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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코너 맥그리거의 실패한 4월의 반란.."왜 지금이어야 했니?"

조회수 2016. 5. 6. 0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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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vs 코너 맥그리거..패색이 짙은 힘겨루기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어쩌면 이때부터 UFC와 코너 맥그리거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는지 모른다. 지난 1월 21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UFC 197(나중에 UFC 196으로 바뀜) 기자회견은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묘했다.

맥그리거는 기자회견에 20분이나 늦어 놓고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쳤다. 대회 포스터 속 자신에겐 왜 챔피언벨트가 없냐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들을 공개적으로 나무라기 시작했다.

"포스터를 디자인한 누군가가 졸았던 것 같다. 조사해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내고 저것들을 버려야겠다. 이번 경기는 슈퍼 파이트다. 역사에 남을 이미지들은 어디에 있는가? 먼 훗날에도 인구에 회자될 포스터인데, 그때 여러분들은 저 쓰레기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포스터 디자인 팀을 찾아가 봐야겠다.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 있을 게 뻔하다. 정신 차려라. 이제부터 제대로 일하는 게 좋을 거다."

이해는 간다. 자존심 세고 직설적인 맥그리거라면 그럴 만하다. 하파엘 도스 안요스와 대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으니 폭발했을 것이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장소가 문제였다. 이곳은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도 함께한 기자회견이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 회사 대표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 회사 직원을 대 놓고 욕한다? 그것도 기자들이 쫙 깔려 있는 곳에서? 어차피 최종 결재는 화이트 대표의 손에서 난다. UFC 직원을 향한 비난은 돌고 돌아 결국 화이트 대표에게 향하게 돼 있다. '원 쿠션'으로 총책임자인 화이트 대표를 '먹이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설사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더라도, 화이트 대표를 당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재미있는 장면은 이때부터. 화이트 대표는 해명하기 시작했다. "맥그리거는 (도스 안요스가 가진)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그의 벨트는 이번 경기에 걸려 있지 않다. 이번에 지더라도 그는 여전히 페더급 챔피언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갑자기 '백설명'이 됐다.

개인적으로 이때 화이트 대표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는 느낌이랄까. 그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당시 기자회견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현재 비공개로 처리돼 있다. 대신 당시 상황을 묘사한 블리처리포트 채드 던다스 기자의 기사를 인용한다.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http://me2.do/Gg6SLw01)

"화이트 대표가 해명을 마쳤다. 다음 질문을 할 다른 기자에게 마이크가 넘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약 14초 동안이었다. 이 14초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UFC와 맥그리거의 불화설은 지난해 12월부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UFC 194에서 맥그리거가 조제 알도를 13초 만에 쓰러뜨리자, 옥타곤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프랭크 퍼티타 회장이 못마땅한 듯 챔피언벨트를 테이블 위로 쾅 집어 던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기자들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화이트 대표는 "부정적인 의미도, 긍정적인 의미도 아닌 행동이었다. 알도가 한 방에 KO된 것에 대한 프랭크 퍼티타 회장의 격정적인 반응이었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기자들과 팬들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슈퍼스타로 떠오른 맥그리거가 UFC의 통제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UFC 임원진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관측은 계속 흘러나왔다.

지난 2월 서비어 MMA라는 매체와 진행한 맥그리거의 영상 인터뷰를 재조명해 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의 말 하나하나에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UFC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UFC와 동반자가 되겠다'였고, 나쁘게 말하면 'UFC와 맞먹겠다'였다.

"불화설은 헛소리다. 난 로렌조 퍼티타, 데이나 화이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난 매일 UFC에서 사다리를 타고 더 높이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대등한 위치가 될 것이다. 아마 어떤 선에 다다르면, 난 가장 큰 몫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함께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난 UFC를 향한 충성심을 갖고 있다. UFC 임원들은 나를 신뢰했다. 그들은 날 돕고, 난 그들을 돕는다. 우리는 좋은 팀이다."

회사에 큰 수입을 안겨 주면 자신의 권한이 커질 것이라는 발언도 하는데, 바로 지금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다. 최근 그가 한 행동이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하다.

"회사에 400만 달러 수입을 안겨 줄 수 있을 때,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 훈련하고 희생하고 승리하면서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왔다. 관계를 깨려고 하진 않는다. 난 단지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그들과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파이를 나눠 먹으려고 노력한다. 임원진도 내 목표를 안다. 난 주저하지 않고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 돌출 행동은 결과적으로 '판단 미스'였다. 방아쇠를 너무 일찍 당겼다. 지난 3월 UFC 196에서 네이트 디아즈와 웰터급으로 싸워 PPV 150만 건을 팔아 치운 것 때문에 한껏 자신감이 올라갔기 때문일까. 그는 기자회견 참석을 거부했고 화이트 대표의 연락을 받지 않았으며 가짜로 은퇴 선언까지 했다.

