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대호의 겐또(見當) 안타, 거기에 숨겨진 내공

조회수 2016. 4. 1. 08: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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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양해와 이해를 구한다. 죄송한 마음이 크다. 듣기 불편한 일본말이다. 그럼에도 의미 전달을 위해서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라운드에서 쓰는 말로 전달하면 조금 더 현장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탓이다.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

겐또. 왠지 모르겠다. 경상도 사투리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분명한 일본어다. 한자로는 ‘見當(けんとう)’라고 쓴다. ‘어떤 일을 예상하거나 고려함’ 정도로 풀이된다. 우리 말로는 어림, 예상, 짐작 등등과 비슷한 의미다. 하지만 딱 떨어지게 100%로 대치될 말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야구장에서 쓰일 때는 더 그렇다.

로스터 확정 뒤 타율은 땅 속으로

그를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야구도 그렇다. 완급 조절, 밀당을 잘해야 좋은 소리 듣는다.

캠프 초반만해도 온갖 악조건 속이었다. 불리한 계약 탓이다. 초청 선수 정도에게 누가 충분한 기회를 주겠느냐는 걱정에서 시작했다. 꾸준히 내보내줘도 쉽지 않은 판국이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씩 타석에 세워주면 공이나 제대로 보이겠냐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개막전을 덕아웃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멀리 플로리다에 있는 그의 후배 한 명에게는 참 안 된 일이지만.)

막상 25인 로스터에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는 오히려 시들해졌다. 4타수 1안타(28일), 2타수 무안타(29일). 30일에는 9회 무사 1,2루에 대타로 나와 시원하게 병살타로 퇴근 본능을 발휘했다.

사흘 동안 합해서 7타수 1안타. 타율(.234)은 죄다 까먹었다. 게다가 선발 1루수로 출전한 어제(31일)는 1회에 실책까지 저질렀다. 타석에서는 유격수 실책 - 삼진 - 우익수 뜬공으로 번번이 허탕이었다. 타율이 땅을 뚫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게 마지막 9회 타석이었다. 자칫하면 빈 손으로 집에 갈 뻔한 상황에서 건진 알토란 같은 안타 1개. 그 속에는 상대 배터리의 볼배합과 경기의 흐름을 읽는 공력이 포함돼 있었다. 바로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초구 바깥쪽 스트라이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 멀어 보이기는 했지만, 잡아줘도 큰 문제 없는 코스였다. mlb.tv 화면

무너진 밸런스에 어떻게 그런 타이밍이 나왔나 

스코어는 3-7, 1사 후였다(주자 없음). 마이너리그 경력의 우완 투수 조쉬 마틴이 던진 초구는 92마일짜리 바깥쪽이었다. 구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이때 그가 특별한 퍼포먼스를 한다. 공이 들어온 쪽을 들여다 보면서 방망이를 한번 ‘휙’ 대보는 것이다. ‘우와, 저리 먼 데로 간 게 들어갔다꼬?’ 하는 동작이었다. 원래 심판한테 기죽지 않기로 유명한 그 아닌가. 일본에서도 그러다가 퇴장도 한 번 먹었고….

파드레스가 한창 키우는 (작년 47게임) 포수 오스틴 헷지스(23)가 그 장면을 놓쳤을 리 없다. 이상한 짓을 하는 타자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2구째 사인을 냈다. 비슷한 코스인데, 이번에는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였다. 배트가 끌려 나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볼카운트 1-1.

이윽고 3구째는 몸쪽 슬라이더였다. 타자는 직구 타이밍으로 나가다가, 순간적으로 반박자를 끊어 변화구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허공에 칼춤을 추며 볼카운트 1-2.

결정적으로 불리해졌다. 반대로 투/포수는 공략할 수 있는 옵션이 엄청 다양해졌다. 반면 타자는 뭔가 타이밍이 안 맞는듯, 타석에서 연신 폼을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4구째,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무려 93마일짜리 가장 빠른 공이 왔다. 그런데 타자의 반응이 놀랍도록 정확했다. 좌익수 앞으로 가는 총알같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였다.

도대체 뭘까? 어떻게 그런 타격이 나왔을까? 물론 공이 가운데 쪽으로 몰리긴 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컨디션을 봤을 때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스피드가 아니었다. 게다가 직전에 한 헛스윙을 보면 완전히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 타구는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안타 친 타석의 재구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타자들은 다음 공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하고 대처한다. 게스 히팅(Guess Hitting)이라는 폼나는 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은 귀에 설다. 이럴 때 착 감기는 현장 용어가 있다. 맨 앞에 이해를 구하며 제시했던 ‘겐또’다. 특히 영남권 야구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것 같다.

<…구라다>는 그 뜻밖의 안타도 이 부산 출신 타자의 예리한 ‘겐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 여러가지 정황상 빠른 볼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하지 않고는 그렇게 깔끔한 컨택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그는 어떻게 그런 쪽집게 같은 예지력을 발휘했을까?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9회 타석을 처음부터 재구성해봐야 한다. 즉 초구에서부터 4구째까지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어떤 맥락이 잡힐 것이다.

초구에 대한 이상한 반응 : 조금 멀어보이긴 했지만, 스트라이크를 줘도 큰 문제 없는 곳이었다. 그걸 배트로 체크한다는 건 그만큼 현재 상태가 별로라는 뜻이다. 포수가 그걸 놓칠 리 없다. 그래서 2,3구를 연달아 변화구(슬라이더)로 타이밍을 흔들어놓고, 결국 승부구는 패스트볼을 택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시프트 : 당시 수비가 모두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외곽 승부를 하겠다는 뜻이다. 바깥쪽이라면 아마도 빠른 공일 것이다.

레그킥 : 강정호 때와 비슷하다. 이대호의 킥 동작도 그들에게는 낯설다. 강한 공에 대응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이날 두번째 타석에서도 역시 속구에 서서 삼진을 당한 바 있다.

경기 상황 : 9회 1사후에 주자도 없다. 스코어는 7-3이다. 투수나 포수나 굳이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다. 당연히 4구째 곧바로 승부가 들어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화살표는 빠른 볼이 올 것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얘기다. 다 지나고 나서, 한가롭게 복기해 보니 ‘그런가?’ 하는 정도다. 막상 실전에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정황을 머리 속에서 계산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두번째 스트라이크를 먹은 후 그의 행동을 보시라. 일단 타석에서 빠져 나온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4~5초? 그렇게 길지는 않다. 하지만 그 동안 호흡을 정리하고, 냉정을 찾는다. 그렇게 상황을 재검토 한다. 그러면서 예상의 정확도를 높여간다. 그게 그가 가진 내공의 실체일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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