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저 팔뚝.." 압도적 돌직구에 적들이 술렁거렸다

조회수 2016. 4. 25. 09: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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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이 24일과 25일 내리 등판했습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필승조로 나와 매번 1이닝씩을 책임졌는데, 결점이 없는 완벽한 피칭이었습니다. 지난 번 2실점 후 걱정을 많이 했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은 특히나 압도적이었던 24일 파드리스전을 중심으로 구성됐습니다. 아웃 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괴력을 보였습니다.)  


첫 타자를 잡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호세 피렐라. 벤치 멤버 아닌가. 후보니까 못 치는 게 당연하지. 올 시즌 겨우 3타수 1안타.

① 91마일 먼 쪽 직구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스트라이크. ② 86마일 슬라이더는 더 아득해 보였다. 또 멀뚱멀뚱. 하지만 구심(팀 티몬스)의 생각은 달랐다. FOX-TV의 Trax를 컨닝한 것처럼 예리했다. 오른손 번쩍. 카운트가 0-2로 몰렸다. 타자는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이다. 자비로운 돌부처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준다. ③ 이번에는 존 안으로 오다가 빠져나가는 슬라이더(84마일). 어리석은 중생은 미약한 휘두름 한 번으로 삶의 고통을 마감한다.

삼진 퍼레이드의 서막. 첫 타자 피렐라를 공 3개로 돌려세웠다.  mlb.tv 화면

본격적인 승부는 이제부터다. 홈 팀이 자랑하는 상위 타선이 등장한다. 1번 존 제이. 왼쪽 타석으로 들어선다.

① 92마일짜리가 무릎 쪽을 파고든다. 움찔. 가장 낮은 코스에 정확히 박혔다. ② 이번에는 정반대다. 똑같은 92마일. 그러나 존의 가장 윗부분으로 날아든다. 타자 눈에는 잘 보인다.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배트를 냈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돌부처의 원소속팀 쪽 사투리로 하면 ‘택도 없는’ 방망이질이었다. 공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타자의 표정에서 절망이 읽힌다.

여우 같은 포수 몰리나가 이걸 놓칠 리 없다. 더 볼 필요도 없다. ③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사인이 나오자 지체 없이 형이 집행된다. 조금 더 빠른 93마일이다. 무기력한 스윙은 저항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존 제이가 어이없는 스윙으로 아웃됐다. 마이어스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타석에 나온다. mlb.tv 화면

BK의 역대급 기록이 다시 한번 탄생할뻔

불과 공 6개였다. 2명의 타자가 내리 3구 삼진으로 돌아섰다. 타격은 고사하고,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펫코 파크의 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홈 팀 타자들이 힘 한번 못 쓰고 추풍 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대기 타석의 윌 마이어스가 빈 손으로 터덜터덜 들어오는 존 제이를 애타게 바라본다.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대체 왜들 그래? 뭘 던지길래?’ 전날(한국시간 23일) 경기에서는 홈런까지 쳤는데. 그 위풍당당함은 진작에 사라졌다. 학교 가기 싫은 초등학생의 얼굴로 타석에 섰다.

자비를 기대했지만, 언감생심. 조금도 늦춰줄 기세가 아니다. 연거푸 돌직구 2개(92마일)를 때려 박는다. 코너워크고 자시고 없다. 그냥 한가운데 보고 던진다. 그래도 손 쓸 방도가 없다. 간신히 파울, 또 파울. 그건 스윙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냥 맞추기 급급해서 갖다 대는 정도다.

노련한 폭스 스포츠 - 샌디에이고(FOX Sports-SD)의 캐스터 딕 엔버그가 눈치챘다. “파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 타자들 같은 스윙은 아니네요.”

카운트 0-2. 세번째 공은 스트라이크처럼 오다가 빠져 나가는 슬라이더(85마일)였다. 마이어스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낸다. 만약 얼떨결에 배트를 냈다면 (홈 팀 입장에서는) 참사가 벌어질뻔 했다.

1이닝, 9구, 3삼진 말이다. 이건 노히트노런보다 진귀한 기록이다. (예전에 BK가 전성기 때 한 번 했다.)

갑자기 소개 멘트가 늘어난 현지 중계

능욕의 수준이었다. 타자들은 처참하게 당하고 있었다. 그러자 FOX Sports-SD의 캐스터와 해설자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등판할 때만해도 ‘웬 듣보잡?’ 하는 취급이더니, 분위기가 바뀐다. VVIP급 소개 멘트가 줄줄줄이다. 

캐스터 딕 엔버그 : 오(승환)는 제로네요. (알파벳 O를 숫자 제로로 은유한듯)

해설자 마크 그랜트 (투수 출신) : 보세요. 저 다리, 알통, 팔뚝…. 뭔가 엄청 강해 보이는군요.

캐스터 : 33살이구요. 5피트 10인치(177.8cm) 인데, 210파운드(95.3㎏)나 나가네요. 아주 당찬 체격이예요. (He is stockily built.)

캐스터 : 9년간 한국리그, 2년간 일본리그를 거쳤네요. 계속 릴리프 투수만 했습니다. 선발로 뛴 적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폭스스포츠의 자랑인 수퍼 슬로 모션으로 돌부처의 투구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했다.

"파드리스도 저런 선수 얻기 위해 담당 부서를..."

카디널스 내야의 실책 덕에 잠시 생명은 연장됐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 팀의 간판 타자인 맷 켐프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① 92마일 패스트볼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비슷한 곳에 또 던져도 꼼짝 못할 것 같다.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타이밍처럼 보였다. ② 아니나 다를까. 투수는 공 한 클릭 정도를 안으로 조정한다. 가장 먼쪽 존이다. 멀거니 쳐다봐야 하는 스트라이크다. 켐프는 ‘저걸 어떻게 쳐?’ 하는 갑갑한 표정이다. ③ 이번에는 공 하나 정도를 밖으로 뺐다. 바깥쪽을 노리고 있던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한다. 카운트 1-2. ④ 결정구는 간단했다. 뻔히 짐작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휘어져나가는 슬라이더(85마일)는 꼭 스트라이크처럼 보인다. 힘 없는 배트가 바람을 가른다.

홈 팀 샌디에이고 측에서 중계방송하던 캐스터 딕 엔버그가 장탄식을 내뿜는다. “파이널 보스, 아니죠. 마지막 이닝이 아니고, 7회였지만 대단히 인상적이네요. 승환, 오!”

그러면서 부러운듯 한마디를 더 보탠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카디널스의 국제적인 스카우트 시장에 대한 네트워크가 느껴집니다. 다국적 파워를 갖고 있네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도 오(승환) 같은 선수를 얻기 위해 담당 부서를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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