모든 승부에서 상대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만 27세의 맥그리거는 화이트 대표가, 그 뒤에 퍼티타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우리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수많은 맹수들을 힘으로 제압한 조련사들이다. 예멜리야넨코 표도르와 경기하겠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한 랜디 커투어와 법정 싸움까지 가서 그를 다시 옥타곤 위에 세웠다. 화이트 대표의 앙숙 티토 오티즈가 매니저를 그만두고 나서야 크리스 사이보그를 품었다. 일정을 연락 받지 못했다는 1차원적 핑계를 대면서 기자회견에서 빠진 앤더슨 실바, 선수 노조가 필요하다며 리복 스폰서 독점 계약에 반기를 든 조제 알도 등 길들이기 까다로운 브라질 파이터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냉정한 사업가들이다. 돈이 될 만한 일은 거침없이 추진한다. 탱크 같다. 맥그리거와 디아즈의 재대결은 UFC 200 메인이벤트로 명분이 없지만, 돈 냄새를 맡은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무조건 돈만 좇지 않는다는 점이다. ESPN의 최근 분석대로 맥그리거가 UFC 200에서 빠지면 약 4,450만 달러(약 509억 원) 수입 감소가 있다고 할지라도, 반기를 든 맥그리거를 품어 줄 정도로 자비롭지는 않다. 고작(?) 509억 원 때문에 전 조직을 와해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할 수 없었다. 509억 원도 그들에겐 때때로 '소(小)'가 된다. 맥그리거는 그것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끼리 뭉치지 않는 한, 그것도 톱클래스 선수들끼리 같이 움직이지 않는 한 '갑을 대결'에서 승자는 언제나 UFC다. 그래서 "나만 이번 기자회견에서 빠지게 해 달라"고 특혜를 요구한 맥그리거의 항명은 동료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했다. 절차에서 정당성을 갖추기 힘들었다. 포스터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던 것처럼, 차라리 기자회견에 나와 "홍보 일정을 줄여 선수들에게 훈련 시간을 확보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면 지금처럼 꼴이 우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UFC 여성 밴텀급 챔피언 미샤 테이트는 "의무는 다했어야 한다. 기자회견에 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영혼' 도널드 세로니도 "내가 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하는 것 같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했다.

맥그리거는 UFC 200에 나설 수 없지만 디아즈와 재대결은 여전히 강하게 원하고 있다. 3일 트위터에서 팬들과 깜짝 채팅을 하는 등 'SNS 게릴라작전'으로 자신의 의지를 UFC에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4일 아침에도 맥그리거는 인스타그램에 "이 말을 기억해라. 재대결에서 디아즈를 장난감처럼 다뤄 주겠다. 날 믿어라"고 썼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인지 SNS에 나타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차피 칼자루는 화이트 대표와 퍼티타 회장이 쥐었다. 천둥벌거숭이지만 돈을 끌어오는 능력이 탁월한 맥그리거는 이제까지 그들이 다뤄 온 선수들과 성격이 다르다. 계속 강공으로 가 맥그리거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만, 못 이긴 척 맥그리거의 바람을 들어주고 달랠 수도 있다. 화이트 대표는 맥그리거가 계약서에 명시된 UFC 대회 홍보 의무를 어긴 것에 냉정하게 칼을 댔다. 환부를 도려냈다. 그러나 냉정하고 엄하게 나오면서도 모든 인터뷰에서 "난 맥그리거를 좋아한다. 그를 이해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오는 9일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UFC 파이트 나이트 87이 열린다. 아일랜드에서 멀지 않다. 이 대회에는 맥그리거의 동갑내기 팀 동료 거너 넬슨이 출전한다. 맥그리거는 지난달 23일 UFC 200 기자회견이 열릴 때 아이슬란드에서 그의 훈련을 돕고 있었다.

맥그리거가 이쪽으로 움직이면 UFC 임원들도 움직일 수도 있다. 일단 마주보고 의견 차를 좁히는 게 우선이다. UFC 파이트 나이트 87에 맥그리거가 나타날지 두고 보자.

비록 4월의 반란은 실패로 끝나 가는 분위기지만 맥그리거가 한 가지 가능성은 보여 줬다. UFC와 선수의 주종(主從)에 버금가는 갑을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물론 UFC와 견줄 만한 경쟁 세력이 나타나야 하고, 선수들을 뭉치도록 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과제를 여전히 남겨 두고 있지만.

맥그리거,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나. 더 무르익었을 때 합당한 명분을 갖추고 정당한 요구를 했다면, 그의 말처럼 "UFC와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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