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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그들은 이제 김현수에게 사과해야 한다

조회수 2016. 5. 2. 08: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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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또 비다. 그곳은 날씨도 참 질척댄다. 게다가 저녁이 깊어지자 을씨년스러움도 더해진다. 4월이 끝자락인데, 볼티모어의 밤 기온은 50도(섭씨 10도)까지 떨어졌다.

6회 세번째 타석이다. 그가 등장하자 어디선가 희미한 박수 소리가 들린다. 캠든 야즈 관중석에 태극기를 든 팬의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다.

화이트삭스의 두번째 투수 잭 푸트넘의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85마일). 배트가 시원하게 돌아갔지만 헛스윙이다. 2구째 또 그 공이 온다. 약간 더 예리한 각으로 빠져나간다(84마일). 그러나 지극히 부드러운 스윙은 도망가는 공을 향해 정확한 컨택을 만들어냈다. 중견수가 꼼짝 못하는 완벽한 안타다.

중계방송하던 볼티모어 MSN 캐스터(짐 헌터)가 급격히 볼륨을 높인다. “좌중간에 떨어지나요? 예, 그가 해냈군요. 3타수 3안타예요.”

곁에 있던 해설자(짐 파머)도 그냥 놀 수는 없다. (느린 화면이 재생되자) “보세요. 스플릿 체인지업인데요. 가볍게 쳐내죠? 이치로 같아요. 이치로는 일본 출신이고, 김(현수)은 한국출신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군요.”

3안타를 쳤는데 왜 이리 짠하지?

세 개나 쳤지만 그의 토요일은 여전히 바쁘다. 폭투 때 2루까지 내달았다. 2사 후. 2번 애덤 존스가 우측 담장을 때리는 큼직한 타구를 만들었다. 홈에 들어가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웬걸. 2루를 노리는 존스가 박빙이다. 자칫 그가 먼저 아웃되면 점수도 없다.

3루를 도는 순간 기어를 변속한다. 그리고 급격히 RPM을 올린다. 이를 악물었다. 모든 신경을 모아 두 다리의 추진력을 최대치로 높였다. 빗물이 얼굴을 때린다. 간신히 이닝 보드의 숫자가 바뀌었다.

숨이 턱에 닿아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뻔한 하이파이브 몇 개를 거쳤다. 게XX이 통 옆에 ‘털석’ 자리를 잡았다. 목이 탄듯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여전히 두리번 두리번.

3안타 경기다. 첫 2루타도 터졌다. 우익수-좌익수-중견수 쪽으로 차례차례 배달시켰다. 펑고치듯(수비훈련) 하나씩 골고루 보내줬다. 해설자는 “스트라이크 존을 모두 커버하는 타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타율은 듣도 보도 못한 6할이다.

갈채와 칭찬이 쏟아졌다. 축하와 격려가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구라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전혀 다른 색깔의 감정이 치솟는다. 안쓰러움, 애잔함, 뭐 그런 얄궂은 것들이다.

분명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지 모르겠다. 안타깝다. 측은하다. 그리고 짠하다. 전력질주 때의 그 절박한 표정이, 초록물 마실 때의 그 불안한 눈빛이….

쇼월터의 기막힌 유체이탈 화법  

오늘(한국시간 2일) 그는 또다시 선발 오더에서 제외됐다. 어제 3안타를 친 6할 타자의 역할은 언제나 그렇듯이 벤치를 덥히는 일이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출전을 애걸하기도 싫다. 리카드가 잘 쳤는 지, 못 쳤는 지. 그 딴 거 신경 쓰는 것도 구질구질하다.

다만 무엇보다 그런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과거사에 대한 정리다.

그 쪽 지역지인 볼티모어 MASN의 기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개막 하던 날 야유를 받았던 김(현수)은 오늘 안타를 칠 때마다 환호를 받았다. 제한된 활동 속에도 (15타수 중 9안타) 점점 팬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있다.’

그 다음 줄에 쇼월터의 멘트도 있다. “(김현수에게 야유했다가, 박수쳤다가 하는 반응이) 아주 전형적인 우리 팬들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보탠다. “(김현수에게) 잠시 뒤로 물러서 게임을 보게 했다. 그게 압박감을 더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참 대단한 유체이탈 화법이다.

어느 댓글러가 아주 통렬한 한 줄을 남겼다. ‘쇼월터 머리 박아!!!’

그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어찌 그걸 잊었겠는가.

희망에 가득 차 시즌을 시작하던 날이었다. 그러나 마주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무례함과 경박함, 그리고 편협한 반감이었다.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치졸함이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천박한 야유를 쏟아냈던 이들과,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흘러가도록 뉴스를 유통시켰던 미디어들. 무엇보다 ‘익명을 요구하는’이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 제한된 정보를 흘리며 여론을 호도했던 오리올스 구단의 의사결정권자들.

그들은 이제 사과해야 한다. 백넘버 25번의 ‘처절했던 4월’이 엄중하게 그걸 요구하고 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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