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무실점을 위해선 엔진이 활발해져야 한다

조회수 2016. 4. 4. 17: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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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더는 축구의 엔진과 같다.

봄이 왔음을 느낀다. 전주는 이제 막 벚꽃이 폈다. 거리의 보라색 들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예보된 소나기만 지나가면 모두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주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국의 봄을 알리는 제주의 유채꽃이 축구장선 쉽게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는 이번 시즌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천전(3-1 승)과 광주전(1-0패)에 이어 전북전(2-1패)서 또다시 실점했다. 문제는 하나, 중원의 불안정함이다. 매 경기 뒤늦은 수비가담과 판단실수로 상대에 위협상황을 내주었다. 이에 제주는 권순형의 파트너로, 이창민을 올해 첫 선발 출전시켰다.

더블 볼란테 시스템, 대인방어와 콤비네이션 수비를 섞다

올 시즌 제주는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중원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시스템인 더블 볼란테로 이루어졌다. 이중 권순형이 보통 아래로 내려가 빌드업에 관여한다. 하지만 서로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위치에 따라 한 선수는 아래로 처지고 다른 한 선수는 전진해 공격에 가담한다. 수비 시에도 두 선수는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가능한 전방에서 공을 끊어내려 하며, 상대 중앙 미드필더 이재성과 루이스에게 대인방어처럼 붙어 압박했다. 하지만 제주는 큰 틀에서 콤비네이션 수비를 펼쳤다. 콤비네이션 수비란, 한 선수는 지역을 수비하고 다른 한 선수는 상대 선수를 대인 방어하는 방식을 말한다.

더블 볼란테의 수비미숙, 영리하지 못했다.

이날 제주는 전북 수비수를 향한 공격수의 1차 압박을 시작으로, 공을 받으러 내려가는 전북 선수들을 향해 중앙 미드필더가 대인방어로 따라붙으며 2차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전방에서부터 압박이 안 되어 상대가 높이 올라오거나 측면으로 빌드업을 전개할 경우엔 콤비네이션 수비를 펼쳤다. 공과 거리가 먼 반대편 중앙 미드필더는 중앙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루이스 또는 이재성을 마크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수비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두 수비법의 혼용은 혼란을 일으켰다. 중앙 미드필더 간격이 벌어지고 정작 지역방어를 해야 했을 때 대인방어가 이루어졌다. 그만큼 많이 뛰고 빠르게 상황을 인지해야 했다. 

또, 대인방어는 개인의 확실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창민은 직접 공을 빼앗고 부딪히는 성향의 선수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중원은 수비력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대인방어와 콤비네이션 수비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되려 한 선수가 상대를 마크하고자 전진했을 때 발생하는 뒷공간을 통해 역습을 허용했다.

전반 1분 52초.

제주 왼쪽 스로인 수비 상황. 이창민이 측면으로 빠지며 위험지역을 내줬다.

위 영상은 제주의 왼쪽 스로인 수비 장면이다. 현재 권순형은 왼쪽으로 이동해 있고 중앙에 있던 이창민이 측면으로 빠지는 이재성을 따라간다. 이미 제주 왼쪽 중앙 수비수 이광선이 이재성을 마크했고 최철순이 무리해서 멀리 스로인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사 공이 투입되더라도 위험지역을 벗어나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왼쪽 수비수 정운이 가담해 수적우위를 가져감과 동시에 외곽으로 몰아 쉽게 수비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창민은 중앙을 지키고 이동국을 막아야 했다. 최철순은 고무열의 리턴패스를 받아 곧바로 위험지역에 있는 이동국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동국은 아주 편하게 공을 받아 루이스에게 내준 뒤, 한 번의 터치로 득점할 수 있는 위치로 달려들어 갔다. 비록 이재성의 슈팅은 막혔지만, 제주는 아무런 방해도 하지 못했다.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이동국, 이재성 모두 직접 득점할 수 있었던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전반 9분 34초

전북 빌드업 상황. 최철순의 이동국을 향한 얼리 크로스 한 방이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다.

전북의 빌드업 장면이다. 권순형이 공을 받으러 내려간 루이스를 마크하고 이창민은 이재성을 확인하며 중원을 지키고 있다. 전북 수비진은 후방에서부터 차근히 짧은 패스로 공격을 풀어나가길 원하나 마땅한 패스길이 없자 측면으로 공을 돌린다. 제주 공격수 김현과 정영총은 기회를 엿보다 공이 최철순에게 향하자 다가가 패스 길목을 제한한다.

이때 이창민을 지켜보라. 최철순이 이동국을 향해 길게 공을 보내리라 충분히 예측 가능했으나, 이창민은 이재성이 움직이자 그를 따라간다. 덕분에 타겟 플레이에 능한 이동국은 수비수와 1v1 상황을 맞이했다. 이창민은 공과 더 가깝게 위치해 떨어지는 공을 대비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분명 최철순의 발에서 공이 떠나간 이후 꽤 긴 체공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공격수와 수비수가 1v1 상황이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권순형과 이창민은 영상 속 빨간 점이 찍혀있는 공간으로 더욱 빠르게 내려가야 했다. 이동국이 공을 소유하고도 제주의 더블 볼란테는 빠르게 수비 가담하지 않았다. 결국 제주는 수비진과 미드필드진 사이의 위험지역인 바이탈 에어리어(Vital Area)를 노출했다. 그 덕에 레오나르도는 공을 안쪽으로 치고 위협적인 슈팅을 할 수 있었다.

이 상황도 마찬가지로, 전북은 득점할 수 있는 다양한 공격패턴이 가능했다. 레오나르도가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로 파고들 공간이 있었고 이재성의 더욱 적극적인 대각선 침투가 있었다면, 스루패스에 이은 크로스로 완벽한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이동국에게 다시 내주거나 크로스를 시도할 수도 있었다.

