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로드FC 최홍만 vs 마이티 모, 누가 더 간절할까?

조회수 2016. 4. 18. 16: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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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FC 30 무제한급 준결승전에서 이긴 최홍만과 마이티 모 이야기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간절(懇切)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는 뜻이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공안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30 무제한급 토너먼트 준결승전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차지한 두 선수는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최홍만과 마이티 모였다. 간절해서 이겼다.

최홍만은 펀치와 파운딩 연타로 아오르꺼러에게 1라운드 1분 36초 만에 TKO승했다. 마이티 모는 명현만에게 3라운드 1분 12초 넥 크랭크로 탭을 받았다. 최홍만과 마이티 모는 추후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맞붙는다. K-1 시절, 1승 1패를 주고받은 두 선수의 세 번째 대결이다. 종합격투기에선 처음 경기를 갖는다.

◆ 최홍만 "아픈 기억이 떠올라 정신을 바짝 차렸다"

최홍만은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사기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 12월 로드FC 27에서 루오췐차오에게 이겼으나 여전히 팬들은 최홍만의 경기력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이 자신과 붙자고 도발하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했다. 다음 달 로드FC에 데뷔하는 UFC 밴텀급과 페더급 출신 조지 루프도 "이윤준(밴텀급 챔피언)과 최무겸(페더급 챔피언)을 꺾고 최홍만과 싸우겠다"고 하는 등 어느새 동네북이 돼 있었다. "좋다, 싸우자"고 승낙하기엔 최홍만은 커도 너무 컸다. 잠자코 있으면 겁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돼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욕을 먹는 상황, 진퇴양난이었다.

아오르꺼러에게 진다면, 또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것 같았다. 기자회견의 무례한 도발에 대해, 대회 이틀 전 권아솔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지만 최홍만은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대회 전날 기자회견에서 "권아솔과 화해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사과를 진심으로 받았는가? 권아솔과 싸울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내일이 경기인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말하기 곤란하다. 대회에 관련된 질문만 했으면 좋겠다"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심리적 위축 때문인지 케이지 위에서 최홍만의 몸은 굳어 있었다. 아오르꺼러가 예상대로 밀고 들어올 때 최홍만은 뒷걸음질 쳤다. 지난해 7월 최홍만을 쓰러뜨렸던 카를로스 도요타처럼, 아오르꺼러는 고개를 숙이고 양손 훅을 휘둘렀다. 최홍만은 또 펜스에 몰렸다. 1년 동안 최홍만과 함께하고 있는 정승명 코치에 따르면, 원래는 사이드 스텝을 활용해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 장기전으로 가는 것이 작전이었다. 세컨드에서 "거기 있으면 안 돼"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왔다. 왼손잡이 아오르꺼러처럼 사우스포 자세를 취한 최홍만은 '앞손'인 오른손 카운터 훅을 준비한 듯 보였다. 아오르꺼러가 엉기면 넥 클린치에서 니킥을 차올리려고도 했지만, 기회가 나지 않았다. 언제 아오르꺼러의 펀치가 최홍만의 턱으로 들어갈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면이 연출됐다. 펜스에 몰린 최홍만에게 펀치를 휘두르던 아오르꺼러가 갑자기 힘없이 넘어졌다. 순간 중심을 잃어 고꾸라진 것 아닌가 했지만 아오르꺼러는 최홍만이 파운딩을 내리치기 전부터 의식이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와다 료가쿠 심판도 아오르꺼러가 기절한 줄 몰랐으니, 케이지 너머 관중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건 당연했다. 슬로비디오에서 찰나의 결정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오르꺼러가 공격할 때 뻗은 최홍만의 짧은 왼손 스트레이트 단타에 승부가 갈린 것이었다. 기세 좋던 아오르꺼러가 이 한 방에 KO됐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최홍만은 괴력의 217cm 거인이다. 펀치가 정확하게만 들어가면 100% 힘을 실지 않아도 상대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최홍만은 기자회견에서 밝게 웃었다. "왼손 스트레이트가 제대로 들어간 것 같다. 아오르꺼러의 눈이 살짝 돌아간 듯했다"며 "아오르꺼러가 초반에 강하게 돌진했다. 정신이 없었다. 그의 펀치가 너무 셌다. 예전에 안 좋은 기억(카를로스 도요타 전 KO패)이 있어서…. 그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반 러시에 지난 두 경기에서 당황했다. 더 이상 그렇게 몰리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겨서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마음의 짐을 그제야 내려놓은 듯했다.

