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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박병호의 첫 득점, 김현수라면 안잡았을 지도

조회수 2016. 4. 6. 08: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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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팠다. 어제(한국시간 5일) 볼티모어 개막식 말이다. 김현수가 소개될 때 관중석에서 들렸던 야유. 누군가 SNS에 그렇게 올렸다. 그건 ‘우~’ 하는 게 아니라 ‘수(Soooo)~’를 외치는 소리였다고. 애잔하다. 하지만 현명하다. 그렇게라도 믿고 넘기고 싶다.

그 경기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그를 밀어낸 경쟁자 조이 리카드였다. 개막식 때부터 트럼보 못지 않은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게다가 잘했다. 안타 2개를 쳤다. 패기 넘친 베이스 러닝으로 단타를 2루타로 만들었다. 좌익수 자리에서도 광대역급으로 서비스했다. 경기 후 (미국) 기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도 그의 라커 앞이었다. 개막전 최고 선수를 꼽는 팬 설문조사에서도 단연 1위였다. 4안타(트럼보), 끝내기 안타(위터스)도 루키의 인기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그의 플레이 중에 의문이 남는 부분이 하나 있다. 7회 박병호에게 홈을 허락한 플라이볼이다. 그건 과연 잡아야 하는 공인가?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박병호가 파울플라이 때 홈으로 뛰어들고 있다. 미국 진출 후 첫 득점의 순간이다. mlb.tv 화면

허벅지 내주고 얻은 박병호의 첫 득점  

중반까지 꼼짝 못하던 원정 팀은 7회가 돼서야 비로소 기회를 잡았다. 1사 후 로사리오가 리카드 쪽으로 2루타를 날렸다. 그리고 우리의 박병호가 왼쪽 허벅지를 내주고 찬스를 넓혔다. 이어 에스코바가 트럼보(우익수) 쪽으로 또 한 방을 날렸다. 2-1로 한 점차가 됐다. 게다가 여전히 1사 2, 3루. 캠든야즈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쇼월터는 투수 교체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위기를 넘겨받은 것은 브래드 브래치.

타석의 커트 스즈키는 4구째 몸쪽 공을 높이 쳐 올렸다. 타구는 좌측 파울 지역으로 날았다. 발 빠른 리카드는 역시나 넓은 수비폭을 자랑하며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공을 아슬아슬하게 건져냈다. 이 사이 3루에 있던 박병호는 충분히 홈을 밟을 수 있었다. 2-2로 게임 리셋.

이 부분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슈퍼 캐치였다. 공을 잡은 것 자체는 두 말할 나위 없는 호수비였다. ▶그 먼 거리를 달려가서 ▶관중의 방해를 무릅쓰고 ▶펜스와 충돌 위험을 감수하면서 ▶매우 불편한 자세로도 임수를 수행했다.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본 것인가  

그 플레이가 나온 뒤 그라운드의 분위기는 무척 묘했다. 홈 팬들은 모두 일어나 좌익수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왜 아니겠나. 그렇게 어려운 타구를 기가 막히게 잡았는데. 

그런데 정작 주인공 리카드는 야릇한 표정이다. 자꾸 벤치쪽을 쳐다보며 뭔가 눈치를 보는듯 하다.

 덕아웃 안에서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재빨리 투수에게 사인을 준다. 어필 플레이를 하기 위해 3루수에게 공을 던지라는 신호다. 즉 박병호가 먼저 출발했을 지 모르니, 일단 절차를 밟으라는 조치다. 물론 리터치로 점수를 줄 경우 흔히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날은 얼토당토 않았다. 너무나 여유 있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홈에 공을 던져보지도 못할 정도로) 그건 아쉬움이 클 때 나오는 리액션이다. 

쇼월터는 전화기를 집어든다. 화면을 검토하고 있던 분석팀의 답변을 듣더니, 이내 포기한다. 그리고는 뭔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짓는다. 적어도 <…구라다>의 눈에는 그렇게 읽혔다.

반대쪽은 어떤가. 원정 팀 덕아웃 말이다. 축제 분위기다. 당연하다. 계속 끌려가다가 어렵사리 동점을 만들었으니 왜 안그렇겠나. 스즈키는 하이파이브를 20개 쯤 하는 것 같다.

