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대호 내야안타 향한 비아냥에 대하여

조회수 2016. 4. 29. 11: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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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린드의 타구가 까마득히 치솟았다. 공은 우중간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시즌 첫 홈런이 왼손 투수를 상대로 나왔다. 이거 플래툰 시스템이 이상하게 꼬이는 거 아냐? 어쨌든. 홈 팀은 3-5로 따라붙었다. 아직 6회. 분위기가 달궈진다.

다음은 6번 카일 시거. 나오자마자 몸에 맞는다. 상대 투수가 흔들린다. 2사 1루에 덩치 큰 오른손 타자가 타석에 들어온다. 원정 팀 벤치가 바빠진다. 결국 투수 교체. 오른손 투수 윌 해리스를 올린다.

초구, 2구,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빠진 볼이다. 3구째. 역시 멀다. 그러나 구심은 손을 들어준다. 타자는 불만이다. 홈 플레이트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직접 가본다. 그리곤 ‘휘~’ 심판 뒤로 한바퀴 돈다. 1인 시위다. 루키 주제에 배짱도 좋다.

4구째. 이번에는 칠만한 공이다. 배트가 돌았다. 아차차. 조금 빨랐다. 공의 윗 부분을 때렸다. 3루수 옆으로 땅볼. 조금 깊다. 루이스 발부에나가 백핸드로 잡아서 1루로 쐈다. 순간 믿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전력질주한 타자가 공보다 조금 빨리 베이스로 날아들었다. 내야 안타.

우사인대호의 탄생 

프로필에 나온 몸무게는 250파운드. 113.4㎏이다. 당연히 달리기 하고 친 할 리 없다. 그런 그가 2경기 연속 내야안타라니…. 이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사건이다. 자신의 세계기록인 9경기 연속홈런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이제까지는 한 시즌 500~600타석을 풀로 뛰어도 합계 3, 4개 정도가 기껏이다(2015년 3개, 2014년 2개, 2013년 4개). 그런데 고작 26타석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메이저리그 수비가 한국이나 일본만 못할 리도 없는 데 말이다.

<다음스포츠>에서는 ‘우사인대호’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유통시켰다. 이용자들의 갈채가 터졌다. 편집자의 기발/참신/발랄함에 경의를 표한다.

일찍이 그의 발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첫번째 내야안타 때였다. 27일(이하 한국시간) 같은 휴스턴 전이었다. 1사 1루에서 3ㆍ유간 가장 깊은 곳으로 굴렸다.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어렵게 잡아 뛰어올랐으나, 송구는 비껴나갔다. 역시 질풍같은 역주가 돋보였다.

2개의 내야안타 때 1루 도달에 필요한 시간은 4.8초대였다. 그건 어느 정도일까. 뻔한 얘기지만 메이저리그 최하위 수준이다.

통계 사이트 <Statcast>의 자료에 따르면 가장 빠른 사나이는 오클랜드 에이스의 중견수 빌리 번스다. 그는 정상적인 타격 자세 후 1루까지 가는 데 평균 3.8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대호보다 꼭 1초가 빠른 셈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디 고든(3.91초), 빌리 해밀턴(3.96초) 등이 줄 서 있다. 이치로는 4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98초로 전체 5위에 랭크됐다.

반면 가장 느림보는 오클랜드의 지명타자인 빌리 버틀러였다. 4.95초. 알버트 푸홀스 역시 4.92초로 최하위권이었다. 

설렁설렁 뛰면서도 박수 받은 순간 

앞서 얘기한 <Statcast>의 스프린트 능력은 ‘뻔한 상황’을 제외하고 계량화한 것이다. 즉 높은 플라이볼, 쉬운 땅볼 타구처럼 누가 봐도 아웃이라서 설렁설렁 달리는 경우. 또 안타라 하더라도 단타나 2루타 등이 명확해 보일 경우는 배제시켰다. 그러니까 타격 후에 1루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는 상황만을 추려서 데이터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설렁설렁’이 늘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5초가 훨씬 넘는 주력으로도 대충 달리고도 격려와 박수를 받았던 순간이 그 날(27일) 있었다.

3회였다. 홈 팀의 선두 타자 아이아네타가 2루타를 치고 나갔다. 다음 타석이 에 들어선 그는 초구 루킹 스트라이크에 이어 2구째를 헛스윙했다. 볼카운트 0-2로 위기다. 상대 투수는 지난 해 사이영상 수상자인 댈러스 카이클이다. 3구째. 카이클의 주무기인 커브가 들어왔다. 간단히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타자가 누군가. 그렇게 만만히 당할 상대가 아니다. 비록 완벽한 타이밍을 잡지는 못했지만, 능숙한 배트 컨트롤로 2루수 쪽에 굴렸다. 아웃 카운트 1개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앞 선 주자였다. 배려에 찬 타구 방향에 아이아네타의 3루 진출은 여유 있었다. 5.26초나 걸려 1루에 도착한 타자는 당연히 아웃. 고개를 숙였지만 코치의 등두들김, 홈 팬들의 박수 갈채는 그의 몫이었다.

 최고의 스프린트 능력이 발휘됐던 순간

그가 디 고든이나 빌리 해밀턴 못지 않은 스피드를 발휘한 날이 한 번 있었다. 2주 전 쯤인 지난 14일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홈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2사후 대타로 등장해 끝내기 홈런을 터트린 날이다. 상대 불펜의 에이스 제이크 디크먼의 97마일(155.2km)짜리를 좌측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몇 차례나 반복된 재생 화면을 보면 그는 환호와 함께 번개 같은 주력으로 다이아몬드를 한바퀴 돌았다.

예전에 빌리 해밀턴이 인사이드 더 파크 (그라운드) 홈런을 친 뒤 14.3초 만에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그의 발도 만만치 않았다. 굳이 기록으로 잴 필요는 없었다. 기분으로는 오히려 더 폭풍같은 주루였다. TV 화면에 잡힌 모습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환한 그의 표정만이 명확하다. 나머지 그라운드의 주변 풍경은 흐릿하게 초점이 바랬다. 특히 현란한 발의 스피드는 카메라도 감히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비아냥이 있었다. 그러니 맨날 벤치라는 이죽거림도 들렸다. 어렵게 얻은 선발 출전 기회에서 기껏 내야땅볼이나 치고 있다는 한탄도 나왔다.

김현수도 그랬다. 게다가 이대호까지…. 시원하게 띄우지는 못하고, 허구한 날 데굴데굴 굴리기만 한다는 안타까움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것도 야구다. 그것도 부끄럽지 않은 안타 하나다. 그것도 최선이 들어간 하나의 플레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시즌의 가치가 완성된다. 그러니 수군거림은 지금이 때가 아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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