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마니아썰]여자골프도 바람에 꽃잎 날리듯 훅 간다

김세영 기자 2016. 4. 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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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PGA 투어는 현재 인기다. 하지만 그 인기란 봄바람에 꽃잎이 우수수 날리듯 한 순간 날아갈 수 있다. 사진편집=박태성 기자

남녘에서 시작된 꽃소식이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 순백의 또는 연분홍 빛깔의 고운 벚꽃은 한순간 꽃잎을 열어젖힌다. 팝콘 터지는 듯하다. 눈은 황홀경에 빠진다. 목련은 또 어떠한가. 한낮의 목련보다 한밤 가로등 불빛에 은근히 빛나는 목련이 더욱 매력적이다. 청순한 듯 농염하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나뭇가지도 하루가 다르게 연록이 생생해 진다. 봄은 이렇듯 생기 넘친다. 생명이 꿈틀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계절로 따지면 봄이다. 그냥 봄이 아니라 꽃이 만개한 봄이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다. 총 33개 대회가 열린다. 총상금은 212억원이다. 지난해보다 4개 대회가 늘었고, 총상금은 27억원이 증액됐다.

KLPGA는 1978년 남자 골퍼들의 모임인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한 부서로 출발했다. 단칸방 신세였던 셈이다. 분가(分家)를 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1988년 그해 총 대회 수는 8개였다. 연간 총상금은 8840만원에 불과했다. 대회 당 평균 총상금은 1055만원으로 초라했다.

여자 골프는 그러나 꾸준히 스타가 나오고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을 거듭해 왔고, 올해 만개했다. KLPGA 투어가 배출한 박세리, 김미현, 신지애, 전인지, 김효주, 최나연 등은 해외에 나가 '코리아'를 알렸다.

KLPGA 투어는 올 시즌 이미 베트남과 중국에서 대회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선수가 회원 선발전에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KLPGA 투어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남자 골프는 죽을 쑤고 있다. 대회 수가 여자의 3분의 1 수준이고, 총상금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남자 프로 골퍼들은 "창피하다"고 말한다. 당장 생계를 위해 해외를 떠돌아야 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투어 프로의 자존심을 버리고 레슨 또는 '투 잡'을 해야 한다.

남자 골프도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 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다 회장 자리를 놓고 내홍에 휩싸였다. 협회장과 임원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꼴사나움에 스폰서와 팬들은 떠났고, 그들은 고스란히 여자 골프로 몰려갔다.

지난해 새로운 회장을 뽑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기업인 출신 회장 후보는 입후보 직후 단 며칠 만에 포기했다. 사퇴의 변은 그렇지 않았지만 실상은 '내 돈 써서 남자 골프 좀 도와주려고 했더니 이게 뭐지? 니들 싸움에 내가 왜 끼어들어야 해. 더러워서 나 안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표면적으로는 단 며칠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물밑에선 수 개 월에 걸친 암투가 있었다. 행태를 보면 정치인 뺨친다.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내며 정신을 차렸나 했더니 역시나 아니었다. 계파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선배들 눈치에 숨죽이고 있던 젊은 선수들이 최근 혁명을 일으켜 성공했다. 지난 주 치러진 선수 회장 선거에서다. 2명이 입후보한 선거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던 선배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공개 거수로 회장을 뽑으려는 꼼수를 부리자 "비밀 투표를 하자"고 반발했고,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진정한' 회장으로 앉혔다.

여자 골프도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구자용 회장이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달 떠났지만 새로운 회장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현재 경기위원장도 없다. 대외적으로는 알리기 싫었는지, 아니면 게으른 탓인지 홈페이지 조직도에는 여전히 구자용 전 회장과 정창기 전 경기위원장의 이름이 그대로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쑥덕임이 들린다. 스폰서들은 KLPGA 투어가 인기를 조금 얻자 고자세가 됐다며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KLPGA 투어는 7일부터 제주에서 열리는 롯데마트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2016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잔치여야 할 국내 개막전에 수장도 없고, 경기위원장도 없다. 선장도 사라지고, 1등 항해사도 배에서 내린 꼴이다.

이번 국내 개막전 취재를 위해 제주에 내려온 7일 아침. 대회장으로 올라오는 길에 보니 전날까지도 탐스러웠던 벚꽃이 밤새 몰아친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다. 여자 골프도 저런 신세가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든다. 봄날 헛생각이었으면 한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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