메이저리그 첫 득점을 올린 박병호도 희색 만면이다. 첫 안타는 공을 챙기던데, 첫 득점은 홈 플레이트를 뽑아가야 하나?

아리송하다. 원정 팀도 기쁘고, 홈 팬들도 박수친다. 도대체 누구한테 잘 된 일인가.

리카드, 쇼월터에게 “잡는 게 맞아요?”  

어려운 순간이다. 하지만 굳이 <…구라다>에게 부재자 투표를 하라면 ‘안 잡는 게 맞다’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조금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안 잡는 게 더 고급야구’라는 뜻이다.

당시 상황을 보자. 7회였다. 1사 2, 3루. 상대는 가장 약한 8번 타자였다. 작년 타율이 .240, 이날도 무안타로 신통치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 볼카운트였다. 1-2로 수비 쪽에 유리했다. 브래치의 96~97마일 패스트볼에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리카드가 굳이 어렵게 잡지 않고 흘려 버려도 큰 일 없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투수가 충분히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도였다.

다음 타자? 9번 벅스톤은 이날 심하게 편식하고 있었다. 내리 삼진만 먹었다. 3타수 3K. 게다가 8, 9회로 넘어갈수록 볼티모어가 자랑하는 막강 불펜진 버티고 있지 않은가? 

현지 중계팀도 갈피를 못잡는다. 처음에는 관중들이 박수치고, 환호하자 덩달아 기분을 낸다. “대단한 집중력이네요. (느린 화면을 재생시키면서) 보세요. 관중의 손에 공이 스치는 데도, 놓치지 않았어요. 아주 좋은 플레이가 만들어졌습니다. 루키(리카드)가 해냈네요.” (볼티모어측 방송 BAL-MASN)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니 문득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다. “그런데 잡아야 하는 거 맞죠?” 그 분위기에서 누가 아니라고 하겠나. “예. 잡아야 해요. (아웃을) 만들어야죠.” 다음 설명은 없다. 논리적인 제시도 없다. 얼른 다음 얘기로 넘어간다.

무엇보다 리카드 본인이 그 파울 플라이에 대해 끝까지 긴가민가 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 감독님한테 물어봤어요. 제가 제대로 한 거 맞냐고. 그랬더니 감독님이 안심하래요. 그렇게 아웃만 잘 잡으면 된다고.” (After the game, Rickard asked Showalter if that was the right play, and the manager reassured him that you take the out every time. - 볼티모어 선)

AL 동부지구는 춥고, 혹독한 곳이다 

쇼월터의 대답에는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굳이 신인 기죽일 일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만약 홈 팀이 졌다고 가정해보자. 끝내기 승리가 아니고, 뼈아픈 역전패로 개막전을 내줬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너그럽고, 여유 있는 분위기였겠는가.

물론 리카드의 수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게 옳았다는 주장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적극적이라는 이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굳이 끄집어내서 왈가왈부 하는 건 물론 김현수 때문이다. 경쟁자를 비판하면서 ‘우리 현수라면 안 그랬을텐데…’. 그런 따위로 위안거리나 삼자고? 설마 우리 수준이 그렇게 얄팍할 리 없지 않은가.

<…구라다>는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을 이렇게 제시한다. ① 루키 외야수가 논란이 될만한 플레이를 했다. ② 아주 중요한 승부처에서 나왔다. ③ 그러나 아무도 그걸 이슈화 하지 않는다. ④ 오히려 그는 ‘Player of the Game’으로 선정됐다.

우리 사는 것도 그렇다. 똑같은 일을 해도, 누구는 좋게 봐주고, 누구는 삐딱한 시선을 받는다.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다.

덕아웃에서도 그렇다. 리카드는 이제 주류가 된 것 같다. 그는 승리에 참여하고, 그 공을 나눠갖는다. 웬만한 비판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전 장치도 가동된다. 반대로 비주류는 그렇지 못하다.

아쉽게도 김현수는 아직 주류가 아니다. 게다가 그가 머무는 AL 동부지구는 그 편차가 훨씬 크다. 개막식에서 봤듯이 기립박수 아니면 야유다. 비주류에게는 춥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혹독한 곳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견뎌야 한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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