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 '나'를 버리고 '우리'안으로 들어오면 축구는 더 재밌어진다.
13일 새벽(한국 시간) 진행된 15/16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맨체스터시티와 파리생제르망의 ‘오일 더비’ 최종 승자는 맨체스터시티(맨시티)였다. 경기는 팽팽했지만 후반 31분 터진 케빈 데 브뤼네의 결승골이 역사를 만들었다. 지난주 파리에서 열린 1차전 (2-2 무)에 이어 2차전을 맨시티가 1-0 으로 승리하며 합계 스코어 3-2 로 맨시티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다.
나는 지난 2012년 3월 EPL을 통해 본격적인 축구 해설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맨체스터시티의 경기를 꾸준히 해설했고 최근 두 시즌 맨시티의 UEFA 챔피언스리그의 해설도 종종 맡아왔다. 그동안 맨시티의 경기를 꽤 많이 봤지만 오늘 PSG를 상대한 15/16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는 과거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직접 관전한 다른 경기보다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스승인 영남대 김병수 감독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나’를 버리고 ‘우리’안으로 들어오면 축구는 더 재밌어진다.
‘개인’은 평범하게, ‘팀’은 특별하게.
오늘 맨체스터시티가 바로 그랬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있었지만 오늘 맨시티는 ‘개인’이 아닌 ‘팀’이였다. 2012년부터 직접 해설한 맨시티의 경기 중 가장 견고했으며 강한 힘이 느껴졌다.
# 매치 포인트
맨체스터시티 ‘DF-MF-FW’ 3선의 간격 유지!!!
파리생제르망 ‘3-5-2’ 모 아니면 도!!!
지난 1차전의 키워드는 ‘실수’였다. 양 팀에서 많은 실수가 발생했고 골 장면과 직접적인 연관도 많았다. 2차전을 앞두고 공통적으로 불안요소가 있는 상황에서 맨시티는 지난 1차전과 동일한 선발 라인업을 구성한 반면 PSG는 ‘스리백 카드’ (3-5-2)를 꺼내들었다. 변화없이 틀을 유지한 맨시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수 모든 상황에서 라인간의 간격을 잘 관리하는 것, 즉 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였고 핵심 역할은 이번에도 두 명의 미드필더 페르난지뉴-페르난두 였다.
놀라운 점은 3-5-2로 포진한 PSG의 포메이션이였다. 블랑 감독 체재에서 스리백으로 경기를 시작한 경우는 내 기억에 없었다. 마튀이디와 다비드 루이스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고 베라티가 여전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스리백 카드는 파격적이였다. 1차전 결과로 인해 공수 양면으로 고민이 있던 PSG에게 블랑 감독의 스리백 아이디어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 PSG가 3-5-2를???
이브라히모비치와 카바니가 스리톱이 아닌 투톱으로 함께 출전하는 것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동안 유럽대항전에서 PSG의 고민 중 하나는 강팀을 상대로 이브라히모비치와 카바니의 공존 여부였다. 안타깝게도 두 선수가 앞서 말한 조건에서 선발로 함께 나왔을 때 경기력이 좋았던 경우는 없다.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PSG에서 두 선수의 동시 선발 투입은 공격 시에는 연계와 조합에, 수비 시에는 압박 속도에 문제점을 보였다. 하지만 투톱이라면 모양세가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투톱의 조합이 위력을 뿜기 위해선 투톱 밑에 위치한 디 마리아의 영향력이 필수적이였고 또 디 마리아가 영향력을 뿜어내기 위해선 그 뒤에 있는 모따와 라비오의 중원 장악력이 필요했다. 추가적으로 스리백 시스템의 핵심인 좌우 윙백들의 공수 가담 타이밍도 매우 중요했다. 이 두 가지의 실행 여부에 따라 블랑 감독의 3-5-2가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고 신의 악수가 될 수도 있었다.
# 맨체스터시티는 효율적이였다.
경기 초반 15분의 공 점유율은 PSG 73%-맨시티 27%, 경기 전체 공 점유율은 PSG 62%-맨시티 38% 였다. 하지만 전반전에 PSG가 기록한 슈팅은 이브라히모비치의 프리킥이 유일했다. 두명의 공격수를 배치했지만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 45분 동안 단 한차례의 슈팅도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중원의 라비오와 모따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고 자연스레 디 마리아는 든든한 서포트를 받지 못한 채 공격 작업에 전념하지 못했다. 이는 곧 이브라히모비치-카바니 투톱에게 연결되는 볼 줄기의 차단으로 이어졌다.
중앙에서 전진 패스가 쉽지 않다면 결국 측면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막스웰, 반데르비엘 두 윙백의 공격 가담 타이밍은 풀백과 윙백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부자연스러웠고 쉬운 실수가 반복해서 발생했다.
