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의 91마일에 헛스윙이 한 뼘이나 차이났다

조회수 2016. 4. 12. 13: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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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였다. <…구라다>가 한 걱정을 늘어놨다. 도대체 저래도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돌부처 때문이다. 돌직구는 어디에 잃어버리고, 주구장창 슬라이더만 던져대니. 영 달라진 스타일이 생소했다.

물론 근심의 진짜 바탕은 볼배합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 공이나 던지면 어떤가. 아웃만 잘 시키면 되지. 하지만 그게 혹시 구위 저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랬는데….

아시다시피, 보시다시피. 그의 ML 데뷔 일주일은 찬란했다.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듯 했다. 세상에 제일 쓸 데 없는 게 오승환 걱정이라더니. 어디 버젓이 내놓을 수 있는 실적은 여러 한국 선수 중 유일하다. 그러니 <…구라다>가 괜한 트집을 잡은 것 같다. 역시나 공부가 한참이나 부족함을 느낀다.

각설하고.

한국, 일본시절 보다 2배나 높아진 탈삼진 비율  

그의 4게임 기록은 대단하다. 3.2이닝 동안 실점이 없다. 안타 1개조차 맞지 않았다. 사사구 4개가 흠일 뿐이다.

탈삼진 부분으로 넘어가면 어마어마 하다. 12개의 아웃 카운트 중에 8개를 ‘K’로 처리했다. 이걸 9이닝 기준으로 환산하면 억소리가 난다. 무려 19.64. 즉, 혼자서 9회까지 완투한다고 치면 20개 가까운 삼진을 뽑아낸다는 얘기다.

이건 뭐 말이 안되는 수치다. 그 좋던 한국이나 일본 시절에도 엄두가 나지 않던 수치다. (9이닝당 삼진 비율 KBO 때 11.02, NPB 때 9.66). 두 배 정도나 좋아진 셈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분명히 믿기지 않는 기록이다.

그의 탈삼진 능력은 갑자기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요인이 작용한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어제(한국시간 11일) 경기의 몇 장면을 떠올려 보자. 첫 승을 올리고 아까운 미제 맥주를 온 몸으로 마셔야 했던 그 게임 말이다.

한복판 직구에 나온 헛스윙 2개 

첫 타자 헥터 올리베라에게 초구가 예술이었다. 90마일(144㎞) 밖에 안되지만 바깥쪽 가장 낮은 코스에 그림 같이 박혔다. 그리고 직구와 슬라이더 2개로 카운트가 2-2로 동등해졌다.

이 순간 타자의 다음 공에 대한 예상은? 아마도 직구에 비중을 뒀을 것이다. 앞서 2개의 슬라이더가 계속 왔다. 설마 3개 연속으로 던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포수 야디어 몰리나는 빠른 볼 사인을 내고 밖으로 빠져 앉았다. 미트를 낮은 쪽 스트라이크 존에 대주며 표적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투수는 정확하게 배달하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역구(逆球)였다. 몸쪽에서 가운데로 몰린 공이었다. 명백한 실투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의외의 현상이 나타났다. 올리베라가 마음껏 돌린 스윙은 빗나갔다. 빗나갈 정도가 아니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공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배트가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공과 배트의 궤적 차이가 한 뼘은 돼 보였다. 그렇게 위력적이었나? 아니다. 불과 91마일(145.6㎞)짜리였다. 이상한 일이다.

다음 타자 타일러 플라워스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초구(91마일-볼) 2구(92마일-스트라이크) 연속 직구였다. 3구째도 빠른 공이었다. 이것 역시 코너워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복판에 몰린 공이었다. 그런데 플라워스의 스윙도 헛돌았다. 올리베라와 비슷했다. 92마일(147.2㎞)짜리였다.

플라워스는 결국 5구째 바깥쪽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에 힘 없는 헛스윙을 하면서 두번째 삼진의 제물이 됐다.

데이터로는 설명이 안되는 현상  

‘한 뼘’이나 차이 나는 빈 스윙은 왜 나왔을까? 변화구도 아닌 직구가 타자를 압도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① 빠르기 ② 로케이션 ③ 의외성 등이다.

그런데 ②와 ③은 이 대목에서 별 설득력이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가운데 몰린 공이었다. 또 대략적으로 직구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그럼 문제는 ① 빠르기였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투구의 빠르기란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다. 시간의 개념인 속도(velocity)와, 감각의 개념인 회전수(RPM)이다. 속도는 91~92마일이었다. 메이저리그 불펜투수의 평균(93.2마일) 아래다.

그것도 아니라면 분당 회전수(RPM)였을까? 돌직구의 트레이드 마크 아닌가. 한창 때는 2,500~2,600을 자랑하던 RPM이었다. 타자 시점에서 보면 마치 떠오르듯 들어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런데 올해 측정된 수치는 2,289회전 밖에 안 나온다. 역시 ML 평균(2,236 회전)에 비해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돌부처의 직구는 아직 평가치가 낮다. 참고로 커쇼의 커브는 구종가치가 16.4다.  fangraphs.com 

혹자는 포수의 능력치를 대입한다. 리그 최고의 기량을 갖춘 야디어 몰리나의 뛰어난 볼배합의 덕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어느 정도 요인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일반화시켜 대입해서는 곤란하다. 선발 웨인라이트가 5실점하며 무너질 때도 포수는 똑같았다. 무엇보다 한 뼘 차이 헛스윙 2개는 몰리나의 요구대로 간 공이 아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리적인 숫자보다 큰 작용  

결국 숫자나 데이터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 첫째는 생소함이다. 시즌 초반이다. 그곳에는 아주 많은 낯선(연구되지 않은) 투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서도 유독 그의 ‘생소함’이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있다. 특별히 독특한 폼 탓이다. 왼발의 멈출듯 하다가 다시 뻗는 동작 말이다.

이곳 중계 방송 해설자들은 그가 나올 때마다 그 ‘머뭇거림(hesitation)’에 대해서 설명하기 바쁘다. “아주 특이하며, 타자가 헷갈리기 쉬운 동작”이라는 게 일치된 견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돌부처에게는 미국이 천국이다. 일본처럼 몇 안되는 팀이 1년 내내 맞붙어 어쩔 수 없이 현미경 야구가 되는 구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NPB 평균자책점(첫해 1.76, 둘째해 2.73)에 큰 변화가 생겼던 요인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번째. 굳이 이게 더 결정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의 대찬 당돌함이다. 늘 끝판을 책임지면서 생긴 직업의식 같은 것이리라. 맞을 때 맞더라도 승부를 피하지 않는 본능이다.

앞뒤 재지 않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는 강인함을 타고 났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게 오히려 어느 물리적인 숫자보다 타자를 위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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