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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추신수의 직언, 김현수 사태의 프레임을 바꿨다

조회수 2016. 4. 4. 11: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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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이었다. 그가 비시즌 휴식기를 맞아 모처럼 한국에 들어갔다. 머무는 동안 한 언론 매체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혔다. 꽤 유력한 미디어였다. 그곳에서도 아주 고위층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뭐, 스타급들에게는 간혹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고위층’ 분의 말씀이 조금 진도를 뺀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와중이었다. 그와 류현진의 인기도를 비교하기 시작하신 거다. 딴에는 ‘사람들의 관심은 차이가 많은데, 우리는 그래도 차별 두지 않는다. 골고루 (중요도를) 잘 안배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면전에서 듣는 스타는 기분이 상할 얘기다. 그래도 자리가 자리 아닌가. 웬만해서는 내색하기 어렵다. 나이도 한참 위 일테고, 사회적인 지위도 그렇고.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자존심 상하는 거 대충 넘어가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감정 표현을 했나 보다. 언성이 높아지고, 붉으락푸르락 했던 것 같다. 배석한 사람들이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오해는 마시라. 물론 그와 류현진은 가까운 선후배 사이다.)

작심 발언을 쏟아내다  

결국 김현수가 개막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한 주 동안 이 문제는 아주 뜨거웠다. 늘 실검 순위에 오르내렸다. ‘벅 쇼월터’ ‘댄 듀켓’ ‘노포크’ ‘윤석민’ ‘정대현’ ‘U턴’ 같은 연관 검색어도 덩달아 달궈졌다.

처음에는 자책이 컸다. ‘그러길래 조금만 더 잘하지’ ‘23타수 무안타가 뭐야’ ‘또 내야땅볼이야?’ ‘수비는 또 왜 저런대?’ 등등. 반면에 날아다니는 경쟁자들이 마냥 부러웠다.

구단측의 얘기를 전하는 현지 언론의 보도는 때로 잔인할 정도였다. 또 그걸 인용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매체들도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결국 갈 길은 뻔하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땐 그런 줄만 알았다. ‘감히 어떻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구단인데….’

<…구라다>는 이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거야 뭐, 하는 일이 그거니까. 그러던 중 아주 흥미로운 과정을 발견했다. 바로 ‘직언’ 추신수의 활약이다.

한국시간으로 3월 30일 오후였다. 그는 네이버 스포츠에 연재하는 <추신수 MLB일기>를 통해 작심한 발언을 쏟아냈다. ‘볼티모어는 지금 페어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글에서 오리올스 구단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제대로 기회조차 주지 않고, 마이너리그 강등에 대해 일방적인 동의를 강요한다는 내용이었다. 와중에 윤석민과 팀 동료였던 요바니 가야르도의 사례도 언급했다. 아무리 구단 운영이 냉정한 비즈니스라고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사이다 + 콜라를 페트병 채로 원샷한 것 같은 시원함과 통렬함을 담았다.

직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 이튿날인 3월 31일에는 MK스포츠와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볼티모어 구단이 김현수를 홀대하고 있다”며 “자존심이 상한다”고 격하게 감정을 이입시켰다.

부글거리던 여론에 기폭제로 작용하다  

이때부터였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기폭제가 됐다. 안에서 부글거리기만 하던 여론이 폭발했다. 각종 매체에서 볼티모어 구단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현수에 대한 동정과 적극적인 지지 여론이 확산됐다. 분노는 SNS를 타고 퍼지며 거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때마침 강력한 지원군도 나타났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MLBPA는 SBS의 김현수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김현수의 에이전트와 함께 계약 사항이 준수되고, 선수의 권익이 보호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이메일로 답변했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듯 했다. ESPN, FOX Sports 같은 곳에서 급관심을 나타냈다. 오리올스 캠프의 가장 골치 아픈 일이라며 이슈화 하고 있었다. 쇼월터 감독은 “그 문제는 이제 나한테 묻지 마라”면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여론은 김현수의 편이 됐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이후 상황은 아시다시피. 댄 듀켓 단장과 오리올스 구단의 꼼수는 통렬한 역습에 응징 당했다. 결국 그들은 뜻을 굽혀야 했다. 이미 욕은 욕대로 먹고, 모양도 빠질대로 빠졌다. 그들은 25인 개막 로스터를 발표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팀 구성상 좌타자가 필요하다. 김현수가 캠프와는 다른 활약을 해주길 기대한다.” 지극히 입에 발린 외교적 멘트다.

남의 팀 얘기, 금기시 됐지만

물론 ‘김현수 사태’는 아직 해결된 게 아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오히려 더 힘든 가시밭 길이 남아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비참해지지는 않았다. 굴욕적이지는 않았다. 그건 대중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뜨거운 지지가 버텨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의 목소리가 큰 역할로 작용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현역 선수가 남의 팀 얘기를 하는 건 금기시 돼 있다. 그것도 아주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한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괜한 구설에 올라 골치 아플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시즌 개막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말이다.

그를 대하는 기자들 중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예의 직설적인 스타일 때문이다. 싫으면 싫은 티 금새 드러내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야 하는 성격 탓이리라. 물론 그런 걸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으면 (이번 김현수 사태에서) 여론은 여전히 변죽만 울리고 있을 지 모른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주변에서 빙빙 돌다가 말았을 지 모른다.

<추신수 MLB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전 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걸 반대합니다. 다른 팀 선수이고, 제가 여기서 뭐라고 한들, 현실적으로 반영되기 어렵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다른 팀도 아닌 볼티모어라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소름 끼치도록 직설적이다. 그리고 강렬하다. 그래서 그렇게 큰 공감이 가는 지 모르겠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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