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빠지는 볼 7개로 조이 보토 털어내기

조회수 2016. 4. 18. 09: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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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뱅이 엄청난 홈런을 치던 날이었다. 모든 포털과 커뮤니티가 그 어마어마한 거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미네소타에서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떨어진 세인트루이스에서도 꽤 주목할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돌부처께서 미국 포교활동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2이닝 막기’를 시전하신 것이다.

비록 팀이 뒤지고 있던(6-8) 상황이었다. 결과도 패전이었다. 하지만 그의 등판은 홈 팀 감독의 비장한 승부수였다. 가장 믿을만한 셋업맨을 투입해 7회와 8회를 지운 뒤, 전세를 바꿔보겠다는 비책이었다.

때문에 당시 상황은 쫄깃하고, 긴박했다. 특히 8회 2루타(ML 첫 피안타)를 맞은 후 실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손바닥 땀샘이 터지는 명장면이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타자인 조이 보토를 상대로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스트라이크를 하나도 쓰지 않는 기발함이 돋보였다. 마치 보이스피싱처럼 볼만 내리 7개를 던져서 최강의 타자를 털어냈다. 치밀함, 신중함, 견고함의 결정체였다.

① 감독의 마운드 미팅

2사 2루였다. 거기서 보토라는 산을 넘는데는 무려 6분 10초의 시간이 걸렸다. 빠를 때는 3, 4분만에 한 이닝을 뚝딱 처리하는 돌부처다. 얼마나 조심스러웠는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보토의 타석이 되자 마이크 매시니 감독이 회의를 소집했다. 마운드 미팅이다. 통역을 데리고 올라가 내야수 전체를 집합시켰다. 투수 교체? 그것도 가능한 선택지다. 보토는 좌타자다. 투구수도 30개에 육박했다. 불펜에 좌완 타일러 라이온스가 대기 중이다.

그런데 파이널 보스가 아닌 ‘셋업 보스’(카디널스 중계 캐스터 댄 맥롤린이 그렇게 불렀다)가 뭔가 얘기를 계속 한다. 아마도 자신이 막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감독도 의견을 수용한다. 단, 1루가 비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으리라. 카디널스는 3회에도 보토를 고의사구로 거른 바 있다.

② 헛스윙, 째려보는 보토

잠시 보토의 관점으로 접근해 보자. 처음 보는 동양인 투수다. 대기 타석에서 관찰해보니 무척 공격적이다. 앞타자 E. 수아레스가 94마일짜리에 (삼진) 당했다. 볼카운트 3-2였는데, 별로 피해가는 성격이 아닌 것 같다.

1루가 비어 있긴 하지만 다음 타자는 브랜든 필립스다. 안타 2개에 3타점을 올렸다. 거기까지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돌아가지 않고 자신과 직접 승부가 들어올 상황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초구는 94마일짜리 빠지는 공이다. 보고만 있었다. 2구째. 가운데로 온다. 힘껏 돌렸지만 툭 떨어지는 체인지업이다. ‘이런, 된장.’ 투수를 봤다. 표정이 없다. 당최 속을 모르겠다. ‘무서운 포커 페이스다. 저런 선수랑 카드 치면 오링은 시간 문제겠군.’ 등골이 서늘하다.

3구째. 또다시 체인지업이다. 배트가 나가지만 중심이 빠지면서 파울이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졌다. 피곤하게 됐다.

③ 투 스트라이크 이후 극도의 신중 모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카운트 1-2). 1루가 비었고, 공 3개의 여유가 있다. 이 정도면 이제 투수가 타자를 데리고 놀 타이밍이다. 하지만 상기하시라. 타석에는 조이 보토다. 섣불리 ‘훅-’ 들어갔다가는 치명적인 카운터 펀치를 허용할 지 모른다.

중계방송 하던 폭스 스포츠의 해설자 리키 호튼이 경고 멘트를 날린다. “조이 보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투 스트라이크 히터입니다. 여전히 조심해야 합니다.” 카디널스 벤치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데릭 릴리퀴스트 투수 코치도 차분하라고 손짓한다.

역시 야디어 몰리나다. 그는 이 때부터 급격히 페이스를 늦춘다. 사인 내는 것도 최대한 복잡하고, 시간을 끈다. 4구, 5구, 6구. 매번 중간에 타임이 걸린다. 구심 게이브 모랄레스가 두 번이나 경기를 정지시켰다. 보토는 연이어 타석을 들락날락.

급기야 몰리나 자신이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올라간다. 뭔가 열심히 투수와 얘기를 주고 받는다. (돌부처의 프리 토킹 실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타자의 인내력은 거의 한계점에 다다른다.

④ 초조한 보토 가벼운 유효타에 당하다

타자는 슬슬 짜증이 난다. 승부를 들어오던가, 아니면 빼던가. 빨리 결론을 내고 싶다. 하지만 상대 배터리는 느긋하다.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5구째는 완전히 휘어져 나가는 체인지업으로 김을 확 빼놓는다.

볼카운트는 2-2. 슬슬 결정구를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투수는 꿈쩍도 않는다. 덤덤한 표정 속에 극도의 치밀함을 숨기고 있다.

6구째(87마일)는 반대로 몸쪽에 바짝 붙인다. 이건 목적구다. 다음 승부구를 효과적으로 구사하기 위한 밑밥이다.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 가장 안쪽에 걸치듯 파고든다. 타자는 간신히 파울로 걷어냈다.

드디어 7구째. 승부구다. 투수는 욕심을 버렸다. KO(삼진)를 시키려는 펀치가 아니다. 가벼운 유효타를 노리며 정확하게 급소를 가격했다. 역시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다가 살짝 떨어지는 체인지업(82마일)이다.

조바심에 흔들리던 보토는 걸려들었다. 직구 타이밍으로 치러 나가다가 허리가 쭉 빠진다. 타격 폼이 흐트러졌다. 스윙은 리듬을 놓쳤다. 공과 배트가 만나기는 했지만 평범한 우익수 플라이였다. 스리 아웃, 공수 교대.

포수는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투수를 맞으며 미트 낀 손을 죽 내민다. 오승환은 ‘니 덕이야’라는 뜻으로 검지 총을 쏴 준다.

사실 약간은 무리였다. 두번째 이닝으로 넘어가면서 투구수도 만만치 않았다(총 36개). 게다가 첫 안타도 허용했다. 8회 1사후였다. 94마일짜리였는데, 통타 당했다. 중견수 옆을 완전히 빠져 나갔다. 엄청난 타구 스피드였다. 돌부처라도 속으로는 휘청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심리적인 타격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후에 더 완벽한 밀당으로 완급 조절 능력을 발휘했다. 다음 타자에게는 강력한 정면 승부로 삼진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바로 모드 전환, 조이 보토에게는 지극히 전략적인 승부를 펼쳤다. 7개가 모두 힘을 비껴가는 배합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은 하나도 없었다. 걸치듯 비슷하거나, 거기서 변화되는 유인구였다. 리그 정상급 타자도 따라다니기 급급할 정도였다.

6경기째 무실점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몰리나가 장착된 돌부처는 갈수록 업그레이드 하는 느낌이다.  

(팁 : 오승환은 좌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를 잘 던지지 않는다. 대신 본인은 투심에 가깝다고 설명하는 스플리터 계열의 구질을 쓴다. 카디널스는 캠프 때부터 이 공을 체인지업이라고 여기고 있다. Pitch F/X 상으로도 투심과 체인지업이 공존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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