반면 전반전 중반까지 맨시티의 공 점유율은 낮았지만 적은 인원으로 공격을 전개하여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였다. 데 브뤼네-실바-아구에로는 간결한 터치와 확실한 움직임으로 깔끔한 조합 플레이를 몇 차례 선보였다. 맨시티는 3선의 간격을 잘 유지하며 밸런스를 맞췄고 공 점유율은 부족했지만 실제 경기에서 느껴지는 영향력은 PSG에 밀리지 않았다.
# 맨시티, PSG 스리백의 약점을 공략하다
전반 25분부터 맨시티의 수비 시작 위치가 높아졌다. PSG의 스리백은 오리에-실바-마르퀴뇨스 로 구성되었는데 전반 중반부터 오리에가 미드필드로 연결하는 패스의 질이 좋지 않았다. 전방압박의 목적은 공을 뺏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맨시티의 공격수들은 오리에 쪽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였고 결국 오리에의 실수를 유발했다. 오리에의 패스 미스는 곧바로 페널티킥으로 이어졌다. 아구에로의 실축으로 스코어는 변하지 않았지만 맨시티는 이 장면에서 확실한 힌트를 얻었다.
스리백의 단점은 상대가 맨투맨으로 전방 압박을 시도할 때 세밀한 빌드업이 어렵다는 점이다. 발 밑이 불안한 오리에, 여기에 모따와 라비오 모두 폭 넓게 뛰어다니며 공을 받는 성향의 미드필더가 아니기에 전반 중반 이후 PSG는 1차 빌드업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느꼈다.
전반 44분, 모따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루카스 모우라와 교체되며 PSG는 4-3-3 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가 중원을 책임져야 하는 마르퀴뇨스는 부담감을 갖고 후반전을 시작했다.
# 4-3-3 으로 돌아온 PSG, 변화는 계속 시도하지만 반응은 ‘無’
PSG는 전반 마지막 모따의 부상으로 익숙한 4-3-3 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하지만 후반전 초반에도 1차 빌드업은 여전히 어려웠다.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된 마르퀴뇨스는 수비 시 맨시티의 역습을 차단하는 역할을 잘 해냈지만 모따와 같이 적절한 볼 배급을 통한 공격의 물줄기를 만들진 못했다.
PSG는 후반전 골이 필요했다. 이에 블랑 감독은 미드필더 파스토레를 투입하며 활발한 볼 배급을 기대했다. 파스토레-라비오-디 마리아 로 이루어진 PSG의 중앙 미드필드는 공격 전개 시 장점을 보였지만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성향의 선수가 없기에 그만큼 맨시티의 역습에 너무 쉽게 노출되었다. PSG가 골을 넣기 위해서는 중앙 지역에서 미드필더들이 공을 더 많이 갖고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견고한 맨시티의 중앙 수비 블록을 깨뜨리려면 측면의 활성화도 필요했는데 이 부분에도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
# 2016년 4월 현재, 세계 최고의 2선 공격 유닛은 케빈 데 브뤼네
케빈 데 브뤼네는 오늘 경기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지난 1차전과 같이 2선에서 활발한 서포트 플레이로 중앙과 측면의 확실한 연결 고리가 되었고 덕분에 단조로운 사냐-나바스의 오른쪽 측면이 활성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빠른 수비 전환과 영리한 포지셔닝을 통해 수비적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후반 31분 터진 데 브뤼네의 결승골은 PSG의 허리진이 갖고 있는 불안요소를 정확히 공략한 득점이였다. 수비 포지셔닝에 문제가 있던 PSG의 미드필드 조합은 골 장면에서 역시 그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데 브뤼네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근처에서 자유로웠고 이미 오른발로 첫 터치를 하는 순간 골은 절반 이상 이루어진 상황이였다. 지난 1차전에 이은 연속골, 부상 복귀 이후 4경기에서 3번째 골이였다. 2016년 4월 현재, 세계 최고의 2선 공격 유닛을 뽑으라면 당연히 케빈 데 브뤼네다.
# 블랑보다 한 수 앞선 펠레그리니
3장의 교체 카드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비단 선수교체 뿐 아니라 선발 명단 구성부터 경기 중 스타일 변화까지 고려한다면 오늘 경기의 승장 펠레그리니 감독은 대단히 훌륭했다. 모든 수에서 펠레그리니가 블랑보다 앞서 있었다. PSG는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변화를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미드필드 구성에도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반응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내포했던 불안요소에서 결국 문제가 발생하며 실점했다. 반면 맨시티는 필드 위 11명의 선수가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너무도 잘 해냈다. 맨시티는 90분간 훌륭한 간격 유지를 통해 밸런스를 지켜냈으며 1차전 결과에 걸맞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경기 템포를 조절했다. 선수 전원이 철저하게 경기 전체를 공유했고 적절한 타이밍에 알맞게 교체 투입된 선수들도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양 팀 모두 막강한 자금이 뒷받침 된 후 완성된 첫 번째 세대의 마지막 유럽 대항전이였다. 매번 16강에서 좌절했던 맨시티, 8강에서 무릎 꿇은 PSG였기에 이번 맞대결의 승자는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수 있는 셈이였다. 기회는 동등했지만 차이를 갖고 온 것은 결국 경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