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어제 9개 중에 직구는 딱 1개 뿐이었다

조회수 2016. 3. 2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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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나 됐을까? 날짜를 꼽아보니 채 2주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3월 16일이었다. 그날 올린 <…구라다>의 주제는 오승환의 삼진이었다. 이번 그레이프 푸르트 리그(시범경기)에서 뽑아낸 첫 스트라이크 아웃의 대상은 박병호였다.

당시 오승환의 볼배합에 대한 얘기를 했다. ①직구 ②슬라이더 ③슬라이더 ④투심(체인지업) ⑤슬라이더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얻어냈다. 특히 4구째 박병호의 몸쪽으로 감겨 들어가는 투심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13일이 지났다. 다시 그의 볼배합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한다. 그런데 이번 논조는 반대다. 캠프가 거듭되면서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긍정적인 신호로만 볼 수는 없다. 과연 걱정해야 하는 부분인가? 아니면 지극히 유연한 적응 과정인가? 솔직히 조금 혼란스럽다.

1이닝 퍼펙트, 그런데 의아하다   

어제(한국시간 28일) 피칭은 그의 8번째 경기였다. 숫자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많이도 필요 없다. 공은 9개면 충분했다. 타구는 모두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완벽하게 1이닝을 지웠다.

우리 미디어들도 모두 그렇게 소개했다. 주로 ‘퍼펙트’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물론 맞다. 버거운 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쉽게, 쉽게, 타이밍을 뺏으며 간단히 처리했다. 지난 등판(25일 vs 워싱턴) 때 불안했던 점을 만회했다(2안타, 1볼넷, 1실점).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함이 느껴진다. 투구 내용 탓이다. 말했다시피 그가 이날 3명의 타자에게 던진 공의 갯수는 9개였다. 그런데 이 중 직구는 딱 1개 밖에 없었다. 나머지 8개는 모두 변화구였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첫 타자부터 살펴보자. 마이애미의 백업 요원으로 분류되는 코너 길레스피(우타자)였다. 나오자마자 슬라이더 연속 3개를 던졌다. 파울 1개를 포함해 볼카운트 0-2를 만들었다. 4구째가 이날 던진 유일한 직구. 바깥쪽 조금 높은 볼로 유격수 땅볼을 만들었다.

손쉽게 선두 타자를 처리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1번 디 고든(좌타자). 초구 바깥쪽으로 약간 떨어지면서 흘러나가는 투심으로 1루 땅볼을 유도했다.

마지막 타자는 2번 오수나(우타자). 여기서는 슬라이더만 4개를 던졌다. 한결같이 외곽으로 공략했다.

이 경기를 중계하던 <FOX Sports 카디널스>에서는 별로 심각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팀에서 얘기하기로는 5~6개 정도의 공을 던진다고 하네요. 커트도 하고(커터), 가라앉게도 하고(싱커), 벌려 잡기도 하고(스플리터), 스피드에 변화도 준다고(체인지업) 합니다. 90마일 중반대의 강한 공도 있지만, 오늘은 그렇게 힘을 주지 않는 편이네요.” (캐스터 : 댄 맥롤린) 

“예, 그럴 필요가 없겠어요.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으로 잘 공격하고 있어요. 그럼 그렇게 (빠른 볼을 던지려고) 애를 쓸 이유가 없지요.” (해설 : 에드아르두 페레스)

이날 포수 페냐의 구종별 사인. 직구는 코스별로 2가지, 나머지는 손가락 숫자로 구분된다.

업무상 강한 압박이 필요한데… 

뭐, 전문가들이 그렇다면 그렇겠지. 어련히 옳은 얘기 했을라구. 다양한 구질로 구석구석 타자를 공략하면 그 이상 효과적인 투구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이건 아주 낯설다. 이제껏 그의 스타일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선발이 아니라 불펜 투수 아닌가. 보통 그 업무는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압박해서 끝내야 평가받는 자리다.

