한 것이다. 아웃은 무효가 되고, 주자는 2루로 이동했다.

어떨결에 생명이 연장된 김종민은 기어이 좌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2루 주자 박기혁은 홈으로 생환했다. 그리고 로저스는 다시 한번 보크를 범했다. 한 이닝에만 2개를 기록한 것이다.

로저스가 두번째 보크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자 심판이 설명하고 있다.      SPOTV 중계화면

 2개의 보크는 같은 이유였다. 세트 포지션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자가 있을 때 투수는 사인 교환을 끝내고, 공을 던지기 전 글러브를 모으고 잠시라도 명확한 정지 동작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로저스는 그 부분을 생략했다. 멈추는듯 했지만, 분명하지 않았고 거의 연결 동작으로 이어졌다. 이건 1루 주자의 스타트를 방해하기 위한 기만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두번째 판정이 나오자 로저스는 반발했다. 양 손을 크게 벌리며 구심(박종철)을 향해 ‘내가 뭘 잘못했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박종철 씨는 한화측 통역을 통해 문제가 된 부분을 직접 설명해줬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다. 한화 벤치의 반응이다. 보통은 감독(대행)이나 코치가 나와 심판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꼭 번복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자기 편(투수) 실수에 대한 변론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날은 그런 절차가 없었다. 그건 무슨 뜻일까? 혹시,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인가? 

작년에도 지적됐던 나쁜 버릇 

시간을 되돌려보자. 지난 해 로저스가 처음 왔을 때다. 초반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건드릴 수 없는 공을 뿌려댔다. 타자들은 이렇다할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던지면 완투, 완봉이었다. 도대체 공략이 불가능한 투수로 여겨졌다.

그런데 3, 4경기를 지날 무렵 약점 하나가 발견됐다. 세트 포지션 상태, 그러니까 주자를 두고 던질 때 작은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그는 세트 포지션의 멈춤 동작에서 투구로 넘어가기 직전 글러브를 한번 ‘까딱’ 하는 버릇이 갖고 있었다. 그건 1루 주자에게는 일종의 스타트 신호 같은 의미다. ‘이번에는 견제가 아니고, 포수한테 던지는 거야’라고 가르쳐 주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 정보는 전력분석원들을 통해 금새 나머지 팀으로 전파됐다. 실전에서 요긴하게 활용하는 팀도 생겼다. 그 버릇을 보고 스타트를 끊으면 별로 빠르지 않은 주자라도 손쉽게 도루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포수 조인성은 2루에 공을 던져볼 타이밍조차 없었다.

그런 문제점을 인식한 채 지난 시즌은 끝났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난 투수라는 점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나쁜 버릇이야 뭐, 고치면 되지.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재계약은 이뤄졌다.

그리고 어제(8일) 첫 등판이 이뤄졌다. ‘그 나쁜 버릇은 없어졌겠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연이은 보크 판정이 나왔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100개 정도 생겼다.

사실 작년에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나쁜 버릇(흔히 일본어로 쿠세라고 하는)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제 경기에서 드러난 것은 그 이상이었다. 글러브를 까딱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세트 포지션 자체가 무척 불안정했다.

투수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주자가 있을 때(세트 포지션)와 없을 때(와인드 업)의 차이가 작아야 한다. 세트 포지션이 안정되지 못하면 구위가 떨어지고, 나쁜 버릇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캐릭터? 리더십? 누구 탓이든 결론은 같다  

그 장면을 보면서 떨어진 퍼즐의 한 조각이 묘하게 맞아 들어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추론이 가능해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얼마전 로저스와 그 팀 전력분석코치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물론 당사자는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수근거림은 여전하다. 그 실체는 무엇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나쁜 버릇’에 대한 수정이라면 전력분석 파트에 속한 업무다. 다른 구단이라면 전력분석 담당 직원이 투수코치에게 보고하고, 코치가 보완작업을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화의 경우는 다르다. 전력분석 파트에 코치가 있으니까 직접 할 것이다. 그런데 비교적 간단한 수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시즌을 맞게 됐다.

다른 팀은 다 아는 걸, 이글스만 모를 리 없다. 알면서 그냥 놔뒀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 개선된 건 없다. 그건 무슨 뜻일까?

또 한가지. 로저스는 6회에 교체됐다. 투수코치가 심판에게 공을 받아들고 올라왔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선뜻 동의하는 것 같지 않았다. 꽤 뜸을 들이다가 마지 못한 표정으로 내려갔다.

물론 투지와 승부욕 탓일 게다. 에이스의 책임감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작년부터 몇 번의 구설에 올랐다. 그래서 그 태도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기 주저하게 된다.

말 잘 듣는 게 최선은 아니다. 뚜렷한 주장과 화이팅 넘친 개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팀워크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누구의 탓인지 모르겠다. 지나치게 튀는 캐릭터 때문인지, 아니면 그걸 다스리지 못하는 리더십 때문인 지. 하지만 결론은 같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그 팀의 미래는 없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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