전반 13분 43초

전북 레오나르도 득점 장면. 제주는 한순간 바이탈 에어리어를 노출하며 수적열세에 처했다.

실점장면이다. 최철순의 공을 향한 집념이 기회를 만들었다. 한순간 제주는 5v4 수적 열세에 처했다. 고무열이 안쪽으로 공을 몰고 오자 중원을 지키던 이창민이 다가간다. 선수로선 루이스쪽으로 공이 가지 못하도록 막으며 공을 투입하지 못하도록 다가가 지연해야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판단이었다. 고무열과 이동국은 쉽게 패스를 주고받아 수비가 없는 반대편으로 공격을 전환했고 레오나르도는 가볍게 득점에 성공했다.

이창민은 고무열에게 달려들 것이 아니라 중앙을 지키며 이동국과 루이스가 공을 잡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다. 공 주위로 중앙 수비수가 공격수를 마크할 수 있었던 데 비해, 반대편엔 3명의 공격수가 있었고 오른쪽 수비수는 이 모두를 대비했어야 했다.

제주의 이러한 수비장면은 자주 나타났다. 콤비네이션 수비의 단점(▲ 선수들이 쉽게 혼란에 빠진다. ▲ 수비 시 부적절한 위치 ▲ 지역커버를 하는 공간으로 동료가 마크하고 있던 선수가 들어왔을 때 공간을 내준다.)과 대인방어의 단점(▲ 다른 수비수를 돕기 어렵다. ▲ 수비지역서 공간이 발생할 수 있다.) 모두가 여실히 드러났다. 단순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단 선수들이 예측하고 판단하여 빠르게 움직여주지 못했다.

또, 공교롭게도 모두 전북의 측면 공격상황서 벌어졌다. 느리고 소극적인 제주 미드필더의 수비가담 문제가 가장 잘 나타난 상황이었다. 이창민은 정작 중원을 지켜야 할 때, 상대를 마크하고자 측면으로 빠져 위험지역을 내주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후반 57분 45초

전북 권순태 골키퍼의 롱킥 상황. 제주 더블 볼란테의 늦은 수비가담이 실점위기로 이어졌다. 

위 장면처럼 권순형과 이창민은 상대 공격수 3명과 수비진 4명이 맞붙는 상황에서도 빠르게 수비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창민은 권순형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루이스에게 달려들어 수적우세를 만들려 했다. 이로 인해 이창민이 정작 맡아야 할 고무열은 쉽게 패스를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권순형이 이창민의 빈자리를 메우지 않았다.

다행히 정운이 예측하고 움직여 고무열의 슈팅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앙에 있어야 할 장신 수비수 이광선이 이동국을 따라 측면으로 빠졌고 공 반대편은 수적열세에 처했다. 게다가 권순형과 김호남은 이재성의 침투와 혹시 모를 레오나르도에게의 패스투입 가능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같은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서의 수비 상황에선, 수비수들이 지역방어를 할 것이 아니라 대인방어를 하여 상대를 엄격하게 막아야 했다. 그러나 무려 7명의 수비수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수비를 하지 못하고 슈팅을 허용했다.

더블 볼란테의 수비 문제점, 공격서도 마찬가지

더블 볼란테의 수비 문제점은 공격 상황에서도 나타났다. 이날 제주 공격진은 주로 중앙에 밀집했다. 측면엔 정운이 높게 올라가 거의 공격수처럼 포진했다. 이처럼 측면에서 빠르게 공을 운반해 전북의 약점인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를 공략하려 했다.

하지만 느린 패스속도와 공을 받으려는 움직임의 부재 및 판단 실수로 중앙 미드필더의 공격전개 또한 수비에서처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전반 2분 33초

이창민의 롱패스. 앞으로 치고 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성급한 패스로 좋은 공격기회를 무산시켰다.

이창민의 성급한 롱패스가 나온 장면이다. 정영총이 재치있게 넘겨준 공을 받아 앞으로 달려갈 충분한 공간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오른쪽 수비수까지 전진하려 했기에, 흐트러진 전북 수비진을 상대로 약점을 제대로 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르게 전달하며 오히려 전북이 수적우위인 상태에서 무리한 경합패스가 전달되었다.

전반 8분 45초

제주 김호준 골키퍼의 짧은 빌드업 상황. 제주의 플레이는 느리고 안일했다. 

골키퍼의 짧은 빌드업이 느리고 안일하게 시작됐다. 골키퍼를 압박하려던 이동국은 쉽게 다음 패스를 예측하고 이광선을 압박할 수 있었다. 이때 권순형과 이창민의 공을 받으려는 활발한 움직임이 부족했다. 이광선의 패스는 예상 가능했고 상대의 압박에 쉽게 소유권을 잃었다.

반면, 전북의 루이스와 이재성은 마크맨(권순형-이창민)에게서 벗어나 이들보다 공과 가깝게 위치했다. 고무열의 패스가 부정확했음에도 공을 차지하고 공격이 가능한 위치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권순형과 이창민은 서로 겹치며 자칫 슈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협적인 패스를 내줬다.

결국, 이날 이창민의 선발 기용은 기대만큼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북전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며 점차 출전시간을 늘려간다면, 좋은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파트너 권순형 또한 느린 공수전환 속도만 보완하면 완벽한 선수다.

성실한 플레이로 제주 감독 재임 시절부터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팀의 베테랑이다.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빠른 공수전환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제주의 목표인 ACL 진출은 물론이거니와 미숙했던 제주의 중원에도 봄날이 찾아올 것이다.


분석 = 박경훈, 전주대 축구학과 경기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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