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야구는 구라다] 박병호의 스윙에서 4번 타자의 리더십이 읽힌다

조회수 2016. 3. 24. 08:53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당신이 야구 감독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가장 강한 타자를 어디에 놓겠는가? 3번인가? 4번인가?”

‘그딴 걸 뭘 물어? 야구하면 당연히 4번 타자 아냐? 송강호도 (영화 YMCA야구단에서) 주인공 하면서 4번타자였잖아? 조선의 4번 타자.’ 그런 대답을 한다면 당신의 직관력은 알파고 수준이다. 하지만 인간들로 이뤄진 야구계는 아직도 여기에 대한 논쟁을 끝내지 못했다.

왜? 몇 명의 이름을 떠올려 보면 고민의 흔적이 나온다. 전성기의 이승엽, 배리 본즈, 베이브 루스, 오사다하루(왕정치) 등등.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들이 3번 자리에서 위용을 떨쳤다.

물론 타순이란 게 타자의 개성이나 팀의 구성에 따라 달라져야 할 얘기다. 또 그걸 정하는 감독이 가진 이론에 따라 차이도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전체적인 기울기는 4번 타자 쪽에 생긴다. 타선의 무게 중심이 되고, 팀 전체의 공격력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는 어제(한국시간 23일) 모처럼 제대로 된 배역을 맡았다. 4번 타자에 1루수. 게다가 중간에 슬쩍 빠지는 일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꽉 채운 풀 타임 근무였다.

네 번의 타석에서 나타난 그의 업무 수행 능력은 3타수 1안타 2타점. 나쁘지 않은 고과를 받을만 하다. 게다가 결승타까지 그의 몫 아니었나. 그 정도면 완벽한 4번 타자였다. 그래서 오늘 그 얘기를 하려 한다. 잘한 것은 맞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잘했냐’는 얘기를.

박병호가 1회 좌측 2루타를 치고 있다. 이 안타로 트윈스는 선취점을 올렸다. mlb.tv 화면

해설자도 의아해한 스윙

일단 첫 타석이 화끈했다. 1회 1사 1,2루. 상대 투수는 필리스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영건 제라드 아이코프였다. 그는 여기서 2루타를 뽑아냈다. 그 장면을 재생해보자.

박병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현지의 필리스 중계진(PHI-TCN)은 새삼스러운 얘기를 한다. “이번 캠프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 선숩니다. 그와 비슷한 선수가 또 한 명(김현수인듯) 볼티모어로 왔죠. 얼마 전 오리올스와 경기 때 그곳 스카우트한테 들은 얘기입니다만, 그쪽으로 간 선수는 빠른 볼에 대해 아직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 선수(박병호)는 강한 공을 아주 잘 쳐내고 있어요.” 중계팀이 아마 오리올스의 최근 소식을 업데이트 안했나 보다. 덕분에 김현수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90년생 투수 아이코프는 약간 허둥대고 있었다. 포수와 사인이 맞지 않아, 2차례나 볼을 놓치며 1, 2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박병호의 타석 때도 초구(91마일, 높은 볼)를 던진 후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었다. 두 번이나 발을 풀고, 2루 주자를 견제하려는듯한 동작을 보였다.

이윽고 2구째. 채 정리되지 않은 91마일짜리 빠른 볼이 박병호의 몸쪽으로 ‘높게’ 들어왔다. 경기를 해설하던 벤 데이비스(포수 출신)는 “주자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너무 높은 곳에서 릴리스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아마 그냥 놔뒀어도 스트라이크 판정받기가 어려운 코스였다. 하지만 배트가 날카롭게 돌았고, 타구는 좌익수 옆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2루타. 0-0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왼쪽이 해설자도 신기해한 몸쪽 공에 대한 반응. 오른쪽 팔꿈치가 몸통에 딱 붙어 나오는 박병호 특유의 타격 폼이다. mlb.tv 화면

해설자 벤 데이비스는 “무척 짧은 스윙이었다”며 의아해했다. 아마 그도 그런 타격에 대해서는 익숙치 않으리라. 하지만 그건 박병호의 시그니처라고 부를 수 있는 전매특허다. 몸쪽 바짝 붙는 공에 대한 특유의 공략법이다.

위의 사진에서 비교되듯이 오른쪽 팔꿈치가 몸통에 붙어 나오는 폼이다. 타자에게는 가장 어려운 코스를 쳐내기 위해 오랜 기간 연마한 기술이다. 물론 다른 타자들도 그런 스윙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박병호처럼 거기에 힘을 최대한 실어서, 홈런 또는 장타를 만들어내 지는 못한다. 그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50홈런 이상이 가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7회 4-4에서 나온 희생플라이. 불리한 볼 카운트를 딛고, 안전한 득점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mlb.tv 화면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나온 가치 있는 타구 

그의 배트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건 7회 승부처였다. 4-4 동점에서 맞은 무사 만루. 상대 투수는 앤드류 베일리였다. 컷패스트볼(커터)을 주무기로 쓰는 우완이다.

① 포수는 초구를 바깥쪽으로 원했다. 하지만 몸쪽으로 들어오는 88마일짜리 커터.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② 두번째도 92마일짜리 커터였다. 이번에는 포수가 원하는 코스로 왔다. 외곽 낮게 오면서 파울을 유도했다. 카운트는 0-2. 투수가 갑의 위치다.

③ 3구째 역시 바깥쪽이었다. 또 휘어져 나가는 91마일짜리 커터였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변했기 때문에 타자의 배트는 어쩔 수 없이 끌려나왔다. 다행히 타구는 중견수 쪽으로 높이 뜬 플라이. 3명의 주자가 충분히 한 베이스씩 더 진루할만큼의 거리였다.

7회 볼카운트가 0-2로 몰리자 잠시 타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여유를 가졌다. mlb.tv 화면

<…구라다>는 마지막 이 스윙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당시 상황을 상기해 보시라. ▶7회 ▶동점 ▶무사 만루 ▶볼카운트 0-2였다. 타자는 ‘영웅이 되거나, 역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거기서 스트라이크처럼 오다가 휘어져나가는 공이 온다. 이건 타자의 실패가 예상되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영웅’을 상상하며 힘껏 돌린다면 헛스윙(삼진) 아니면, 내야 플라이 정도가 기껏이다. 반대로 ‘역적’이 되지 않으려 어정쩡하게 손을 냈다가는 데굴데굴 그라운드 볼이 유력하다. 일타쌍피, 병살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영웅이 되겠다는 의욕을 접었다. 대신 역적은 피하겠다는 몸사림도 없었다. 강한 스윙이지만, (장타 가능성이 높은) 왼쪽 방향을 포기했다. 그라운드 중앙을 노린 스윙은 정확하게 중견수 쪽으로 높이 뜬 타구를 만들어냈다. 주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이다.

결국 결승점이 만들어지고, 기회는 1사 2, 3루로 이어졌다. 트윈스는 여기서 추가점을 2개 더 뽑고, 승리를 지켰다. 7-5.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