그래서 그의 뛰어남을 상징할 때 흔히 들어가는 표현이 ‘돌’이다. 돌부처, 돌직구 등등. 강력함, 묵직함, 단단함 같은 어감이 배어 있다.

그의 예전은 어느 정도였을까. 일본 베이스볼 데이터의 자료를 보자. KBO 시절은 직구(포심)의 비율이 무려 90% 이상이었다. 그러다가 NPB(일본)에서는 70% 안팎으로 낮아졌다. 2014년 70.79%, 2015년 69.14%. 대신 슬라이더 비율(21.64%, 19.98%)을 높였다. 2015년부터는 투심(7.07%)도 비중이 생겼다.

비록 비율의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표 구종은 여전히 빠른 볼이었다. 요즘처럼 변화구 위주의 피칭은 상상하기 어렵다.

혹시 구위 저하 때문은 아닐까   

이런 현상은 왜 생겼을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떠오른다. 모두가 의구심은 갖지만, 정작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바로 직구의 위력 저하다.

이번 시범 경기서 그의 빠른 볼은 평균 90~92마일(144~147㎞) 정도였다. 150㎞를 쉽게 넘기던 예전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회전력이 높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스피드가 전제돼야 한다. 최근 들어 홈런이나 장타를 허용한 것도 대부분 직구였다.

스스로도 이 점이 의식됐던 것 같다. “시즌에 들어가면 스피드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미국행에는 일본도 관심이 많다. <풀카운트>라는 야구전문 매체가 상세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그 중 포수 출신 해설자 노구치 토시히로의 지적이 께름칙하다.

“오승환의 직구는 묵직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잘 통했다. 그러나 그 구위가 빅리그 타자들을 압도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완 투수의 그 정도 빠른 볼이 파워 히터가 수두룩한 곳에서 견뎌낼 지 모르겠다.” 기분 나쁜 소리지만 허투로 들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변화구 빈도를 높이는 게 어느 정도 효과적일까. 상당수 일본 출신 정통파 투수들이 미국 진출 후에 그렇게 했다. 특히 최근에 간 다르빗슈 유나 다나카 마사히로의 경우가 그랬다. 선발 뿐만이 아니다. 불펜의 우에하라도 직구 구사율이 50% 미만이다. 나머지는 모두 스플리터다.

구심에게 받아든 공을 살펴보는 모습. 한국이나 일본에서 쓰던 것 보다 실밥의 도드라짐이 덜해서 슬라이더 던지기 불편한 경우가 많다.                         mlb.tv 화면 캡처

일본 출신 슬라이더 투수들의 실패 

또다른 문제는 슬라이더에 대한 부분이다. 말했다시피 오승환이 요즘 빠른 볼 대신 선택한 것이 슬라이더다. 특히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는 더 많아진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공의 질감 차이다. NPB와 MLB는 공인구가 다르다. 특히 투수들이 민감한 실밥 부분이 그렇다. 일제가 더 도드라진다. 슬라이더나 커브 같이 손가락으로 (실밥을) 채야 하는 구종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쓰자카, 이가와 같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이 미국에서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다. 다르빗슈의 초반도 그랬다. 반면 스플리터 투수(노모, 구로다, 이와쿠마)들은 비교적 괜찮았다. 실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었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어쨌든 오승환의 현재 상태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8경기 등판에 ERA가 2.08이면 누가 뭐래도 훌륭한 성적이다. 게다가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쥐만 잘 잡으면 그만 아닌가.

그럼에도 아직 조심스럽다. 과연 스타일 전환이 그렇게 급격하게 이뤄져도 괜찮은 지 걱정이다. 구속이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시즌 때도 그런 변화구 위주의 패턴이어야 한다면…. 그게 여전히 유효할 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예전의 그 ‘돌직구’가 그립다.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위력적인 힘을 다시 보고 싶다. 살인적인 RPM을 올리며, 부시 스타디움 홈 플레이트의 한복판을 시원스레 관통하는 광경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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