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대호 끝내기 홈런은 레그 킥 '순한 맛' 버전이었다

조회수 2016. 4. 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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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이로는 33살, 우리 식으로 하면 35살이다(만 34세). 그 나이에 참, 못 말리는 청춘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주인공 같다. 3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자기랑 꼭 닮은 ‘귀여운’ 딸을 데리고 전세계를 돌며 도장깨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어제(한국시간 14일) <시애틀타임스> 밥 콘도타 기자는 만세를 불렀다. 짜증나는 연장전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어질뻔 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도 잠시,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궁금증 때문이다. ‘저 나이에 루키로 와서 워크오프(walkoff, 끝내기) 홈런을 친 타자가 있을까?’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없었다. 적어도 60년 동안은…. 당연하다. 그 늦은 나이에 루키 소리 듣는 게 쉬운 일인가. 게다가 그런 자격으로 끝내기 홈런까지 칠 확률은 수학적으로 너무나 희박하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자 비로소 한 명이 나타난다. 1950년이었다. 클리블랜드의 루크 이스터라는 선수가 35세의 나이에 그런 놀라움을 줬다.

그의 한 방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주목을 끈다. 말한 것처럼 나이가 그렇고, 현재 팀이 처한 상황 탓에 더 이목을 집중시켰다. 홈 구장 5연패 말이다. 사람 좋은 스캇 서비스 감독이 처음으로 집합을 걸었을 정도 아니었나.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왼발에 걸린 의문에 대한 문제다. 바로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레그 킥에 대한 걱정 ‘빠른 공을 칠 수 있을까’ 

왼발을 들고 치는, 즉 레그 킥에 대한 논란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계속 됐다. 서비스 감독조차도 “처음 그의 스윙을 봤을 때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그런 반응은 미디어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개막 후 팀 성적은 곤두박질 치고, 신통한 타율이 나오지 않자 여기저기서 비판이 터져나왔다. ‘80마일대는 치는 것 같다(첫 홈런이 88마일짜리였다). 그런데 90마일 넘는 공에 반응할 수 있다는 걸 아직 입증하지 못했다’ 같은 식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가 친 홈런은 이런 수근거림을 한 방에 잠재운 것이다. 무려 97마일(155.2㎞)짜리였다. 그것도 요즘 한창 물이 오른 불펜투수 제이크 디크먼을 상대로 뽑아낸 것이었다.

디크먼이 호락호락한 투수냐? 절대 아니다. 그의 9이닝당 홈런 허용률은 고작 0.50개. 참고로 이 부문에서 (1천 이닝 이상) 현역선수 중 최고는 클레이튼 커쇼다. 0.55개, 2위는 아담 웨인라이트로 0.60개다(선발 투수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불펜 투수 중 아롤디스 채프먼의 0.53개 보다도 낮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정타가 나왔다. 빠른 볼을 못 칠 것이라는 타격 폼으로…. 심지어 스트라이크 존 위쪽에 제대로 구사된 97마일짜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시계를 되돌려 보자. 홈런이 나오기 전 이틀 전이다. 그러니까 한국시간으로는 12일이다. 그때가 이대호와 디크먼의 첫 대결이었다. 풀카운트, 9구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결과는 2루쪽 땅볼 아웃. 그러나 꽤 강한 타구였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디크먼은 초구부터 9구까지를 모두 빠른 볼(투심)로 구사했다. 타자의 배트는 계속 밀렸다. 백스톱을 넘어가는 파울이 고작이었다.

텍사스 배터리의 전략은 뻔하다. 레그 킥이 90마일 후반대를 따라올 수는 없다는 신념 탓이었을 것이다. 특히 더 신속한 반응이 요구되는 안쪽 높은 코스가 공략 포인트였다. 9구째 잘못해서 (겨냥보다 낮은) 벨트 높이의 공이 들어가자 타구가 페어 그라운드로 들어갔다.

그리고 40여 시간이 지나서 만난 2라운드가 어제였다. 

10회말 2사후. 주자가 1루에 있었지만 누가 기대나 했겠나. 애덤 린드의 타석이 되자 서비스 감독의 본능적인 좌우놀이가 시작됐다. 대타.

산만한 덩치가 오른쪽 타석에 들어섰다. 이틀전 만났던 투수는 초구를 한복판에 박아 넣었다. 97마일짜리였다. 2구째. 또다시 빠른 볼이다. 95마일(152㎞). 자기들의 공략 포인트인 가운데 높은 코스로 파고 들었다. 타자는 노리고 있던듯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그러나 늦었다. 백스톱 쪽으로 가는 파울볼. 카운트가 0-2로 절박해졌다.

‘덩치’는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곤 타석에서 잠시 벗어나 헬멧을 툭툭 두드렸다.

이대호는 FOX Sports 기자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번 해 본 투수였기 때문에 디크먼의 공에 대해서 파악은 하고 있었다”면서 “초구는 그냥 봤다. 두번째 공에 타이밍을 맞췄다. 그리고 3구째 또 그 공이 올 것이라고 노렸다.”

그러니까 그는 준비하고 있었다. ‘또다시 높은 쪽으로 공격할 것이다.’ 예측은 맞았다. 문제의 3구째. 포수는 사인을 낸 뒤 가슴 높이로 조준점을 만들어줬다. 역시 97마일짜리였다.

미국에서도 화제, MBC Sports+ 캐스터의 샤우팅

텍사스 배터리는 왜 그렇게 단순했냐고? 고집스럽게 빠른 볼만 던졌냐고? 엄밀히 말해서 그 선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하고, 기다린다고 쉽게 칠 수 있는 공은 아니다. 오히려 어줍잖은 슬라이더 보다 힘으로 붙는 게 덜 위험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높은 코스만 유지할 수 있으면 따라가기 어려운 공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 전까지는….

하지만 그들이 감안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 레그 킥의 ‘순한 맛(라이트) 버전’이 있다는 사실이다. 

2구째 파울이 됐을 때 이대호는 갸웃거렸다. 역시 정상적인 레그 킥과 스윙으로는 타구를 페어 그라운드 안으로 집어넣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기름기를 쫙 뺐다. 왼쪽 다리의 높이와 각도를 낮췄다. 배트의 출발 위치도 쉽게 나올 수 있는 앵글로 조정했다. 그리고 최대한 간결하고 부드럽게 스윙을 돌렸다. 상대의 높이 공격에 맞춰, 들어올리는 것 같은 궤적을 만들었다.

결국 3구째 97마일은 포수 미트를 만나지 못했다. 세이프코 필드 위로 까마득히 솟았다. 그리곤 담장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디크먼이 고개를 숙였다. 몇몇 팬들은 소리를 듣자마자 만세를 불렀다. 중계하던 MBC Sports+ 캐스터의 처절하리만큼 간절한 샤우팅은 미국의 각종 커뮤니티에서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다.

(* 강정호의 레그 킥도 처음에 논란이 됐다. 그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레그 킥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자세로 타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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