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박병호의 소박한 우전 안타에서 인성(人性)을 느끼다

조회수 2016. 4. 20. 10: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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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마케팅의 시대다. 웬만한 직장, 어지간한 직책을 맡아도 ‘마케팅 마인드’를 강요받는 세상이다. 컨텐트를 만들면서도, 유통시키는 과정에서도, 하다못해 인사관리 하는 부서에서도. 영업적인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 그래야 ‘일 좀 하네?’라는 소리 듣고 산다. 참 팍팍하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1, 2주 전부터 팬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홍보했다. ‘박병호 발코니(Byung Ho’s Balcony)’ 행사였다. 31달러짜리 좌석을 33달러에 팔면서 기념품을 끼워주겠다고 했다. 선물은 특별 모자와 응원도구 같은 것이었다. 김치 크로켓과 한국 맥주도 팔기로 했다.

이벤트 안내 문구를 볼 때마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적당히들 하지. 일 너무 크게 만들지 말고….’ 왜 아니겠나. 그 당시만 해도 행사의 주인공은 하루에 삼진 4개씩 폭식하며, 먹방 찍을 때였다. 괜히 비웃음이나 사지 않았으면.

드디어 당일(한국시간 19일). 다행스럽게 발코니 좌석(600석?)이 모두 팔렸다. 관중석에는 온갖 버전의 박병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포진됐다. 이제 주인공의 퍼포먼스만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역시. 스타는 스타다. 두번째 타석에서 결국 공을 쪼갰다. 우측 담장 너머 2층까지 배달했다. ‘뱅뱅뱅’이라는 한글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팬은 졸지에 노스트라다무스가 됐다.

어제 발코니에 모인 한인 팬들의 모습. 폭스 스포츠는 이들의 장면을 흥미롭게 전했다. mlb.tv 화면
이벤트의 백미가 된 박병호의 3호 홈런. 바깥쪽 빠른 볼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mlb.tv 화면

발코니 데이의 클라이맥스가 된 홈런 

쳤다하면 2층, 3층이다. 그런 고층 전문가의 한 방을 두고 <스타 트리뷴>은 ‘400피트 날아간 로켓’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마케팅 관점으로도 해석해줘야 한다. 그야말로 개념 충만, 시기 적절한 홈런이었다. 관중석에서는 그의 이름이 연호됐다. 그라운드를 돌 때는 어디선가 넥센 시절 응원가가 떼창으로 터져나왔다. ‘오∼ (홈런!) 오∼ (홈런!) 히어로즈 병호∼.’ 야심찬 기획 발코니 데이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최고의 클라이맥스였다.

물론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구라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대포가 아니다. 세번째 타석. 그러니까 5회에 나온 짧은 안타다. 우익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소박한 타구. 오늘 하려는 얘기다. 

 

시프트에 말려 병살타 

세이버매트릭스는 메이저리그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까지 가치 있던 데이터는 휴지 조각이 되고, 새로운 개념의 숫자들이 존중받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일단락이 수비 시프트다. (특히 내야수의)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던 위치를 벗어나, 통계가 가리키는 곳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그 효과에 대한 신봉이 강해진다. 밀워키 브루어스 크레이그 카운셀 감독도 그 중에 한 명이다.

보통은 좌타자에 대해서 시프트를 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브루어스는 미네소타의 우타자들에게도 강력한 함정 수비를 사용했다. 2루수가 투수 뒤로 가고, 1-2루간은 완전히 비워놓는 시스템이다.

박병호도 첫 타석에 여기에 당했다. 무사 1루에서 정확한 타이밍으로 강한 타구를 날렸다. 투수 옆을 빠져나가는 중전 안타성이었다. 그러나 마침 매복 중이던 2루수 스쿠터 지넷에게 걸려들었다. 1루 주자까지 함께 죽이는 병살타였다.

‘아, 오늘 같은 날 이게 무슨….’ 열 받아 돌아오는 그에게 덕아웃은 싸늘한 시선 대신 따뜻한 격려를 선사했다. 톰 브로넌스키 타코(타격코치)가 다가오더니 하이 파이브를 신청한다. 발코니 주인은 얼떨떨.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다. 역시 천조국, 쿨내 진동한다.

병살을 성공시킨 2루수는 득의만면이다. 반면 박병호도 코치의 격려를 받았다. mlb.tv 화면

중계진의 봇물 터진 칭찬 

그 감동이 다음 타석에서 홈런으로 나타났나? 바깥쪽 빠른 볼을 가볍게 들어올려 결승 아치를 그려냈다.

그리고 문제의 세번째 타석. 5회 2사 1루에서 돌아왔다. 내야에는 마찬가지로 시프트가 걸렸다. 2루수와 유격수가 극단적인 위치를 선택했다. 투수는 철저하게 몸쪽으로 승부한다. 그래야 시프트 걸린 쪽으로 타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구가 91마일, 2구는 89마일. 연속적으로,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카운트 1-1에서 3구째도 역시 몸쪽에 붙는 강한 볼. 이번에는 타자의 방망이가 수줍게 돌았다. 마치 공을 밀어내듯 쳐냈다. 데굴데굴. 1루와 2루 사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굴렸다. 우전안타.

이 경기를 중계하던 <폭스 스포츠 North>는 이때부터 봇물이 터진다.

캐스터 (딕 브레머) “처음 2개 공이 안쪽으로 들어오네요. (3구째 안타가 나오자 갑자기 격앙) 예…그가 시프트를 깼습니다. 1루 주자는 2루에 멈추네요. 그냥 있었으면 2루수 앞으로 갈 타구였죠.”

해설 (버트 브릴레븐)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스윙이었어요. 오른쪽으로 보내려는 의도가 강했던 거죠. 아주 영리하네요.”

캐스터 “(역시 시프트 신봉자인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이 그러더군요. 상대 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네요. 배트 컨트롤을 할 줄 아는 타자라면 시프트를 깰 수 있을 것이라구요. 그건 모든 타자들이 그럴 수는 없다는 뜻이겠죠. 좋은 타자라야 가능하다는 말이죠. (박)병호가 하듯이 말이예요.”

폭스 스포츠가 분할 화면으로 안타 순간 스윙을 설명했다.   mlb.tv 화면

때로는 스윙 하나에도 마음이 느껴진다 

중계팀의 칭찬은 기술적인 부분을 조명했다. 그가 단순히 힘만 좋은 타자는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으리라.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하지만 <…구라다>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배트 컨트롤’ ‘인 앤 아웃 스윙(in and out swing)’ 따위의 어려운 전문용어 말고, 쉬운 우리 말이다. 됨됨이, 염치…. 뭐 그런.

사실 시프트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특히 박병호 같은 슬러거가 굳이 배트 컨트롤로 빈 곳을 노려 가벼운 스윙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반론도 있다. 자칫 타격 밸런스를 잃을 수 있으니, 본래대로 강한 스윙으로 더 강한 타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도 아마 그럴 것이다. 병살타를 칠 때도 그랬고, 다음날(오늘ㆍ20일) 홈런과 안타를 칠 때도 그랬다. 시프트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자신만의 스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우전 안타는 달랐다. 뭔가 마음이 들어가 있는 각별한 느낌의 스윙이었다.

그동안 너무 못한 데 대한 미안함, 탓하지 않고 지켜봐준 배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기꺼이 호응해준 팬들에 대한 감동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지,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선수는 대중들과 소통한다. 직접 마주치기도 하고, 미디어와 SNS를 사이에 두고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사소한 플레이에서도 마음이 전해진다. 수백번의 스윙 중 어느 하나에서는 특별한 메시지가 읽힐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속에서 묻은 됨됨이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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