◆ 마이티 모 "10명의 자녀들을 위해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

마이티 모는 지난해 로드FC와 계약할 때 뚜렷한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1970년생인 그는 만 45세의 노장, UFC 최고령 파이터 댄 헨더슨과 동갑이다. 하지만 글러브를 벗어 놓을 수는 없는 처지였다. 1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마이티 모는 "가족을 책임지려면 로드FC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의 본명은 시알라 모우 실라가(Siala-Mou Siliga)다. 5명의 아이를 낳고, 재혼해 다시 5명의 아이를 낳았다. 첫째는 23살의 존 비스마크 실라가, 막내는 이제 2살인 비에나 팔레모 실라가다. 마이티 모 역시 11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나 대가족 테두리에서 자랐다. 그는 말썽꾸러기였다. 꽤 거칠었다고 한다. 한 달 전 필자와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화를 잘 내고 형제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돌아본 그는 "12살 때인가. 우리 부모님이 자녀들을 위해 정말 고생하신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아버지는 언제나 힘들게 일하셨고 당신의 자녀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며 웃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 "우리 가족들에게 내가 아버지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번 토너먼트에서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가족들도 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할 땐 따스한 부정과 파이터의 비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이티 모는 지난해 10월과 12월 최무배와 가진 두 번의 대결에서 모두 1라운드에 KO승했다. 그의 주먹은 여전히 단단하고 무거웠다. 특기인 오른손 오버 훅은 '부산 중전차'를 멈춰 세울 만큼 강력했다. 레슬러 최무배와 달리, 준결승전에서 만난 명현만은 우리나라 헤비급 입식타격기 단체 타이틀을 4개나 가진 스트라이커였다. 명현만은 "타격전에서 충분히 마이티 모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여 왔다. 최무배 전과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타격에서 잔뼈가 굵은 명현만은 역시 자신의 말대로 마이티 모와 주먹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2라운드 명현만이 먼저 기회를 잡았다. 밀고 들어오던 마이티 모의 안면에 왼손 카운터 훅을 꽂아 넣었다. 띵 하고 충격을 입은 마이티 모는 비틀거렸고,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명현만에게 클린치로 붙었다. 명현만이 클린치에서 벗어나자 마이티 모는 기다렸다는 듯 심판 자오즈롱(조자룡)에게 안면에 출혈이 있다고 어필했다. 자오즈롱은 이때 경기를 중단하고 의사를 케이지 위로 불렀는데, 사실 이것이 마이티 모의 '신의 한 수'였다. 지혈하는 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명현만에겐 야속한 시간이었다.

마이티 모는 1라운드에 이미 왼손 엄지가 부러져 있었다. 그는 경기 후 "1라운드 펀치 공방에서 다친 것 같다. 아팠지만 골절인 줄은 몰랐다. 그라운드 전략으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 레슬링을 배운 그는 3라운드에 적극적으로 테이크다운을 노렸다. 명현만과 타격전으로 가다간 판정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의 노림수대로 됐다. 명현만을 넘어뜨려 그라운드로 데리고 가는 데 성공했다. 손쉽게 가드 패스에 성공하고 곁누르기 자세에서 명현만의 목을 잡아 당겼다. 넥 크랭크였다. 그라운드 기술이 아직은 익숙지 않은 명현만은 순간적인 고통에 그대로 탭을 쳤다. 역전승이었다.

마이티 모는 "명현만의 움직임이 좋았다.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무리하게 펀치 공격을 하다가 다친 것 같다"고 했다.

◆ 최홍만 대 마이티 모 3차전, 역시 멘탈 싸움이다

두 선수는 2007년 K-1 링에서 두 차례 맞붙었다. 4월 1차전에선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에 최홍만이 KO패했다. 5개월 뒤인 같은 해 9월 2차전에선 최홍만이 판정승했다. 상대 전적 1-1이다. 최홍만은 "마이티 모와 두 번 싸워 1승 1패 했다. 이제 결판을 내고 싶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좋은 경기 펼치겠다", 마이티 모는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최홍만은 거리를 살려 카운터펀치를 노릴 것이고 마아티 모는 카를로스 도요타, 아오르꺼러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숙이고 오버 핸드 훅을 날릴 것이다. 사실상 두 선수의 전략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긴장하지 않고 준비한 대로 움직이는가에서 승패가 갈린다. 그래서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마이티 모보단 최홍만이다. 최홍만은 지난해 7월 복귀해 3경기를 치렀는데, 여전히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주저주저하다가 뒤로 물러나는 경향이 있었다. 경기에 빨리 몰입해 반복 연습한 움직임으로 마이티 모를 공략해야 한다.

정승명 코치는 "아오르꺼러의 초반 러시를 대비해 옆으로 이동하며 피하는 움직임을 연습했다. 초반 난타전을 피하려고 했다. 클린치에서 카를로스 도요타 전과 비슷해서 불안했는데 이겨서 다행"이라며 "이번 경기는 정말 정신 차리고 들어갔다. 정신적인 면이 승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경기 집중력이 지난 경기들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역시 멘탈을 바로잡는 게 주효했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것이 정 코치의 생각이다.

정 코치는 "카운터펀치를 조심하면 될 것 같다. 마이티 모의 주먹은 휘두르는 훅이다. 돌아서 나오기 때문에 동작이 크다. 파워는 강하지만 그게 단점"이라며 "마이티 모가 그라운드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대비책은 같이 논의해 봐야 한다"고도 했다.

2005년 최홍만이 K-1으로 전향할 때 "왜 링으로 오르려고 하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경기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면 더 힘이 난다.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분명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관심이 최홍만에게 독이 됐다.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웅크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최홍만은 지난해 복귀하면서 우리나라 격투기 부흥을 이끌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초심을 되찾는 게 먼저다. 부담에서 탈출해야 한다. 2005년 3월 K-1 서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테크노 댄스를 추던 때를 떠올리면 좋겠다. 팬들의 환호를 온몸으로 느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상대하려면,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안 된다. 150kg에 육박하는 아오르꺼러도 한 방에 보낸 것이 최홍만이다. 자신의 괴력을 믿어야 한다.

마이티 모의 왼손 부상으로 두 선수의 대결이 언제 펼쳐질지는 미지수다. 로드FC 공식 닥터인 정병원은 "복귀 가능 시점은 최소 4개월에서 최대 7개월 후로 예상한다"고 했다. 시간이 충분하다. 멘탈을 가다듬어 인생 최고의 명승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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